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9, 2012

영적 훈련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에서...

영적 훈련 - 이불과의 전쟁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 5:23)
최근 당신의 경건의 시간(QT)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당신은 경건의 시간을 위한 시간을 내느라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삶 속에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습관을 들이려 애쓰는 순간, 수많은 장애물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당신이 주님을 매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싸움을 걸어온다. 실제로 경건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을 방해하는 아주 흔한 장애물이 네 가지가 있는데, 앞으로 몇 일간 이 장애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사탄이 우리 앞에 두는 그야말로 가장 흔한 장애물은 바로 ‘자기절제의 문제’이다. 나는 이를 가리켜 ‘이불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불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비록 몸이 피곤하더라도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마귀는 당신이 얼마나 피곤한지를 부풀려 말할 것이다. 이렇게 자제력을 상실하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성경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 5:23) 따라서 이불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필요하다.
  • 즉시 일어나라! 전쟁은 첫 몇 분 안에 승패가 결정된다.
  • ‘시간 도둑’이 있음을 인지하라. 이것은 인터넷 서핑이나 TV를 보는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경건의 시간 대신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 도둑’이다.
  • 성경을 마음에 품고 잠자리에 들어라. 아침에 읽은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어라. 그러면 다음 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내일 아침에 이불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이 하나님과 만나는 경건의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사탄이 사용하는 ‘시간 도둑’은 무엇인가? 그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당신은 오늘 어떤 변화를 주겠는가?
  • 성경구절을 색인 카드에 적거나 욕실 거울에 테이프로 붙여놓는 것과 같이, 성경을 마음에 계속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영적 훈련 - 정체기와 싸우기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0:1)
우리 모두는 때때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벽에 부딪친다. 그 벽들은 그저 신앙생활의 일부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하신 다윗조차도 하나님이 매우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도 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 10:1)
어제 우리는 하나님과 단둘이 갖는 시간을 탈선시키곤 하는 네 가지 주요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어제 다룬 ‘자기절제의 문제’이다. 오늘 우리는 ‘정체기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일상성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단순히 감정에 의해 경건의 시간이 ‘잘 됐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왜 그런가? 감정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느낌은 왔다가 간다. 어떤 때는 하늘이 눈앞에 열리는 듯하면서 하나님과 아주 멋진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가 경건의 시간이 형식적이고 활기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매일 아침 멋지고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리라 기대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그러나 경건의 시간에서 정체기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면, 다음의 가능한 원인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 고백하지 않은 죄 -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것을 행할 때까지는 그 어떤 새로운 것도 보여주시지 않을 것이다.
  • 육체적으로 준비되지 않음 -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활기 있는 경건의 시간을 갖기 힘들 수 있다.
  •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함 - 너무 넓은 범위의 성경 본문을 선택하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서 서두르게 된다. 결코 하나님을 재촉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 타성에 젖음 - 매번 똑 같은 것을 하면 경건의 시간은 율법주의가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라. 경건의 시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보라.
  • 깨달은 것을 실천하지 않음 -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당신의 영적인 삶은 반드시 활력을 잃게 된다.
영적 정체기는 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꼭 고쳐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정체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하나님께 여쭤보고 상태가 나아지도록 도우시는 주님께 맡기라.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경건의 시간을 어떻게 더 잘 준비할 수 있겠는가?
  • 지난 주 묵상글에서 배운 방법 또는 아이디어 중에서 당신의 경건의 시간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것은 무엇인가?

영적 훈련 - 주의 산만 요인과 싸우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잠 2:2-5)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절제의 문제’와 ‘정체기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당신의 경건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면, 사탄은 당신을 덮치기 위해 ‘주의 산만의 힘’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것을 ‘두뇌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기도와 하나님 말씀 연구에 집중하려고 애쓰지만 정신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적인 ‘주의력 결핍증’과도 같다. 이렇게 되면 고개는 숙여지고 눈은 감기고 저절로 잠이 들게 된다.

그러나 다음 방법을 이용하면 두뇌의 전쟁에서 선전할 수 있다.
  • 걷기 -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그들은 종종 먹거나 걷고 있었음을 기억하라. 걷거나 먹을 때는 잠이 오기 힘들다!
  • 가까이에 노트 두기 - 머릿속에 주의 산만 요인들이 들어오면 무조건 노트에 적으라. 그럼 나중에 써놓은 것을 보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잊어버릴 수 있다.
