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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15, 2012

내 마음의 밥상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봅시다.

어떻게 서로를 돌아볼까요?

사랑으로,
선행으로,
사랑과 선행에 대해서 서로 격려함으로,
서로 돌아보라.

서로 돌아보기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라.
자주 모이라.
함께 모이라.
초청하여 모이라.
모이는 것이 돌아보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요. 모일 때 잘 모여야 합니다.
잘못 모이면 아니 모인만 못합니다.

그렇다 모여서 무엇을 할까?

"격려하며" - 사랑과 선행으로 그들을 격려하자.  
"권하여" - 책망 할 것이 있으면 그들을 책망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그런데 모여서 책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여서 칭찬만 하면 좋지요. 모든 것이 좋지요.
그런데 모여서 칭찬만 하면
그냥 잠깐 즐거움을 맛보는 모임이 됩니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모임이 되려면
책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망을 해야 할까요?
 권계하며 
 격려하며
 붙들어주며
 오래 참으라

이렇게 네 가지가 꼭 책망할 때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주 모여서 무엇해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자주 모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이러면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찾아 만나러 간다.
대화한다.
그러면 좋다.

그런데 말이죠...
저처럼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찾아가서 만나주지 않으면
쉽게 소그룹같은 모임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찾아가야 합니다.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사탄의 권법이지요.
거기에 넘어지면 안됩니다.
어색해도
불편해도
별 유익이 없다 생각이 들어도
모여야 합니다.

모여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그 날이 가까이 올 수록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오늘도 찾아갑시다.

오늘도 만나러 갑시다.
오늘은 혼자 있지 맙시다.
오늘은 형제가 연합함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를 아는 한 날이 됩시다.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모이기를 폐하는" ... 자꾸 모여야 한다. 소그룹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모여서 무엇을 할까?
"격려하며" - 사랑과 선행으로 그들을 격려하자.  
"권하여" - 책망 할 것이 있으면 그들을 책망하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어떻게 책망할 것인가?
권계하며 
격려하며
붙들어주며
오래 참으라

이 네 가지가 꼭 책망할 때 필요하다. 

===
교회가 시작되고 난 이후부터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영혼을 가꾸는 훈련들을 해왔습니다. 공동체 예배, 함께 떡을 떼는 일, 사도들의 가르침, 공동체 금식과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 책임을 지는 일 등입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가 교회의 목표이며 책임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면, 성도들에게 어떤 행동들을 권하고 격려할 수 있는 권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물론 용서하고 화해하고 망가지고 깨어진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용한다는 것이 공동체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요구가 오늘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 10:24-25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돌아보아”라는 표현을 주목해서 보면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할지 신중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격려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서로를 고무시키고 자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상호책임은 격려와 책망 사이의 곡예와 같습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한눈을 팔거나 지쳤을 때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는 서로를 책임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우리가 성공할 때 박수쳐주고 실패할 때 손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믿음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격려는 또한 책망을 수반합니다. 책망하는 것은 경고하고, 주의를 주며,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특정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특정한 방법으로 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이 구절에 나오는 동사들인 권계하며, 격려하고, 붙들어주며, 참으라 등은 공동체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인내하는 데는 확실히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성입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오직 공동체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동사 ‘권계’는 우리 대부분이 불편해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사랑의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를 사랑 안에서 돌보아야 한다면,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 어떤 부분에서 어떤 격려가 필요한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방해를 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사랑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보고 격려하고 때로는 책망함으로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공동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의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6장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Monday, December 5, 2011

리더의 두 가지 선택, 피그말미온과 스티그마

리더의 두 가지 선택, 피그말미온과 스티그마

리더십이란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국 리더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단순히 행동만 드러난다고 하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잠재되어 있음을 안다면, 리더는 단순히 구성원들의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에 의하면 사람들은 때로 '다섯 살 난 아이의 마음'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도 사람의 마음은 이미 다섯 살에 거의 결정된다고 합니다. 다섯 살 난 어린아이 속에 형성된 마음이, 사람에 따라서는 성인이 된 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마음의 영역을 다루는 분야가 리더십이라고 한다면, 결국 진짜 리더는 다섯 살 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리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다섯 살 심리'에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다섯 살 심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칭찬’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슬로우에 따르면 칭찬, 즉 인정과 존경의 욕구는 제법 높은 단계의 욕구수준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할 것 없이 칭찬을 받게 되면 높은 수준의 동기를 부여받게 됩니다. 소위 ‘다섯 살 심리’에 칭찬과 격려는 제대로 에너지를 부여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칭찬은 일의 결과에 따라 내어놓는 단순한 ‘보상물(reinforcement)’이 아닙니다. 물론 구성원들이 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서는 당연히 칭찬을 해 주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리더가 앞으로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태도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피그말리온과 스티그마입니다. 
 사람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격려를 해 주게 되면 언젠가 그들도 조금씩 기대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그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구성원에게 낮은 기대감을 보임으로써 낮은 수준의 성과나 행동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피그말리온의 반대개념으로 ‘스티그마(실패증후군)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맡겨진 일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가만히 봅시다. 과연 그들이 실제로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까요?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스티그마 현상의 파급효과로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구성원이 어떤 일을 기한 내에 수행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물을 가져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리더는 그 때 즉각적으로 그 구성원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능력과 성과가 떨어진다고 걱정하게 됩니다. 스티그마 현상은 그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 리더는 그의 부족한 점들을 꼼꼼하게 지적해주고 그의 필요를 챙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점점 감독과 통제위주의 관리방식으로 리더십의 길을 내게 됩니다. 이런 관리방식이 일정 수준 넘어가면, 구성원들의 스티그마 현상은 급속도로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리더가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마음에서 조바심을 가지거나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그로 하여금 상사의존적 성향을 선택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상사회피, 혹은 인정받기 위하여 무리한 목표지향으로 인한 또다른 문제들을 발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리더는 더욱 그를 판단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더 완전히 낙인찍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가 그 다음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경우로 생각할 뿐입니다. 

스티그마 현상이 조직 내에 만연할 경우, 그 대가는 만만치 않습니다. 소위 ‘낙인찍힌 구성원’은 불만족을 표시하거나 조직행동을 거부하게 되고, 리더는 이 때문에 심리적인 에너지를 소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낙인찍히지 않은 사람들은 일의 과부하 현상으로 주저앉고 싶어지면서, 결국 팀워크는 깨어지고 조직의 역동성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티그마 현상은 소위 능력이 없는 구성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처음부터 이끌어주지 못했던 리더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의 효과와 스티그마 현상, 이 둘은 리더의 초기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어느 CF의 멘트처럼, 리더가 구성원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이끄느냐에 따라 조직 안에 스티그마 현상이 만연할 수도, 반대로 피그말리온 효과로 생동감이 넘칠 수도 있습니다. 구성원들을 춤추는 고래가 되게 할 것인지, 실패 증후군 환자로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리더 하기 나름입니다. 

퍼온글
리더십 네트워크 6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