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5, 2013

성경적 자녀교육 - 국제제자훈련원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에서.....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켜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성경은 자녀 양육의 목표 중 하나가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가족이 생명의 삶을 위한 배움터가 되도록 뜻하셨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운다. 나는 우리 막내가 트림과 재채기를 동시에 하는 법을 가르쳐준 때를 잊을 수 없다. 진짜 굉장하지 않은가? 내가 그것을 언제 어디서 쓰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영적 경험이다.
우리는 걷기, 말하기, 먹기, TV 리모컨 사용하기 등, 인생의 기본적인 기술을 가족 안에서 배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52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네 가지 면에서 성장하셨음을 알려주는데, 부모로서 당신은 당신의 자녀도 이 네 가지 면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예수님은 지혜가 자랐다 - 이는 정신적 또는 지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키가 자랐다 - 이는 신체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스러워가셨다 - 이는 영적 성장을 뜻한다.
  • 예수님은 사람에게 사랑스러워가셨다 - 이는 사회적 성장을 뜻한다.
이것들은 당신이 각 자녀를 향해 가져야 할 목표이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자녀에게 생명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의 주된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자녀를 품는 순간, 당신에겐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직무가 생긴 것이다. 자녀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우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
  • 신명기 6:7은 부모로서의 직무 중 일부를 이렇게 기록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당신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당신은 어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 신명기 6:7 말씀은 자녀를 하루 온종일 교육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매일의 일과에 자녀 교육을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


자녀와 함께 즐거워하라!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시 127:3a, 새번역)
하나님은 가정이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안식처가 되기 바라신다. 놀고, 편히 쉬고, 휴식을 취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곳 말이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 결속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함께 ‘노는’ 가정도 결속력이 강하다.
자녀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함께 즐거워할 대상이지 신경전을 벌일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즐거워하지 못하고, 자녀와 신경전을 벌이기만 한다. 신명기 16장은 “온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실컷 즐거워하라! 좋은 시간을 보내라. 모든 문제가 사라진 다음에야 인생을 즐기려고 기다린다면, 우리는 결코 인생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내 자녀가 어렸을 때,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감명 받는 것에 감명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 우리 애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은 그저 “아빠는 재미있는 분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의도적으로 열심을 냈다. 나는 종종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아이들을 중간에 ‘납치’해서 재미있는 것을 하러 가곤 했다. 내 설교는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재미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이 즐겁지 않다면,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놀라지 마라. 집에 왜 들어오고 싶겠는가?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얼마나 자주 집에서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갖는가?
  • 당신은 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아니면 자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편인가?
  • 당신은 재미있는 시간을 계획하는가 아니면 너무 바빠서 즐길 시간을 내지 못하는가?


자녀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 9:10a)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칠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한다. 당신이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녀가 묻는 것에 다 답을 해주지 못한다. 이는 “하늘은 왜 파래요?”나 “개들은 왜 짖어요?”와 같이, 잠시 동안 자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답을 꾸며낼 수 있는 질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날 이런 모습으로 만드셨어요?” 또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면, 왜 할머니가 돌아가시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그러한 질문은 대답하기 매우 곤란하고, 내 해답의 저장소는 매우 협소하다. 그러나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자녀로 하여금 모든 해답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녀를 앉혀놓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훨씬 더 효과적이 되고 싶다면, 당신이 직접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가 이해하길 바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신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문제들을 자녀에게 숨기는 실수를 범한다. 자녀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녀와 나눌 때, 그러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줄 수 있다.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녀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과 끊임없이 자녀에게 “맞아, 지금 우린 힘들지만, 우리에겐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잖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해주실 거야.”라고 표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겠는가? 부모가 삶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하심을 믿는 것을 자녀가 보지 못한다면, 왜 자녀가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겠는가?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간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많은 부모들조차 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에 대해 우리가 진리라고 아는 것을 자녀에게 몸소 보여줌으로써 자녀가 그들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녀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부분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 당신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 100퍼센트 헌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자녀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 당신이 보여주는 본에 의해, 당신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자녀에게 알려주고 있는가? 직장인가? 또는 돈, 취미, 오락? 아니면 예수님과의 관계?


