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31, 2011

한 날 묵상 - 창 21:8-21 <난 1%이다. 그렇다면 품어야할 99%가 있다>

한 날 묵상 - 창 21:8-21 <난 1%이다. 그렇다면 품어야할 99%가 있다>

 갑자기 요즘 유행하는 1%와 99%가 생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힘 있는 사람의 전행인가요? 아니면, 법적인 테투리 안에서 합법적인 행위인가요?
 그리스도인인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리그를 결코 아닙니다.
 우리안에는 믿음의 언약으로, 약속의 말씀으로, 그 어떠한 것도 그 울타리를 넘어 올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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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나의 전부를 나누는 온전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믿음의 울타리로 결코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사랑뿐입니다.

 99%를 사랑으로 품는 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도 아들인데, 근심할 수 밖에 없겠죠?
  근심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노릇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맞겠죠?


8절 한 쪽은 "큰 잔치를 베풀고"

9절 한 쪽은 이삭을 놀리고
                    10절 사라가 아브라함을 압박하는 군요!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11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13절 하나님의 명쾌한 해석 "근심하지 말라"
  12절 사라에게는 이삭을 통해 약속의 말씀으로 해석하시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절 여종에게는 이스마엘을 통해 사랑으로 말씀을 해석하시다.
          "여정의 아들도 네 씨니"
     14절 아브라함의 부정속에 묻어 나오는 사랑의 행진
          "아침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15-21절 하나님과 여종의 대화. 사람을 살리시는 사랑의 하모니.
         17절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안에 구속의 은혜를 허락해 두셨습니다. 그 안에 머물러야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게 약속있는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셨던 그 아가페 사랑을 그들에게 우리도 나누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안에는 약속으로 하나가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밖에는 오직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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