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창 43장 16-34절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개인이 영달을 위한 꿈이 아니라, 형제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무엇보다 기쁨과 환희 눈물을 주는 극적인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 자신의 뜻을 접는 것과 하나님의 꿈을 접는 것은 다릅니다.
앞서 야곱은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뜻과 의지는 하나님의 꿈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뜻을 접어야 할 때 아픔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꿈을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뜻을 버리기 쉽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뜻과 하나님이 꿈이 같도록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겠지요.
3.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꿈에 가장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4. 자신의 뜻과 하나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과 계획을 하면서, 하나님의 꿈이기를 원합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소중한 다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순수함과 소중함은 퇴색되고 자신의 야망이 하나님의 꿈을 대신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5. 수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과 소중함으로 시작된 아름다운 계획들이 왜 무너집니까? 어느 순간 자신의 야망이 순수함과 소중함을 야금야금 갉아 먹기 때문입니다.
6. 더욱 지킬만 한 것들 중에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처음 그 품었던 하나님의 꿈. 그리고 그 순수함과 소중함을 더욱 지켜야 합니다.
7. 43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안에, 하나님이 보시는 방향안에 "기근"이 각처에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이 살 던 곳에도 더 이상 곡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치리하는 애굽에는 곡식이 풍성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꿈이 수십년이 지난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8. 앞서 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9.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로 하나님의 꿈 위주로 말씀의 내용을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0. 하나님의 꿈은 만인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11. 순수하게 요셉의 꿈부터 보겠습니다. 26절에 보면 "땅에 엎드려 절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요셉이 사지로 몰리게 되는 이유가 되었던, "그 꿈"이제 이루어졌습니다.
12. 그러나 요셉의 꿈, 즉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때, 만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3. 먼저는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에게 큰 유익입니다. 또한 요셉을 섬기는 신하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23절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아가, 야곱을 살리고, 야곱의 형제들을 살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입니다.
14. 우리의 꿈, 나의 꿈도 그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바로 이게 하나님의 꿈입니다.
15. 또한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기쁨과 환희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즉 꿈은 감동이 있습니다.
30절 "요셉이 아루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16. 요셉의 마음입니다. "야, 보라, 내가 수 년전에 너희에게 말했던 그 꿈대로 되었지 않느냐?" "내가 그 때 뭐라고 했어!" "너희들이 나에게 고개 숙일 것이라 했지! 그대로 돼잖아!"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17. 요셉은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냐민을 다시 보고 너무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베냐민이 좋아서 울었습니다. 또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서 감사하며 울었습니다.
45: 14-15절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18. 우리의 꿈은 이러한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꿈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배만 채우고, 다른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꿈입니까?
19. 아주 큰 꿈이어서 기뻐하고 감동했나요?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수년만에 떨어져 있다가 만나는 만남이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20. 우리의 꿈이 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작고 소중한 꿈들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도, 많은 사람들에 유익이 되며, 또한 기쁨과 환희의 울음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아주 귀중한 위대하고 원대한 꿈입니다.
21.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2. 오늘 본문에서 요셉의 꿈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23. 요셉의 꿈은 결국 수년 동안 떨어져 있다고 다시 만나는 이산가족상봉으로 이루어집니다.
24.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결국 이 꿈은 가족에게 기쁨과 환희 눈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25. 우리도 이러한 꿈을 꾸기를 원합니다. 원대한 꿈이 아니라, 소소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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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꿈이 이루어질 때에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꿈을 꾸자.
연결하면, 애굽을 살리고, 요셉의 신하들도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림에서 말씀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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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절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6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9절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31절 "요셉이 아루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3절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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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12, 2012
Wednesday, March 7, 2012
한 날 묵상 - 창세기 43장 1-15 <뜻을 접어야 하는 순간에 이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돌파구.이다.>
1. 이스라엘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심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먼저 떠오른 단어가 있다면, "자포자기"이다. 스스로 포기하는 길로 접어 드는가?
2.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심리적 전개를 보면, "기근이 심함 -> 괴로움 -> 잃게 되면 잃으리라."이다. 다시 한 번 큰 위기가 찾아오고,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 심히 괴로움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잃으면 잃게 되리라는 결단을 하게 된다.