자녀의 고유함을 인정하라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6b)
한 가족 안에서도 자녀들은 각각 다르고 고유하다. 쌍둥이조차도 똑같지 않다. 부모로서 우리는 각 자녀의 개성을 인지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고린도전서 12:6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서로 다르게 지으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이 극도로 지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수되지 않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것을 좋아했다면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그런 일들은 완수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녀의 고유함을 인정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자녀가 당신처럼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릴 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이제 우리는 부모가 되어 자녀를 우리 형상대로 만들고 싶어한다. 따라서 공공연히 또는 넌지시, “넌 나처럼 되어야 해. 나처럼 생각해야 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해. 내가 학교에서 잘한 것을 너도 잘 해야 해.”
그럼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크고 분명하게 자녀에게 울린다. “넌 있는 모습 그대로 될 수 없어. 네가 사랑과 인정과 승인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와 아빠처럼 되는 것뿐이야.”
자녀는 틀에 넣어 찍어낼 물건이 아니라, 펼쳐야 할 ‘사람’이다. 인생의 목표가 자녀를 자신의 형상대로 찍어내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인생의 목표는 자녀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사람이 되도록 지으셨는지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주권에 따라, 당신의 자녀를 그 모습으로 만들기로 택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당신과 아무 상관 없는 방식으로 지으셨다. 당신의 눈에 자녀가 너무 이질적인 행동을 보여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당신은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자녀의 필요와 당신의 필요를 정확히 아시며, 하나님의 고유한 목적을 위해 당신과 자녀를 한 가족으로 묶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자녀가 자신의 고유함을 깨닫도록 돕는 것은 부모로서 어려운 임무다. 세상에는 순응하라는 압력과 비교하라는 압력,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라. 
  •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녀가 자신의 고유함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는가? 
  • 당신은 자신의 고유함을 기꺼이 받아들였는가? 다름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음에 대해 당신은 자녀에게 어떻게 본을 보이고 있는가?


책임감을 갖고 자녀를 신뢰하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10, 12)
주변에 자신을 믿어주고 책임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 것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는 것은 없다. 예수님도 이 점을 지적하셨다. 사람은 책임을 감당하면서 성장한다고 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0, 12절)
현명한 지도자와 부모는 이러한 원리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책임에 반응한다. 아이들도 책임에 반응한다. 우리 모두는 신뢰받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곳을 필요로 한다. 책임감이라는 인생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 것이다.
자녀에게서 최선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를 허락하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는 자녀를 실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어한다. 자녀가 기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자녀가 실패하면, 우리는 그들을 재빨리 구해주어 상처 받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녀가 소중한 교훈을 얻는 것을 막는 행위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 핵심은 삶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실패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녀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넌 능력이 없으니까 믿을 수 없어. 넌 이것을 처리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 해줄게.” 그러한 접근법은 자녀가 부모에게 계속 의존적이 되도록 만든다.
성경은 이에 대해 갈라디아서 6: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쉬운성경) 자녀가 실패할 때, 어느 누구 탓도 돌리지 않게 하라. 왜 그런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진리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피해자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잘못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저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녀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는 것보다는 자녀를 너무 많이 신뢰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자녀 대신 너무 많은 것을 해주고 있는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어떻게 그 사람으로부터 책임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 삶에서 경험했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해보라. 그러한 것들은 당신이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데,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 자녀가 비슷한 삶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책망하지 않으면서 자녀 고치기

“아직 희망이 있을 때에 자식을 징계하여라. 그가 망할 때까지 내버려 두지 마라.” (잠 19:18, 쉬운성경)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을 뜻한다.
부모가 자녀의 파멸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다. 잠언 19:18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희망이 있을 때에 자식을 징계하여라. 그가 망할 때까지 내버려 두지 마라.” (쉬운성경) 부모가 시간을 내어 자녀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습관과 올바른 행동 및 사고 방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자녀가 실패하고 파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시간을 들여 자녀를 징계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전쟁을 더 벌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필요를 자녀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징계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녀를 책망하지 않으면서 잘못을 고칠 수 있을까?
분노한 상태에서 고치려 하지 마라. 엡세소서 6:4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키우십시오.” (쉬운성경) 자녀에게 짜증과 화가 나 있을 때, 그 짜증과 화를 분출하면 기분이 나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분출은 순간적인 해결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문제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긴장시킨다. 화가 난 상태에서 훈계하는 것보다는 잠시 물러서서 열을 식히고 평정심을 회복한 다음 다시 그 문제를 다뤄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에베소서 4:29은 이렇게 말한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을 하십시오.” (현대인의성경) 해로운 말은 상처가 되는 기억을 만든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하는, 그리고 우리의 결점과 흠과 단점을 경시하는 이러한 말은 마음에 꽂히는 비수가 된다. 가족의 기억에 해로운 말을 남기지 않도록 하라. 그 대신 단어를 주의 깊게 선택하고 사랑 안에서 말하라.
부모의 기도 
오늘, 그리고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시 101:2, 현대인의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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