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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3, 2012

한 날 묵상 - 창47:27-31절 <험악한 인생, 굴곡 가득한 인생을 마감하는 야곱, 그리고 그가 청한 마지막 한 소절의 말>

한 날 묵상 - 창47:27-31절 <험악한 인생, 굴곡 가득한 인생을 마감하는 야곱, 그리고 그가 청한 마지막 한 소절의 말.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안에 거하라 하라.>

1. 야곱의 인생이 마감되고 있다. 형의 발뒤꿈을 잡고 이 땅에 온지 어언 147년이 지나 이제, 그의 생도 막바지에 다달았다.
 29절 "죽을 날이 가까우매"

2. 야곱의 마지막 인생은 축복의 인생이었습니다. 역시 마지막 아름다운 인생이 멋진 인생입니다. 27절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3. 그의 마지막 축복의 인생은 생육과 번성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생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4. 생이 마치는 그 날까지 수고하고 땀흘려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5. 요즘은 일찍 은퇴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은퇴후에 아무 할 일없이 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낭비입니다. 자신의 후반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6. 마지막 생을 마치는 그 날까지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그러한 인생을 꿈꾸며 준비합시다.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들을 찾아 수고의 땀을 마지막까지 흘리는 꿈을 꿉시다.

7. 사실, 야곱은 이러한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애굽까지 내려온 그의 인생을 보면, 야곱의 인생은 떠돌이에 인생입니다.

8. 야곱은 형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 갔습니다.

9. 라반의 집을 다시 떠날 때는 어떻했습니까? 그 때 또한 축복받으면 떠나지 못했습니다. 좇기듯 떠났습니다. 물론 그 때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10. 다시 돌아와 잘 지내듯 하던 야곱에게 찾아오는 시련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잃은 아픔입니다.

11. 그의 인생이 어느 하나 보기에 좋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12.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믿음이 점진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나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쪽으로 가지 않아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야곱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 헤아리는 쪽으로 그의 마음을 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은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3. 야곱은 그의 마지막 인생에 다시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기근을 피해 요셉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14. 이러한 떠돌이 인생에서도 그의 마지막을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7절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15. 우리도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러한 인생을 준비하기를 원합니다.나아가 우리도 야곱처럼 마지막을 더욱 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16.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더욱 더 하나님의 마음을 더 가까이 나갑시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손의 맡기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합시다.

17. 우리도 야곱처럼 끝이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18. 생을 마감하는 야곱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바라보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19. 야곱은 요셉의 자신의 꿈과 바라보는 비전을 위해 요셉에게 인애와 성실함으로 맹세하기를 요청했습니다.

20. 그가 요셉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나를 애굽에서 매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는 것이었다.

21. 앞서 어떻게 야곱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 헤아리는 쪽으로 그의 마음을 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질문에 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22.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고,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꿈과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품고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23. 야곱의 몸은 쇠약해지고, 약해져갔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은 아직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4. 하나님이 여러분에 주신 꿈과 비전은 어떻습니까? 몸이 약해지고, 육신이 약해지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의 꿈과 비전또한 약해진다면, 야곱이 누린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는 축복의 말씀이 내 것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25. 야곱은 요셉의 맹세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31절"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

26. 그가 하나님의 바라보고 있었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야곱의 꿈과 비전이 요셉을 통해 맹세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 합당하였기 때문입니다.

27. 육신이 약해지고 허약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흐려지지 않고 약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28. 나아가 아직 육신의 힘이 있는 우리는 아름다운 야곱의 마지막 인생을 사모합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순간에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열심을 다합시다.

29. 오늘 한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고 있든,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살아고 있든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해 날마다, 이 순간을 살아가기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Saturday, March 31, 2012

한 날 묵상 - 창47:13-26절 <애굽과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다. 누가 이 때에 이기는 자가 되는가? 요셉이 총리로 애굽를 치리할 때 어떻게 가진 자본을 사용하고 있는지 배워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라>

한 날 묵상 - 창47:13-26절 <애굽과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다. 누가 이 때에 이기는 자가 되는가? 요셉이 총리로 애굽를 치리할 때 어떻게 가진 자본을 사용하고 있는지 배워 오늘 우리 시대에 적용하라>

오늘 묵상의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얻는 교훈이다. 땅이 아니라 임재이다.
 둘재는 요셉의 치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오늘날은 땅보다 자본이 옛날의 땅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요셉의 치리에서 배울 수 있게 된다.

