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23, 2013

불쾌한 기분, 낙심, 분노 - 국제제자훈련원

불쾌한 기분은 전염성이 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잠 22:24-25)
분노는 전염이 될까? 그렇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분노에 감염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상대방이목소리를 높여서 당신도 그렇게 한 경험이 있는가?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에너지가 전달된 것이다. 분노는 전염성이 있다.
당신이 부적절한 분노가 깊이 들어와 있는, 습관적인 분노의 생활방식을 바꾸고자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면,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해야 한다. 교회의 유익 중 하나가 그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긍정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습득된 것이다. 습득된 것이기에 고의로 잊을 수도 있다. 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냉정을 잃을 때마다 자녀는 부적절한 분노의 본을 배운다. 부모는 가르치고, 자녀는 배우는 것이다.
오늘 다음과 같이 기도해보지 않겠는가?
“하나님, 저는 제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심합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제 분노를 조절할 것입니다. 전에는 넘어졌지만, 오늘 저는 새롭게 결단합니다. 제가 분노의 대가를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분노는 언쟁과 실수를 불러오고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하고 온갖 종류의 곤경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버지여, 제가 반응하기 전에 심사숙고 하도록, 지혜를 갖고 스스로 ‘내가 왜 화가 났는가? 나는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묻게 도와주소서. 제가 제 분노 저변에 있는 원인을 보게 하옵소서. 분노를 적절히 풀 수 있게 하시고, 더 이상 폭력, 고함, 투덜거림, 또는 겉으론 참으면서 속으론 원망하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제 분노에 대해 인정하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과 제 자신에게 그것을 고백하도록 도우소서. 아멘.”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잘못된 사람들과의 관계로 분노를 다루는 방법에 영향을 받은 적이 있는가?
  • 당신은 성장할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가? 자녀에게도 동일한 방법을 물려주고 있는가?

낙심을 다루는 다섯 단계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3)
삶 속에서 낙심을 다루는 다섯 가지 간단한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에게 물으라. “내가 초래한 일인가?”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말한다. (갈 6:7b) 우리는 삶 속에서 스스로 초래한 일로 인해 낙심할 때가 많다.
스스로에게 물으라.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서 8:28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나쁜 일들도 많지만,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맡기면, 부정적인 것까지도 들어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실 수 있다. 거슬리는 일도 보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기회로 사용하라.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한다. 나쁜 상황으로 인해 감사할 필요는 없지만, 나쁜 상황에서 감사할 수는 있다. 낙심은 변장하고 찾아온 복일 수 있다.
낙심을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건으로 바꾸라.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말한다. (잠 17:22) 유머감각은 분노와 좌절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해독제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당신을 채우시길 구하라. 왜 그래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3:5은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말한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또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가 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끊임없는 낙심에 직면하셨지만 결코 성내시지 않았다. 주님은 늘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일에 너무나 바빠서 인생의 우선순위가 사람들에게 있음을 잊는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사랑은] … 성내지 아니하며” (고전 13:5)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은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사랑의 행위에는 화가 나는 것도 포함된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그 분노는 의롭게 보일 때도 있고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물학적 구성에 화를 내는 능력을 넣으셨다.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행위로 자신을 몰고 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분노하신다고 말한다.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자산’이 될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처럼 분노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와 말다툼이 시작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화를 얼마나 빨리 다스릴 수 있는지 보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분노를 훨씬 잘 통제할 수 있다. 화를 다스리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라.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시장처럼 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지만, 예수님을 ‘화 내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그게 바로 나야. 화가 나는데 어떡해? 난 화를 참을 수 없어.”라는 주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 당신이 마지막으로 버럭 화를 낸 때는 언제인가? 오늘의 교훈을 참고로 앞으로는 그 화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분노의 대가를 기억하라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에는 늘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다음 구절과 연관 지어 확인해보라.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15:18)
  •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 “어리석은 자는 성급하게 굴고 신중한 사람은 오래 참는다.” (잠 14:17, 공동번역)
성경은 말한다.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은 얻는 것이 없으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잠 11:29, 현대인의 성경)
화를 참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는 것이다. 번번히 분통을 터뜨리면 될 일도 안 된다. 영어에서 위험(danger)은 분노(anger) 앞에 d만 더 붙인 것이다. 분노는 위험하다. 분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명성, 배우자, 직장, 건강까지.
몇 년 전에 읽은 인간 심장에 대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삶 속에서 적의나 반감을 줄이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부모들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자녀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분노는 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쫓아내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분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필요에 대해 냉담하고 당신에 대해 화가 나게 만든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 하나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과거에 분노는 당신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과거에 당신은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현재의 인간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분노 - 반응하기 전에 생각하라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 29:11)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참음’은 화를 통제하는 데 훌륭한 도구이다. 이는 무한정 참으라거나 심지어 하루를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참음’은 5분이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몇 분 동안 ‘타임 아웃’ 시간을 가지라. 잠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기 쉽다. 반응하기 전에 심사 숙고해야 한다.
화가 나면 뒤로 물러서서 잠시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분노를 억제한다고 한 말에 주목하라. (잠 29:11)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시 멈춰서 열을 식힌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다면, 입을 열기 전에 열을 세라. 화가 많이 났다면 일부터 백까지 세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면 더 잘 인내할 수 있고, 심지어는 허물까지도 덮어줄 수 있게 된다. (잠 19:11) 다음과 같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질문 세 가지를 던져보라.
  • 나는 왜 화가 나는가?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분노를 적절히 표출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엡 4:26a)
화를 푸는 데는 유익한 방법도 있고 해로운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보다 화가 난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화가 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이다.
분노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분노는 그것을 부적절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을 때만 잘못된 것이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두세 살 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지금은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표가 화를 내기 전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부적절하게 표현된 분노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인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면 변화를 지속시킬 수 없다. 더 많은 분노와 소외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한다.
분노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증상이다. 상처, 두려움, 또는 좌절.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분노의 근원을 이해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결과적으로 분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엡 4:26) 잠시 멈춰 마음을 가라앉힐 때,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라.
  • 내가 상처를 받았는가?
  •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 내가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 귀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가?
  • 내가 좌절했는가?

분노 - 마음을 새롭게 다지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롬 12:2a)
행동하는 방식은 느끼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느끼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으면 사고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 분노의 부적절한 관리가 습관화되어(툴툴대기, 울분 터뜨리기, 비난하기 등) 이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정신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가족상담가인 개리 스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한다. “나는 화를 내는 것을 즐기는가?” “화를 내면 내가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는가?” “동일한 결과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얻을 순 없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스몰리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답을 적고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6번이 될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신에게 읽어주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이 습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노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가?
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각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분노하는 이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것들에 화가 나기 마련이다. 불안정할수록 더 예민해지고 더 짜증이 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안전하고, 당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때, 당신은 화가 덜 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8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가르쳐줌으로써 분노를 방지하는 성경 말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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