경건의 시간에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를 대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내일 아침 또는 다음 번 경건의 시간이 되어서야 두뇌의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지 마라. 당신이 마주칠 주의 산만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 두뇌의 전쟁은 한편으론 당신의 초점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필사적으로 덤비는 사탄과의 싸움임을 기억하라. 이 싸움을 개인적인 일로 삼고 사탄이 당신의 생각과 정신 활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영적 훈련 - 분주함과 싸우기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4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해온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습관도 경건의 시간만큼 유지하기 힘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경건의 시간을 방해하는 가장 흔한 방해물 세 가지, 즉 ‘자기절제의 문제’정체기의 문제’, 그리고 ‘주의 산만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마지막 ‘좌절의 문제’는 단연코 우리가 씨름해야 할 것 중 가장 강력한 문제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정기적인 시간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문제이다. 세상에서 주님과의 정기적인 시간보다 더 유지하기 더 힘든 것은 없다. 세상과도 싸워야 하고, 육신과도 싸워야 하고, 사탄과도 싸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일제히 덤벼 우리가 너무 바빠서 경건의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분주함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받는 압력이 커지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을 때 일어난다. 무언가를 버려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문제는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바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버릴 때 일어난다.
하나님과의 시간을 생략할 때마다 우리는 좌절하게 되고 다시 시작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낙심하고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경건의 시간에 대한 가장 악랄한 공격은 우리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영역에서 온다.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 말씀에서 떼어놓을 수 있다면 전쟁에서 이긴 것임을 안다. 우리에게서 검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엡 6:17)
많은 성도들이 내게 했던 얘기가, 경건의 시간을 중단한 것이 잘못된 방향의 첫걸음이었다는 것이었다. 경건의 시간을 버림으로써 온갖 종류의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우리는 믿음의 씨름을 혼자 해나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삶에서 격려와 조언을 얻기 위해 누구를 의지하는가?
  • 당신의 삶에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당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또는 우선순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오늘의 스케줄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질문을 통해 성경을 깊이 탐색하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지난 몇 주간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적 묵상은 성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말씀을 씹고, 또 씹고, 또 씹는 것이다.
성경 공부 방법 중 ‘탐색하기’는 그러한 묵상에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마치 잭해머(휴대용 압축 공기식 드릴)처럼 질문을 던지며 본문을 깊이 탐색해가는 것이다. 탐색하기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것 중 가장 특이한 단어, ‘SPACEPETS’를 알려주고자 한다. 여기서 각각의 글자는 하나님 말씀과 관련하여 던질 질문의 키워드의 머리글자이다.
  1. 내게 고백해야 할 죄(Sin)가 있는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을 발견했는가?
  2. 붙들어야 할 약속(Promise)이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는 7천 개가 넘는 약속이 있다. 방금 읽은 본문에 보편적인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약속에 어떤 조건들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라. 모든 약속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3. 바꿔야 할 태도(Attitude)가 있는가? 내가 바꿔야 하는 생각이 있는가? 부정적인 태도, 염려, 죄의식, 두려움, 외로움, 상처, 교만, 무관심, 또는 이기심 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
  4. 순종해야 할 명령(Command)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간에 내가 순종해야 할 명령이 있는가?
  5. 따라야 할 본(Example)이 있는가? 따라야 할 긍정적인 본이 있는가? 또는 피해야 할 부정적인 본이 있는가?
  6. 기도해야 할 기도문(Prayer)이 있는가? 특히 바울, 다윗, 솔로몬, 엘리야, 이사야 등 인물들이 성경 속에서 기도한다. 그들의 기도를 이용하여 기도하면 응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 성경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7. 피해야 할 과오(Error)가 있는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현명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훨씬 더 현명하다! 우리에겐 직접 모든 실수를 저지를만한 시간이 없다. 그럼 성경에 나온 사람들의 과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8. 믿어야 할 진리(Truth)가 있는가? 종종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용이 나온다. 그럴 땐 그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 과거, 미래, 천국, 지옥, 또는 기타 성경의 주제에 대해 믿어야 한다.
  9. 하나님을 높여드릴 무언가(Something)가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나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심과 같이, 본문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 드릴 것을 찾을 수 있다.
위 리스트의 모든 질문에는 ‘동사’가 있다. 질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을 성경이나 성경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카드에 적어보라. 그러면 성경을 묵상할 때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탐색하기’ 성경공부법에 대해 읽은 후 어제 경건의 시간에 읽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이 방법을 그 본문에 적용해보라. 어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가?
  •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의지하고 있는가?

