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5, 2012

완성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 - 신명기의 구조와 신학 - 송제근교수


 
- 그 말씀 2004년 1월호를 위하여 -
땅의 완성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
-신명기의 구조와 신학 -
宋 濟 根 교수   -  2004/6/19(토)


도 입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신학적으로 깊은 책이 신명기다.   신명기의 이러한 특성은 신명기 연구의 복잡성 혹은 난맥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난관을 뚫을 수 있는 연구의 기초는 아무래도 신명기 자체 속에 있다기보다 신명기와 가장 유사한 출애굽기, 특히 출 19-24장과의 관련성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두 책의 상관성은 오래 전부터 세 가지 관점에서 인식되었다 : 법, 신학, 구조.
 첫째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법의 상관성이다.  전체적으로 이 두 법체계는 (출 21-23장, 신 12-26장) 내용적인 유사성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물론 일반적이고 거친 면이 있는 출애굽기의 법에 비해서 신명기의 법은 예민하고 구체적이며 대단히 설득적이다.
 둘째로, 법적 차원의 근본적인 내용으로서, 두 책이 신학적으로 상관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특이한 점은 양자가 모두 신학적으로 언약(조약, berith)을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본인의 학위논문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 (이레서원, 2004, 제2판 예정)에서 잘 드러내었다.  본인의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두란노, 2003)도 참조하라.
 물론 첫째 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언약으로서 첫째 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다루고, 둘째 책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맺은 언약으로서 갱신된 언약인 모압(세겜)언약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셋째로,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구조에서 나타난다.  출애굽기는 사건의 진행순서를 따라서 역사서술적으로 묘사되어서 구조를 파악해  내기가 쉽다.  그러나 신명기는 설교적 혹은 제의적 맥락 S.R. Driv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Deuteronomy, 1895, lxxvii-lxxxviii; M. Weinfeld, Deuteronomy and the Deuteronomic School, 1972, 320-365; G. von Rad, Deuteronomium, passim; J.G. McConville, Deuteronomy (Apollos Old Testament Commentary), 2022, 19,  반복적 단어와 용례사용, 특징적인 용어나 구절 사용 등이 그 특징으로 보인다.  6시간 정도면 낭독이 되는 히브리어 신명기 본문의 설교적 맥락은 아마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속에 - 심지어는 사건의 역사적 진행순서를 마음대로 변용하면서 - 그 신학적 내용이 완벽히 재편되었기 때문에 복잡한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차이를 명확하게 의식하여서 신명기의 신학과 구조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1. 신명기구조의 특이성

1.1. 구조란 무엇인가 ? - 구조의 다중성 (多重性 Multiplicity)

 일반화된 용어인 구조라는 단어는 어떤 책이나 장이 어떻게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구조는 주로 그 책이나 장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내용인 신학의 구조로만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기록된 원래 사건의 핵심적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는 현 상황에서의 목표와 관련된 구조가 있을 수 있다.  전자를 '신학적 구조'(theological structure)라고 할 수 있고 후자를 '상황적 구조'(situational structure)라고 표현할 수 있다. 두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출애굽기(특히 19-24장)와 신명기는 신학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는데 그것은 언약체결 혹은 언약갱신체결이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기록하는 현상황에서는 그것을 역사적, 연대기적인 순서로 기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역사기록을 하는 Sitz im Leben이 어떤 것인지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신명기를 기록하는 현상황에서는 그것을 철저히 재구성하여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을 본다.
    둘째로 소위 신명기적 역사서로 불리우는 삼상하-왕상하와 역대상하는 모두 신학적으로는 언약적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상황적 구조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전자에서는 무너진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비판하고 역사의 책임과 회복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는 상황적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후자는 동일한 신학적 구조를 이스라엘을 재건해야 할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주어진 재건의 기회를 어떻게 제사장적, 제의적 기초에서 이룰 것인가를 다룬다. 

