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9, 2012

메시아의 작곡가 - 게오르크 프레드리히 헨델



게오르크 프레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 2. 23 작센 할레~ 1759. 4. 20 런던.
후기 바로크 시대 독일 태생의 작곡가. 특히 오페라, 오라토리오, 기 악 음악으로 유명하며 대표작으로는 오라토리오 〈메시아 Messiah〉(1741), 부수 음악인〈수상 음악 Water Music〉〈왕궁의 불꽃놀이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1749)가 있다.


기자: 따뜻한 봄바람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봄입니다. 모두들 느끼고 계시죠? 오늘은 이 아름다운 봄에 어울릴 따뜻한 음악가 한 분을 모셔볼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헨델 선생님!



George Frideric Handel in 1733



헨델: 안녕하십니까. 정말 아름다운 날씨입니다. 음악을 이야기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군요(웃음).

Q1. 선생님이 사시는 이 탈리아는 연중 따뜻한 기후 때문에 전 세계적인 휴양지로도 유명한데요, 이곳에 사시게 된 특별한 이 유가 있나요?
A1. 이탈리아는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이고, 제가 사랑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매일 감사 드립니다. 제가 이탈리아어로 많은 오페라와 가곡을 작곡해서 저를 이탈리아인이라고 생각하 신 분도 있는 것 같은데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이라는 제 이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저는 독일의 할레 지방에서 태어난 독일인입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할레 지방 사람들도 음악을 아주 좋아했죠. 또한 이 지방에는 음악의 요정이 자주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가들이 꾸준히 배출 된 지방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 살다가 이탈리아로 본격적으로 넘어온 것은 제가 스물 한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음악의 본고장이라 여겨졌던 이탈리아로의 여정은 사실 열 한 살 때부터 기회가 있었지만 제가 성인이 될 때 까지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곤 했었죠.

Q2. 음악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가 있으셨나요?
A2. 어머니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죠. 그 때나 지금이나 음악가보다는 법률가의 길로 가는 것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에서 폭발하듯 꽃피는 재능을 억누른 채 아버지의 명령에 법률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에 대항해 반발하지 않은 이유는, 부모 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법률 공부를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이 제 인생에 예비하신 길의 일부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음악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거든요.

Q3.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하신 때는 언제인가요?



birthplace of George Frideric Handel

A3. 독일 할레 지방은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고, 훌륭한 음악가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매 주일마다 성당에서 웅장한 오르간 연주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죠. 비록 그 때만해도 저를 법률가로 키 우려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마음껏 음악을 배우거나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다락방에 클라비코드라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작고 부드러운 악기를 숨겨놓고 매일매일 연습하곤 했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제가 여덟 살 정도였던 때로 기억되는군요. 할레 지방의 영주인 작센 바이센펠스 공작 앞에서 우연찮게 연주할 기회가 생긴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로 공작은 저의 연주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 고, 아버지를 설득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법률 공부와 병행한다는 조건을 달고, 제가 음악 수업을 듣는 것을 허락하셨죠.



The Chandos portrait. The 1st Duke of Chandos
was an important patron for Handel.


저는 샨도스 공작(Baron Chandos)이 붙여준 개인 음악 교사인 차하우 선생님에게서 오르간, 클라브생, 바이올린과 오보에등 많은 악기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많은 음악들을 듣고 작곡 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지요. 당시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과목들이었습니다.
그 때의 제 심정을 혹시 이해 하시겠습니까? 제가 언제나 꿈꾸기만 하던 음악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과, 제 가 음악 수업을 듣고 있다는 실로 믿어지지 않는 행운의 날들이 시작 된거죠(웃음).

Q4. 선생님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낀 분들이 많았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A4. 열한 살에 만난 베를린의 소피 샬로테 공작부인이 생각나는군요. 제게 음악 공부의 길을 열어준 작센 공작 과 차하우 선생님도 잊지 못할 만큼 좋은 분이셨지만 샬로테 부인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재능 있는 음악가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굉장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A musical portrait of Frederick, Prince of Wales and his sisters


공작 부인은 저를 이탈리아로 보내고 싶어했죠. 당시 이탈리아는 음악의 요람 같은 곳이었거든요. 국적과 출신,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재능 있는 음악가를 키워내고자 했던 공작 부인의 의도와는 달리 저희 아버지께서는 아직 제가 법률가가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저의 의지와 상관 없이 또 한번 그렇게 이탈리아 유학의 길은 멀어졌지만, 샬로테 부인이 제게 보인 열정과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죠.



Sophia Charlotte

십 년 후 이탈리아 로마의 생 장 드 라트랑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채용되어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 길에 올랐던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도 샬로테(Sophia Charlotte) 공작 부인이었습니다.

Q5. 이탈리아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시아도 이 때 작곡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 생님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이 있으신가요?
A5.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메시아가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에 감사 드립니 다. 이탈리아에 머무르는 첫 3년간 이탈리아의 자유의 빛깔에 매혹되었죠. 정적이고 웅장했던 독일 의 음악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자유롭고 화사한 분위기가 눈에 띄더군요.
저의 종교 음악의 시작 은 이러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많이 닮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음악적 색채가 짙은 메시아 역시 많은 묵상을 통해 만들어진 대곡이지만, 저는 개인적인 제 믿음의 고백을 옮긴 딕시 도미누스를 소 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믿게 된 그 믿음을 가지고 저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올 린 첫 곡이죠.



Handel by Philip Mercier


저는 음악의 고장 독일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음악가가 되는 것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음악을 배우게 되고, 시간이 흘러 몇 번이나 좌절 되었던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되었 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는 결코 쉽지 않았던 여정 동안, 저는 저의 꿈을 지지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께 대항한 적도, 이탈리아 행이 좌절 되어 낙담한 적도 없었습니다. 음악보다 중요했던 신념, 하나님이 저의 길을 바르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이 믿음에 신실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이쯤 되면 제 신앙의 고백시인 딕시 도미누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Q6. 오페라와 오라토 리움 같이 스토리가 있는 음악의 작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신데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A6. 앞에 말씀 드린 메시아나 딕시 도미누스처럼 신앙의 고백이나 성경을 중심으로 한 곡들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저는 역사도 아주 좋아합니다. 줄리어스 시저와 타메를라노처럼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 역시 성경 못지 않게 저의 음악적 영감을 자극하는 인물들이죠. 역사 안에 얽힌 전쟁, 분노, 사랑,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스토리를 읽어보세요. 그 어떤 훌륭한 작가도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역사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을 겁니다.
*타메를라노: 타르타르의 황제로, 터키의 술탄인 바자 제를 잡아 가두었으나 바자제의 딸인 아스테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기자: 날씨 좋은 봄날의 해가 지고 있네요.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해주신 헨델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헨델: 따뜻한 봄 저녁 노을을 보고 있자니 거대한 런던 공원에서 울리던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이 생각나는군요. 영국의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아름다운 공원에서 거대한 불꽃놀이와 함께 연주되던 음악이죠. 아주 장관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이 만드신 이 봄의 노을에는 미치지 못하는군요. 저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만나 뵐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참고도서: 음악의 어머니 헨델/ 밀드레드 클라리 지음/ 이경혜 옮김/ 비룡소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