성경은 왜 그렇게 적용하기가 힘든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성경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쉬웠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 중 읽은 것을 삶에 진정으로 적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적용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성경 적용이 힘든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 적용은 진지한 사고를 요구한다. 자신이 배운 성경을 적용하려면 긴 시간의 집중된 기도와 생각이 필요하다. 적용 사항을 늘 즉각적으로 이해할 순 없다. 읽은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읽은 것을 묵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종 그러한 시간을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사탄이 적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싸운다. 사탄은 격렬하게 싸운다. 공부한 것을 적용하려고 할 때,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이 당신의 경건의 시간에 들어올 것이다. 사탄은 당신이 그저 말씀을 듣거나 읽기만 하는 데 만족하는 한 사탄의 계획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게 삶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사탄은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사탄은 말씀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변화를 선천적으로 싫어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주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이 말씀으로 변화되길 원하시고, 우리를 좀더 예수님처럼 만들고 싶어하신다. 우리를 좀더 예수님처럼 만드는 열쇠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가 성경 해석과 성경 배경 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과 성경의 배경과 성경의 교리를 다 배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속적으로 살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싫어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당신과 나는 성령에게 힘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스스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 주시길 구하라고 말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우리 힘으로 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적용하도록 돕는 “풍성함”이 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 하나님께 힘 주시길 기도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해 삶 속에서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도 있다. 당신에겐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고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성경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맹세하실 때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히 6:18b, 새번역)
성경은 교리적으로 정확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은 신학적으로 정확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정확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역사적으로도 정확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성경에서 히브리서 6:18b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맹세하실 때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새번역) 우주가 작동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언제나 참되시기 때문이다.
성경에 거짓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신성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므로,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시편 33:4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이는 성경이 구원과 역사에 대해 바르고 진실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여타 역사를 판단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 성경은 당사자의 설명에 기인한다. 역사가는 역사적 정보가 그것을 직접 본 사람에 의해 쓰여졌는지, 제 삼자에 의해 쓰여졌는지, 또는 수백 년 전에 쓰여진 전설인지를 구별한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목격자의 진술이다. 모세는 홍해가 갈라질 때 그 자리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벽이 무너질 때 그곳에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방에 모였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을 보았다.
  • 성경의 역사는 극도로 신중히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의 필경자(사본필사자)가 두루마리를 한 장씩 옮겨 적을 때, 그들은 마치 복사기로 복사한 것처럼 필사했다!
    그들에게는 정확히 필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많은 규칙이 있었다. 늘 동일하게 쓸 수 있도록 구약성경 전체에 정해진 줄 수가 있었으며, 심지어 그러한 줄들은 길이도 동일해야 했다. 그들은 각각의 책에 각각의 글자가 몇 개씩 들어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책에 A가 1,653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만약 1,654개의 A가 발견되면 그 두루마리 종이를 버리고 새로 시작했을 것이다.
  • 고고학자들이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고고학자들은 성경에서 언급된 장소들을 파헤쳐왔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맹인이 고침 받은 실로암 못과 헤롯 성전의 일부를 발견했다. 헷 제국(The Hittite Empire)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위대한 예이다. 대대로 역사가들은 헷 족속의 존재에 대한 기록을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에 고고학자들은 헷 제국의 수도에서 1만 개의 점토판을 발견했다. 이제는 헷 족속이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성경이 사실임을 믿는가?
  • 하나님 말씀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는가?

성경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시 148:4-6)
어쩌면 당신은 성경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틀렸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성경을 연구한 적이 없거나, 과학을 연구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과학 법칙을 세우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이 그러한 법칙과 모순되지 않게 하셨다.
유명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그저 하나님을 좇아 하나님의 사고를 사고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물리학 법칙을 세우셨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성경은 과학 교과서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성경은 로켓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과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잘못된 과학을 전하지 않는다! 성경이 쓰여진 1,600년 동안 성경은 단 한 번도 잘못된 과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사실 성경은 늘 과학을 앞선다.
그 예를 들어 보자.
  •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2,600년 전에 이사야서 40:22을 통해 하나님께서 땅 위 궁창(the sphere, 구(球))에 앉으신다고 말씀하셨다.
  •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무언가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힌두교도들은 거대한 코끼리가 그렇게 한다고 믿었다. 그리스인은 아틀라스가 그렇게 한다고 믿었다. 이집트인은 다섯 개의 기둥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성경은 무언가가 지구를 들고 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별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레미야 33:22은 별의 수를 셀 수 없다고 말한다.
1861년에 미국에서는 ‘성경이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는 51가지 명백한 증거들’이라는 매우 유명한 책이 출시되었다. 오늘날 그 명백하다는 증거 중 단 하나라도 동의하는 과학자는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 과학에 의해 오류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시 148:4-6)
열역학 제2법칙은 오늘은 적용되고 내일은 적용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참이고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제나 적용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당신을 둘러싼 모든 자연에서 보이는 것을 확증하는 진리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 누군가가 성경이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고 말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길 바라신다고 생각하는가?