3. 이스라엘은 심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들 12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요셉을 잃으면서, 하나씩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으면, 이제는 기근에 아끼는 베냐민까지 잃게 되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닌 듯 싶다.
하나씩 거두어 가신다.
아직도 모자라 또 하나를 거두어 가신다.
나의 생각과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또 하나를 거두어 가신다.
한편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히 또 다른 것들이 새롭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는 거두어 가시고, 하나는 일으켜 세워주시는 혼란과 혼미만이 나를 감싸고 있다.
4. 큰 기대에 큰 실망이 정말 현실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도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된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뜻하는대로 전부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막힌 담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도 전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모을 때 불쑥 뛰어나는 말들이 있으며,
마음을 모아 일을 진행함에 있어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볼 떄, 민족의 역사안에 그린 큰 그림들이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5.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으니, 자포자기해야 하는가?
6. 아니라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7. 이스라엘에게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결심앞에 그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8. 13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 은혜를 베푸사 .. 원하노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은혜를 주시기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9. 지금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10.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즉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버린 패를 보아야 하나? 새롭게 취한 패를 보아야 하나?
지금 이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울 힘은 무엇인가?
돌!파!구!
11. 베냐민을 보내는 이스라엘의 마음이란?
선교를 포기해야 하는 나의 마음이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직 거기까지 나의 마음이 가지 않는구나!
12. 일어나 나의 길을 가자. 나의 길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점점 때가 물으익어가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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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절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3절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6절 "이스라엘이 ...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절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 오라 할 줄은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10절 유다의 다짐.
13절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절 "그 형제들이 ...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앞에 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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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2.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심리적 전개를 보면, "기근이 심함 -> 괴로움 -> 잃게 되면 잃으리라."이다. 다시 한 번 큰 위기가 찾아오고,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 심히 괴로움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잃으면 잃게 되리라는 결단을 하게 된다.
3. 이스라엘은 심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들 12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요셉을 잃으면서, 하나씩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으면, 이제는 기근에 아끼는 베냐민까지 잃게 되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닌 듯 싶다.
하나씩 거두어 가신다.
아직도 모자라 또 하나를 거두어 가신다.
나의 생각과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또 하나를 거두어 가신다.
한편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히 또 다른 것들이 새롭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는 거두어 가시고, 하나는 일으켜 세워주시는 혼란과 혼미만이 나를 감싸고 있다.
4. 큰 기대에 큰 실망이 정말 현실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도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된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뜻하는대로 전부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막힌 담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도 전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모을 때 불쑥 뛰어나는 말들이 있으며,
마음을 모아 일을 진행함에 있어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볼 떄, 민족의 역사안에 그린 큰 그림들이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5.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으니, 자포자기해야 하는가?
6. 아니라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7. 이스라엘에게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결심앞에 그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8. 13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 은혜를 베푸사 .. 원하노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은혜를 주시기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9. 지금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10.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즉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버린 패를 보아야 하나? 새롭게 취한 패를 보아야 하나?
지금 이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울 힘은 무엇인가?
돌!파!구!
11. 베냐민을 보내는 이스라엘의 마음이란?
선교를 포기해야 하는 나의 마음이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직 거기까지 나의 마음이 가지 않는구나!
12. 일어나 나의 길을 가자. 나의 길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점점 때가 물으익어가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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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절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3절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6절 "이스라엘이 ...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절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 오라 할 줄은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10절 유다의 다짐.
13절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절 "그 형제들이 ...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앞에 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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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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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rch 2, 2012
한 날 묵상 - 창 43장 1절 <기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꿈대로 이루어져가는 역사의 한 순간, 한 때입니다. 이는 곧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한 날 묵상 - 창 43장 1절 <기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요셉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꿈대로 이루어져가는 역사의 한 순간, 한 때입니다. 이는 곧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 "기근이 심하였다"
1. "기근"은 야곱에게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시므온도 애굽에 잡히게 되었고, 더 이상 곡식은 없어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달리 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2. 그런데 "기근"이 그 땅에 되었습니다. 아직 얼마나 더 기근이 갈지 알 수 없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보릿고개는 희망입니다. 이 때를 지나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개'입니다. '고개'는 넘으면 희망입니다. 그래서 힘이 납니다.
3. 그런데 지금 야곱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4. 여기까지는 인간의 방향에서 바라본 '기근'입니다.
