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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rch 27, 2012
한 날 묵상 - 창46:28 - 47:12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갔는가?>
1. 오늘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택의 순간에 있다. 아내와 오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2. 아내가 참 고마운 것은, 그 마음이다. 세상에서 욕심을 채우려는 길을 가려는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하는 마음 때문이다.
3. 그렇게 영적으로 고민하는 부분들이 결혼 초기에는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만큼 아내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한다.
4. 오늘 우리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분명히 보이는 길은 아닐지라도, 희미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계속되는 삶이 내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뚜렷한 길이라 확신한다.
5. 오늘 본문, 요셉과 야곱의 고센 땅으로 간 이야기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6. 본문의 명제는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고백이 있기를 원한다.
7. 야곱과 요셉이 서로 주고 받아 얻은 결론으로 그들이 거할 땅, 고센은 어떤 곳인가? 왜 그들은 고센 땅을 택했으면,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내려 갔는가?
8. 야곱과 요셉의 선택기준은 이렇다.
9. 첫째 적지이지만,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이 우선이었다.
10. 둘째 자신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곳이다. 애굽의 문화와 섞이지 않는 곳이라면 조금 불편해서 문제가 없다.
11. 셋째, 늘 마음에 가나안을 품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고센은 가나안 땅에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서 늘 가나안을 생각하며 돌아가야 할 본향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12. 요셉과 야곱의 기준이다.
13. 믿음의 삶의 여정에서 순간 순간 선택해야 할 때, 야곱과 요셉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이 되기를 원한다.
14.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곳, 나아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기억하며 이를 잊어버리지 않을만큼 그곳에서 멀어져 있지 않는 곳에 살악나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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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6:28 - 47:12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갔는가?>
참고 - 45장 10절
46장
28절 "야곱이 ..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34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47장
1절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4절 요셉의 형들 중 다섯 명이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6절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애굽 땅에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1절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 '라암셋'은 고센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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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창세기강해 5> p285-286.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코치를 받아 왕에게 말을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 대신이기에 애굽에서 제일 좋은 땅이 어딘지 잘 압니다. 그래서 형들을 코치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땅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왕이 형들에게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요셉이 코치한대로 교센 땅에 거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고센 땅을 달라고 했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창세기 46장에 나오는 대로 그곳이 목축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비옥한 땅이었기 땜누입니다. 요셉의 가족은 선조 때부터 목축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땅을 골라 준 것입니다.
둘째, 고센 땅은 애굽 사람들이 사는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애굽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야곱 가족은 애굽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풍습과 언어가 있었습니다.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지킬 수 있는 땅이 고센 땅입니다. 애굽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모국ㄱ어와 전통과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이 고센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살 수 도 있고, 국외에서도 살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하나님을 믿는 모습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있는데 가나안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오긴 했지만 가나안을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당에서 삽니다. 그러나 이곳은 영원한 땅이 아닙니다. 애굽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당, 영원한 땅,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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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센 땅은 목초지입니다. 야곱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의 가족들을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당시 요셉의 권세나 지위로 보면, 가장 살기 좋은 곳, 즉 도시로서 발달 된 곳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센'은 오지나 다름없는 달동네로 봐야 합니다. 왜 요셉은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가?
소를 신성시하는 애굽 사람들에게 목축업은 가증이 여기는 대상입니다. 야곱은 애굽 사람들이 천히 여길 것을 알면서도 목축이 없이라고 하면서 고센 땅을 택하게 됩니다.
달리생각하면, '고센'은 애굽의 세상 문화를 피하고 구별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지지켜 살아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되는 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증이 여기는 곳,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곳이 야곱, 후에 이스라엘 대민족이 되는 첫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 그리고 야곱의 가족은 믿음의 눈으로 보며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살아가려 할 대 고센 땅보다 더 좋은 땅은 없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궁의 가축을 돌보는 일도 하게 됩니다. 일의 몫을 취하면서 말입니다.
창 46:7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당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고센 땅은 좋은 땅입니다. 창47:17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고센의 다른 이름은 라암세스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탈출을 하려 할 때 이곳을 출발 지점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출12:37, 민33:4, 5).
믿음의 사람에게 좋은 땅은 외적 환경이 좋은 땅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의 방법으로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좋은 땅입니다.
Saturday, January 14, 2012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한 날 묵상 - 창 37:5-11 <요셉의 꿈과 형들의 미움. 가족의 비극의 시작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
요셉의 꿈(두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아버지는 꾸짖었고, 형들은 더욱 미워했다.
반전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의 흐름속에 특별한 관계를 찾을 있는가?
요셉의 꿈은 가족의 비극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에서 보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형제들안에 갈등이 시작되며,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을 애굽에 팔게된다(37:12-36).
그러나 요셉 꿈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후에 애굽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고(41:37-57), 결국 가족을 구원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46장).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때로는 심한 관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간, 형제들, 친구들, 이웃과의 갈등이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다(마13:46-50. 막3:31-35).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눅9:59-60).
제자의 삶도 그렇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이르되 청하건데... 들으시오"
7절 "밭에서 곡식 단...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절 "그의 형들이 ...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왜 꿈이야기에서,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이야기에서 왕의 이야기가 나올까?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그가 ..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형들의 미움은 3중 반복후 "그의 형들의 시기"에서 꽃을 피움.
아버지는 첫 행동이 꾸짖음이었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게 됨.
오늘 말씀의 흐름..
요셉의 꿈(두번)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아버지는 꾸짖었고, 형들은 더욱 미워했다.
반전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의 흐름속에 특별한 관계를 찾을 있는가?
요셉의 꿈은 가족의 비극인가? 가족의 은혜인가?
오늘 말씀의 흐름에서 보면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형제들안에 갈등이 시작되며,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을 애굽에 팔게된다(37:12-36).
그러나 요셉 꿈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는 후에 애굽에서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고(41:37-57), 결국 가족을 구원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46장).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을 부르셨다. 요셉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요셉에게 찾아오는 것은 형들이 미움, 시기였다. 형제들끼리의 갈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요셉의 이러한 갈등은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다.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사건과 상황들을 이끌어가신다. 이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편에서 서 있었다. 그 편이 가장 지혜롭고, 모든 문제를 가장 잘 풀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때로는 심한 관계의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간, 형제들, 친구들, 이웃과의 갈등이다.
예수님의 부르심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다(마13:46-50. 막3:31-35).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렇다. - 가족의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눅9:59-60).
제자의 삶도 그렇다.
5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절 "요셉이... 이르되 청하건데... 들으시오"
7절 "밭에서 곡식 단...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절 "그의 형들이 ...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왜 꿈이야기에서,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이야기에서 왕의 이야기가 나올까?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왜 이러한 말이 나오는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그가 ..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형들의 미움은 3중 반복후 "그의 형들의 시기"에서 꽃을 피움.
아버지는 첫 행동이 꾸짖음이었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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