 '신학적 구조'(theological structure)는 그 장만 혹은 그 책만이 가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경전체 계시의 구조 속에 부분 혹은 전부를 형성하는 것으로 하나의 나무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이 신학적 구조들의 연관 안에 성경 계시의 통일성을 발견한다.
 '상황적 구조'(situational structure)는 그 신학적 뼈대 혹은 틀을 지금 기록되는 글의 현실적 상황을 위해서 재구성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건과 글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후대의 기록은 반드시 전자의 단순한 반복은 아닐 수 있고 또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1.2. 신명기의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신명기의 핵심적인 내용이자 근본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신학적 구조는 신명기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명기가 성경의 다른 책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서 성경 전체 계시역사의 대하(大河) 속에 신명기가 같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명기가 출애굽기 특히 19-24장과 공유하는 신학적 근본은 언약체결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언약체결이지만 여기서는 언약갱신이다.  즉 거기서는 최초의 언약으로서 시내산언약을 체결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언약갱신으로서 모압(세겜)언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언약체결로서는 다섯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1) 언약당사자의공적 정의, (2) 언약당사자의 직접 대면, (3) 언약관계유지법, (4) 언약체결예식, (5) 언약체결 축하 피로연.
 이 근본구조는 성경, 특히 구약의 각 권의 신학적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각권은 이 근본구조를 자신들의 특수한 목적에 맞게 조정하여서 사용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필자의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두란노, 2003), 제 2장을 참조하라.
 신명기도 마찬가지로 이런 구조를 자신의 제의적, 예식적 상황에 맞게 재조정하고 있으나 본질적인 구조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 
 (1) 언약관계의 공적인 정의 : 신 26:17-19
 (2) 언약당사자의 공적인 대면 : 신 5:1-5,22
 (3) 언약관계유지법 : 신 5:6-21, 신 12-26장
 (4) 언약관계체결예식 : 신 27:1-8
 (5) 언약체결축하 피로연 : 신 27:7   
                                              
그러나 출애굽기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출애굽기 속에서는 언약체결의 내용적 구조 자체가 출애굽기 서술 자체가 되었지만 신명기의 경우는 이런 근본적인 신학적 구조 위에 다른 구조가 씌워있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이다.  예를 들어서 신 1-3장, 4장, 29-30장, 31-34장은 언약체결 그 자체의 구조를 넘어서는 것 혹은 구조 밖에 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적 구조를, 물론 내적인 언약체결구조를 포함하는, 우리는 신명기의 상황적 구조라고 표현할 수 있다.


1.3. 신명기 상황적 구조 (situational structure)

 신명기의 이러한 상황적 구조는 출애굽기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 점은 신명기가 제의적/예식적이라는 특징과 설교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우선 현재의 신명기는 제의적/예식적 상황을 반영한다.  전체가 거의 모세의 말을 인용하고 그 속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인용되는 등, 수많은 인용으로 이루어진 것은 신명기가 읽는 책이 아니라 들려지는 말씀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반영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예가 소위 신언공식(神言公式 divine speech formular)가 그 어떤 책보다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명확하게 창세기-민수기와는 다른 점이다.  사실을 알리는 기록식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선포하거나 낭독하는 식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두 번째로 이와 유사하지만 이 점과 관련된 것이 신명기가 설교적이라는 점이다.  전체를 다 읽어도 6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라면 어떤 예식에서 공식적인 낭독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예식은 짧게 하는 현대적 예배가 아니라 일주일씩 걸리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축제와 상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특징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상황적 구조의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 신학적 핵심의 중요성 : 1-4:43 [A] // 4:44-29:1 [X] // 29:2-34:12 [A']
 (2) 핵심의 반복 : 4:45-11:32 // 12:1-28:68
 (3) 현재와 미래의 반복적 변화 : 4:45-11:32 (현재(모압)-미래(세겜))
                                12:1-28:68 (현재(모압)-미래(세겜))
 (4) 시간의 흐름 : 1-4:43(과거) - 4:44-29:1(현재) - 29:2-34:12(미래)
 (5) 봉투구조 1 (envelope figure) : 4:44 / 29:1 (MT 28:69)
 (6) 봉투구조 2 (envelope figure) : 1:1-4 // 34:1-12

1.3.1. 신학적 핵심의 중요성 : 1-4:43 [A] // 4:44-29:1 [X] // 29:2-34:12 [A']

 먼저 현재의 신명기의 신학적 핵심이 중심에 놓여지는 모습을 보인다.  신명기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모압(세겜)에서 맺는 모압(세겜)언약이다.  이 내용이 근본적인 핵심을 이루도록 4:44-29:1까지를 중심에 배열하고 있다.  그 앞에는 (1:1-4:43) 이 핵심이 이루어지는 사실적 기초로서의 역사, 즉 시내산에서 모압에까지의 여정을 낭독체로 서술한다.  그 뒤에는 29:2-34:12)은 모압(세겜)언약을 맺고 난 뒤의 언약적 충성을 할 것을 2인칭으로 권고하고 권면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게 핵심을 주위로 좌청룡 우백호로 펼쳐진 변두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교하게 배열하고 있다.    