5. 그렇다면,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시는 방향'안에서 '기근'을 바라보기자 합니다.
'기근'은 인간의 마음으로 보면 힘들고 어려운 난관을 만난 것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로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계획입니까?
6. "기근"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미 보이신 일입니다.
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간다고 갈 수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부딪혀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7. 이쯤되면, 우리에게 크나 큰 질문이 생깁니다.
8. 우리는 성경의 독자로서 앞뒤 일을 하나님의 기록하심에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향을 볼 수 있지만, 야곱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충분히 가능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전혀 틀린 질문도 아닙니다.
9.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질문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답속으로 나의 문제를 내어드리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 일어나는 '기근'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의 함정에서 방법을 찾아 헤메지 말고, 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의 지금의 상황을 내어 드리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10.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11. "내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가지라"
우리의 눈은 직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곡선 뿐 아니라, 전방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한 방향이라면, 하나님은 전방향입니다. 우리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됩니다.
자연은 곡선의 세계이고
인공은 직선의 세계이다.
산, 나무, 계곡, 강, 바위, 초가집... 그 선은 모두 굽어 있다.
아파트, 빌딩, 책상, 핸드폰... 도시의 모든 것은 사각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곡선이고 죽은 것은 직선이다.
어쨌든 도시나 산촌이나 사람만은 곡선이다.
아직은 자연이다.
- 박기호의《산 위의 신부님》중에서 - "고도원의 아침편지"
12. '기근'앞에 나의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지금의 기근은 지나가고, 지나간 기근이 후에 나아게 큰 유익이 됩니다. 신앙으로 이 때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됩니다.
13.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지금 이 때입니까? 곧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근'이 일어나기전에 이 일을 예비해두셨고, 믿음으로 이 때를 이길 떄, 피할 길을 주시고, 은혜를 주실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눈으로 '이 기근'의 때를 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 "기근이 심하였다"
1. "기근"은 야곱에게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시므온도 애굽에 잡히게 되었고, 더 이상 곡식은 없어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달리 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2. 그런데 "기근"이 그 땅에 되었습니다. 아직 얼마나 더 기근이 갈지 알 수 없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보릿고개는 희망입니다. 이 때를 지나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개'입니다. '고개'는 넘으면 희망입니다. 그래서 힘이 납니다.
3. 그런데 지금 야곱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4. 여기까지는 인간의 방향에서 바라본 '기근'입니다.
5. 그렇다면,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시는 방향'안에서 '기근'을 바라보기자 합니다.
'기근'은 인간의 마음으로 보면 힘들고 어려운 난관을 만난 것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로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계획입니까?
6. "기근"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미 보이신 일입니다.
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간다고 갈 수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부딪혀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7. 이쯤되면, 우리에게 크나 큰 질문이 생깁니다.
8. 우리는 성경의 독자로서 앞뒤 일을 하나님의 기록하심에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향을 볼 수 있지만, 야곱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충분히 가능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전혀 틀린 질문도 아닙니다.
9.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질문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답속으로 나의 문제를 내어드리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 일어나는 '기근'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의 함정에서 방법을 찾아 헤메지 말고, 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의 지금의 상황을 내어 드리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10.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11. "내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가지라"
우리의 눈은 직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곡선 뿐 아니라, 전방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한 방향이라면, 하나님은 전방향입니다. 우리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됩니다.
자연은 곡선의 세계이고
인공은 직선의 세계이다.
산, 나무, 계곡, 강, 바위, 초가집... 그 선은 모두 굽어 있다.
아파트, 빌딩, 책상, 핸드폰... 도시의 모든 것은 사각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곡선이고 죽은 것은 직선이다.
어쨌든 도시나 산촌이나 사람만은 곡선이다.
아직은 자연이다.
- 박기호의《산 위의 신부님》중에서 - "고도원의 아침편지"
12. '기근'앞에 나의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지금의 기근은 지나가고, 지나간 기근이 후에 나아게 큰 유익이 됩니다. 신앙으로 이 때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됩니다.
13.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지금 이 때입니까? 곧 지나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기근'이 일어나기전에 이 일을 예비해두셨고, 믿음으로 이 때를 이길 떄, 피할 길을 주시고, 은혜를 주실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눈으로 '이 기근'의 때를 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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