13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기근으로 황폐하니"
14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거두어 들이고"
15절 "애굽 당과 가나안 땅돈이 떨어진지라"
17절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끌어온지라"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9절 "우리가 어찌 ...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17절 "그들이", 19절 "우리가"도 애굽과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임)
 둘 중에 어떤 땅이 약속의 땅인가? 야곱 가족이 머물러야 할 땅인가?

 1) 공통점
 - 기근으로 황폐하여 짐.
 - 돈으로 곡식을 사게 됨.
 - 돈도 떨어져, 더 이상 곡식을 살 수 없음.
 - 가축과 바꾸어 먹을 것을 받음.
 - 몸과 토지를 주고 사소서.

 2) 다른점
 - 애굽에 요셉이 총리로 있었다.
 - 돈이 애굽으로 몰림.

 3)  애굽과 가나안 땅의 비교에서 무엇을 교훈받게 되는가?
 -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다.
 -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들의 사람이 거하는 처소다.
 -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있는 자는 결코 내일에 대한 염려가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사람은 여유가 있으며 자신감이 있다.
 - 언약궤만을 바라보지 말고, 왜 우리가 언약궤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라.
   (사무엘상 4장 1-18절, 블레셋과의 싸움. 17절 "하나님의 궤는 빼았겼나이다")
 -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른 곳이 우리의 거처이며,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이다.
20절 "요셉이 개웁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Q. 그럼, 가축은 어떻게 하였는가? 
 가축은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였고, 바로의 가축도 야곱의 형제들이 치게 되었음으로, 당연히 야곱의 형제들에게 맡겨졌을 것이다.

* 궁핍과 흉년의 시기에, 먹을 것이 없는 시기에 요셉은 어떻게 하였는가?
현대에 먹을 것이 남아도는 곳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수 많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총리 요셉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3절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절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가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45장 6절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 야곱 가족은 충분히 양식을 보관하지 않았다. 기근 두번째 해에 벌써 두번씩이나 먹을 사러 애굽 땅으로 왔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몇년이 남은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기근 이년 째 - 돈으로 먹을 것을 사다. 14-15절
  기근 삼년 째 - 가축으로 먹을 것을 사다. 17절
  기근 사년 째 - 토지와 몸으로 먹을 것을 사다. 19절
  기근 오년 째 - 종자를 뿌려 먹을 것을 억게 됨. 오분이 일을 바로에게 상납. 24절.
  기근 육년 째 - ?
  기근 칠년 째 - ?
   18절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 여기서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에서 "그 해"를 기근의 칠년으로 해석하면, "새 해"는 기근이 끝나고 난 후 첫 해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19절에서 받은 종자를 가지고 24절에서 처럼 열매를 맺게 되고, 소득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할 수 있게 된다.
      원어는 어떻게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다.
25절 "그들이 이르되...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26절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 요셉의 치리 방법을 배워, 오늘 우리의 시대에 적용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들..
Q. 토지를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나?
Q. 요즘 토지는 자본이다. 자본을 가진 자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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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rch 28, 2012

한 날 묵상 - 신33장 1절, 창48장9절, 창50장 1절 <축복의 말씀을 자손들에게 선포하는 자로 세워자라>

1.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2. 자기 자녀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렇지 않기를 원한다.

3.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40년 잘 달려왔다. 그리고 함께 따라준 백성들이 모세를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4.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한다.

5. 나는 과연? 어떠한가? 내가 손을 뻗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할 때, 축복의 말씀을 받기 위해 머리 숙일 사람은 과연 있단 말인가?

6.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모세는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과 충분한 교통과 영적 교감이 있는 지도자였다.
7.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말씀을 그에게 말씀을 주시는 사람이었다.

8. 그렇다.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 나도 모세처럼 축복의 말씀을 최소한 자녀들에게라도 선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9. 자기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면, 그는 제대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아가 수 많은 민족 백성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흘려보낼 수 있는 인생이라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나그네 인생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10.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야곱일지라도 그는 자손들을 앞에 두고 한 명, 한 명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였다(창48-29장).

11. 야곱이 고백한 험악한 세월이(창47장 9절) 그의 고된 인생 역정이 하나님만 의뢰하고, 보다 깊은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의 산물이었다면, 나 또한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리라 마음을 다잡고 싶다.

12. 나는 지금 너무 편하고 쉬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즐기려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13. 그러한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인생의 유산을 후손에 남기며 축복을 할 수 있겠는가?

14. "인생길 험하고 낙심될 때" 그 때 더욱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더욱 주님을 찾을 것이다. 더욱 그 때 주님의 마음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15. 나의 인생길 얼마나 험하고 낙심되는 인생길인가?