성경 상의 예언 -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 1:21)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며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은 그뿐만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 자신의 숨결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성경이 그저 좋은 책에 그치지 않음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참되고 신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역사적으로 과거에 실현되었고 앞으로도 실현될 예언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도 빠짐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미 실현이 되었거나 아니면 미래에 언젠가 실현이 될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 한 분에 대해서만 300개가 넘는 예언이 들어 있다. 이 예언들은 모두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천 년 전에 쓰여졌다. 성경은 예수님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에 대해 예언했다. 예수님이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탄생을 조작하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실지도 예언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천 년 전에 다윗은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을 시편 한 부분에 묘사했다. 다만 당시 사람들이 십자가형이라는 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는 것을 생각해내기도 훨씬 전에, 다윗은 그것을 묘사했다.
분명 하나님만이 그것을 아신 것이다.
내가 당신에 대해 300개의 예언을 했는데 그것들이 다 실현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천문학적으로 작은 숫자라 다 받아 적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성경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 우연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계획하셨다고 믿는 것보다 더 많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성경은 말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 1:21)
구약 시대에는 아무도 예언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예언은 늘 100퍼센트 정확해야 했다.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그 예언을 한 사람은 거짓 선지자로 여겨져서 죽임을 당했다. 그러니 정확한 예언을 하는 게 신상에 좋았을 것이다!
또한 성경의 예언은 하나도 빠짐 없이 옳았다. 성경의 예언이 실현되기 때문에 성경은 신뢰할 수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당신은 성경이 참되다는 사실을 믿는가? 당신은 의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지는 않는가?
  • 성경은 당신의 삶에서 얼마나 유익한가? 당신은 성경을 단지 격려용으로만 사용하는가 아니면 삶 가운데에서 책망하고 교정하고 훈련하는 도구로도 사용하는가?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원칙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1b)
당신은 누군가로부터 “그건 네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거야.”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마치 이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 한 말이 무효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말은 아무 것도 무효로 만들지 못한다.
성경 해석에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다. 개중에는 늘 잘못된 해석으로 이끄는 성경 해석 방법들도 있다. 이제 어디에서나 수용되는 성경 해석의 여섯 가지 원칙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성경을 해석하려면 믿음과 성령이 필요하다. 성경은 비신자의 눈에는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성경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연애 편지이다. 비신자가 성경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내진 편지를 읽는 것과 같다. 성경은 영적인 사람들이 이해해야 하는 영적인 책이다. 고린도전서 2:11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2. 성경의 가장 좋은 주석은 성경이다. 성경은 성경을 해석한다. 여백에 상호 참조된 성경을 유의하면서 이 원칙을 적용해보라. 다른 상호 참조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본문 한 부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의 그림을 더 훨씬 더 크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신약을 염두에 두고 구약을 읽으라. 그리고 구약을 염두에 두고 신약을 읽으라. 신약은 구약에 감춰져 있다. 또한 구약은 신약에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
  2. 항상 명확한 본문에 비추어 불명확한 본문을 해석하라. 모순되거나 혼란스러워 보이는 본문을 만났을 때, 성경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가르침을 보고 분명한 이해를 얻으라.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29을 보면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매우 모호하게 언급된다. 성경에서 이 개념이 거론된 것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성경의 그 어디에도 이것을 묵과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구원과 세례에 대한 명확한 본문으로 이 불명확한 본문을 해석하라. 그 반대로 하지 마라.
  3. 역사적 사건에만 기초를 둔 신조를 만들지 마라. 성경에서 역사적 서술법에 의한 본문을 그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여 좋은 교훈으로 삼지 마라. 그것을 토대로 신조를 만들지 마라. 예를 들어 마가복음 1:35에서는 예수님이 매우 일찍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집에서 나가 어딘가로 가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좋은 생각임을 납득시키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명령이 아니다. 신조를 만들고자 할 때는 교리적인 본문을 이용하라. 서술된 본문은 교훈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라.
  4. 절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지 마라. 성경 연구의 핵심은 성경을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나 경험과 일치시키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감정과 느낌은 우리를 속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라.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초청하여 당신을 그분 뜻대로 만들어 가시게 하라.
성경을 공부할 때, 하나님은 말씀에 눈을 떠가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이 기본적인 여섯 가지 성경 공부의 법칙을 따르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을 읽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위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지난 몇 일간 경건의 시간에 읽었던 본문 중 하나를 다시 읽어보라. 하나님께서 어떤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시는가?
  • 당신은 성령이 당신의 삶에 역사하시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는가?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이 당신의 생각을 인도하시도록 마음을 여는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