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익지 않은 것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추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콩찌기 할 때 머리를 스친 생각은 "마지막때에 추수하자.
지금이 추수할 때이다.가라지는 추수때까지 내버려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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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 개혁의 때일수록 모조품을 경계하라
소위 성령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람들이 심각한 실수들을 범하거나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그 사역 전체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몇몇 가짜들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참되지 않다는 논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모조품들이 생기는 것은 개혁의 시기에 항상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커다란 종교의 부흥 치고 많은 모조품들이 등장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시대를 보면 이러한 종류, 즉 지독한 이단과 비열한 행동에 빠진 사람들의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당시에 있었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성도들로부터 뛰쳐 나갈 때까지, 참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형제들로, 성도들의 한 부분으로 잠시 동안 받아들여졌으며, 그들과 다르다고 의심받지 않았습니다(요일 2:19).
평범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교사들과 직분자들 중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주신 몇몇 사람들 가운데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6장의 시작 부분에 나옵니다. 유다가 이러한 예입니다.
유다는 열두 사도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치욕스러운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발각되거나 의심받는 일이 없이 참된 경험을 한 제자들과 한 무리가 되어 오랫동안 계속 연합하였으며, 친밀하게 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도 모든 외적인 일들에 있어서 참된 제자인 것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에게 사도의 지위를 수여해 주셨으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셨고,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알고 계셨지만, 그 당시에는 전지(全知)하신 심판자와 마음의 감찰자로서의 신분으로 옷 입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시적 교회의 수종자로서의 직임을 수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의 수종자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그를 배척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가시적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과 다스리는 자들에게 하나의 모범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즉 그들이 교회를 운영할 때에는 마음의 감찰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말고, 보이는 것과 공개된 것을 통하여 하도록 말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에도 배교자가 생길 수 있다
한동안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되었던 몇몇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특출하게 충만하다고 여겨졌던 몇몇 사람들 중에 그러한 배교자들이 있었던 예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니골라가 그 한 예입니다.
그는 성령의 비상한 부으심이 있던 그 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의 무리 중에서 집사의 직분에 선출되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부터 5절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에 배반하여 야비한 행동을 하는 일단의 비열한 이단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부터 니골라당이라는 파당의 이름이 나왔습니다(계 2:6, 15).
종교개혁 시대에도 배반자가 있었습니다. 교황 정치 때부터 종교개혁의 때까지, 잠시 동안 종교개혁자들과 연합한 것처럼 보였다가 배반하여 가장 야비하고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고 혐오스러운 행동을 한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부흥 시대에도 배반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위대한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종교가 부흥할 때에, 한동안 거기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떨어져 나가서, 기괴하고 엉뚱한 잘못들과 심한 열광주의에 빠져, 높은 영성과 완전함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며, 다른 이들을 육적이라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사도 시대에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여러 재세례파 분파들이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안토니 버제스(Anthony Burgess)가 <영적인 강화>(Spiritual Refining) 제1부, 설교 23쪽과 132쪽에서 진술한 것과 같습니다.
“최초의 훌륭한 종교 개혁가들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도구들은 여기서 쓰라린 갈등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형식주의자들과 전통적인 교황주의자들에게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는 종교개혁자들보다 더욱 계몽되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 그들은 성경을 고수하며 성경을 근거로 계시들을 검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문자주의자’(Literists and Vowelists)로 불렀다. 성경의 단어들과 모음들에는 정통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을 가지지 못한 자들로 보았다.
어떤 도시에서든 복음의 참된 교리들이 교황제도를 막 본격적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하면, 곧장 그러한 견해들이 일어났다. 마치 좋은 곡식 가운데 가라지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분열이 일어났고, 종교개혁은 세상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벌레들과 뱀들에게 열기와 온기를 주어서 땅 속에서 기어 나오게 한 것과 같았다. 그들은 루터를 매도하였고, 루터가 단지 육적인 복음만 보급시켰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거친 열광주의자들의 몇몇 지도자들은 잠시 동안 최초의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고,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청교도 시대에도 배반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찰스 1세 때와 공위(空位) 기간에 올리버 크롬웰 때 생명 있는 종교가 매우 우세하였는데, 그 때 그러한 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뉴잉글랜드 초기 가장 순수했던 시기에, 경건이 넘쳤을 때, 그와 같은 일들이 발발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그러한 가라지를 뿌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참된 역사가 영광스럽게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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