16. 오늘 험하고 고난 한 인생길로 나를 이끌어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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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3장 1절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Tuesday, March 27, 2012

한 날 묵상 - 창46:28 - 47:12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갔는가?>



1. 오늘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택의 순간에 있다. 아내와 오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2. 아내가 참 고마운 것은, 그 마음이다. 세상에서 욕심을 채우려는 길을 가려는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하는 마음 때문이다.

3. 그렇게 영적으로 고민하는 부분들이 결혼 초기에는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만큼 아내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한다.

4. 오늘 우리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분명히 보이는 길은 아닐지라도, 희미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계속되는 삶이 내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뚜렷한 길이라 확신한다.

5. 오늘 본문, 요셉과 야곱의 고센 땅으로 간 이야기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6. 본문의 명제는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고백이 있기를 원한다.

7. 야곱과 요셉이 서로 주고 받아 얻은 결론으로 그들이 거할 땅, 고센은 어떤 곳인가? 왜 그들은 고센 땅을 택했으면,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내려 갔는가?

8. 야곱과 요셉의 선택기준은 이렇다.

9. 첫째 적지이지만,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이 우선이었다.

10. 둘째 자신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곳이다. 애굽의 문화와 섞이지 않는 곳이라면 조금 불편해서 문제가 없다.

11. 셋째, 늘 마음에 가나안을 품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고센은 가나안 땅에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서 늘 가나안을 생각하며 돌아가야 할 본향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12. 요셉과 야곱의 기준이다.

13. 믿음의 삶의 여정에서 순간 순간 선택해야 할 때, 야곱과 요셉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이 되기를 원한다.

14.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곳, 나아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기억하며 이를 잊어버리지 않을만큼 그곳에서 멀어져 있지 않는 곳에 살악나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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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6:28 - 47:12 <왜 그들은 고센 땅으로 갔는가?>

참고 - 45장 10절

46장
28절 "야곱이 ..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34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47장
1절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4절 요셉의 형들 중 다섯 명이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6절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애굽 땅에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9절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나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1절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 '라암셋'은 고센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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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창세기강해 5> p285-286.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코치를 받아 왕에게 말을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 대신이기에 애굽에서 제일 좋은 땅이 어딘지 잘 압니다. 그래서 형들을 코치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땅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왕이 형들에게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요셉이 코치한대로 교센 땅에 거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고센 땅을 달라고 했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창세기 46장에 나오는 대로 그곳이 목축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비옥한 땅이었기 땜누입니다. 요셉의 가족은 선조 때부터 목축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땅을 골라 준 것입니다.

 둘째, 고센 땅은 애굽 사람들이 사는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애굽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야곱 가족은 애굽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풍습과 언어가 있었습니다.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지킬 수 있는  땅이 고센 땅입니다. 애굽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모국ㄱ어와 전통과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이 고센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살 수 도 있고, 국외에서도 살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하나님을 믿는 모습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센 땅은 애굽의 동북쪽에 있는데 가나안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오긴 했지만 가나안을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당에서 삽니다. 그러나 이곳은 영원한 땅이 아닙니다. 애굽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당, 영원한 땅,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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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센 땅은 목초지입니다. 야곱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의 가족들을 '고센' 땅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당시 요셉의 권세나 지위로 보면, 가장 살기 좋은 곳, 즉 도시로서 발달 된 곳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센'은 오지나 다름없는 달동네로 봐야 합니다. 왜 요셉은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가?

소를 신성시하는 애굽 사람들에게 목축업은 가증이 여기는 대상입니다. 야곱은 애굽 사람들이 천히 여길 것을 알면서도 목축이 없이라고 하면서 고센 땅을 택하게 됩니다.

 달리생각하면, '고센'은 애굽의 세상 문화를 피하고 구별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지지켜 살아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되는 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증이 여기는 곳,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곳이 야곱, 후에 이스라엘 대민족이 되는 첫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 그리고 야곱의 가족은 믿음의 눈으로 보며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살아가려 할 대 고센 땅보다 더 좋은 땅은 없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궁의 가축을 돌보는 일도 하게 됩니다. 일의 몫을 취하면서 말입니다.
 창 46:7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당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고센 땅은 좋은 땅입니다. 창47:17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고센의 다른 이름은 라암세스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탈출을 하려 할 때 이곳을 출발 지점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출12:37, 민33:4, 5).

 믿음의 사람에게 좋은 땅은 외적 환경이 좋은 땅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의 방법으로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좋은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