1.3.2. 핵심의 반복 : 4:45-11:32 // 12:1-28:68

 이렇게 중심에 배열된 신학적 핵심이 처리되는 방법이 특이하다.  그것은 중복적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즉 4:45-11:32까지와 12:1-28:68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이란 모압(세겜)언약의 체결이다.  언약을 체결할 때에는 법적요소와 제의적요소가 다 동원된다. 필자의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1998, 193f.)를 참조하라.
 법적요소의 두가지는 언약당사자의 공적인 관계정의와 언약법의 선포이다.  그리고 제의적 요소는 언약체결예식과 언약체결축하피로연이다.  이미 설명한대로 법적 요소는 모압에서 완성하고 제의적 요소는 세겜에서 완성하게 되어 있는 특이한 언약이 모압(세겜)언약이다.  현재(모압)에서 이루어졌으나 미래(세겜)에서 완성되어져야 할 언약이 바로 모압(세겜)언약인 것이다. 물론 이 반복은 무분별한 복사가 아니라 히브리시의 평행법의 원리를 따라서 만들어졌다.  즉 앞에서는 일반적인 내용을, 뒤에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 두 요소가 두 본문 4:45-11:32, 12:1-28:68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

                               <4:45-11:32>       <12:1-28:68>
  법적 요소 :
        (1) 언약관계정의 :       6:4                  26:17-19
        (2) 언약법의 선포 :      5:6-21              12:1-26:15
  제의적 요소 :
        (3) 언약체결예식 :       11:26-32            27:1-8, 28:3-6,16-19  
        (4) 언약체결축하피로연 : 11:26-32(암시)       27:7

 이렇게 반복되는 것은 다음의 두가지를 고려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 (1) 핵심의 중요성, (2) 반복이 흔한 히브리 문학적 관습.

1.3.3. 현재와 미래의 반복적 변화 :
     4:45-11:32 (현재(모압)-미래(세겜))
     12:1-28:68 (현재(모압)-미래(세겜))

 이 구조와 필연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점이 장소와 시간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의 핵심적 내용이 모압에서 시작되나 세겜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특별한 언약인 점과 관계한다.  그래서 모압에서 세겜으로 다시 모압으로 또 다시 세겜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장소의 변화뿐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서도 동일하다.  현재에서 미래로 다시 현재로 다시 미래로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이것은 모세에 의하여 현재에 시작되었으나 여호수아에 의해서 미래에 완성되어야 할 언약의 모습을 보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독특하게 배열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이미 필자가 밝힌 바와 같이 필자의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두란노, 2003, 314f.)과 더 자세하게는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1998, 242ff.)을 보라
두 장소, 두 시간대를 걸쳐서 행해져야 하는 예식이기 때문이 이 예식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언약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문학적 구조와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학자들이 신명기의 통일성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혼돈하는 원인이다.  이것은 현대적 관점으로 고대의 책들과 제도들을 이해하려고 하였을 때에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3.4. 시간의 흐름 : 1-4:43(과거) - 4:44-29:1(현재) - 29:2-34:12(미래)

 다시 신명기 전체를 보면 시간상의 명확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우선 핵심에 해당하는 4:44-29:1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이제 들어가서 살아야 할 역사적 삶의 현재를 다룬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삶을 나타내기 때문에 엄밀하게 아주 가까운 미래이지만 이 핵심 속에서 사실상 이스라엘이 그 땅에 정착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살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삶의 현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앞의 내용(1:1-4:43)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장르를 사용하여 총정리한다.  우선 1:1-3:29까지는 호렙(시내산)에서 모압까지의 여정을 역사서술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까운 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1-43까지는 설교적 맥락에서 현재에서 시간을 거꾸로 아주 먼 과거로 여행하는 모습을 본다.  즉 현재, 모압(4:3)에서 호렙(4:10)을 거쳐 애굽으로 간다 (4:20).  거기서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열조의 시간으로 가서 (4:32), 다시 거기서 최초의 역사의 시작인 태초(4:32)에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 뒤의 내용(29;2-34:12)도 여러 가지로 이스라엘의 미래의 삶을 역시 다양한 장르를 사용하여 정리한다.  우선 31-34장은 이스라엘의 가까운 미래를 예언적으로 묘사한다.  이 속에 유명한 두 장, 31장과 32장이 시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29-30장은 아주 먼 미래로 여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먼 미래를 나타내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당할 가장 먼 미래의 불길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성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를 받아서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까지를 상정하는 것이다 (30:1).  그리고 이 장들은 대단히 설교적이고 교훈적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 시간의 흐름에 있어서는 순서는 명확하다 :
   과거 (1:1-4:43[A]) --> 현재 (4:44-29:1[X]) -->미래(29:2-34:12[A'])
 (2) 그 변두리의 시간적 변화는 독특하다 :
   1:1-3:29       4:1-43             29-30장    31-34장
   가까운 과거    먼 과거             먼 미래     가까운 미래
    [a1]          [a2]                [b2]        [b1]

 이렇게 해서 신학적 핵심(4:44-29:1)을 중심으로 동심원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a1] - [a2] - [X] - [b2] - [b1]

1.3.5. 봉투구조 1 (envelope figure) : 4:44 / 29:1 (MT 28:69)

 이런 구조를 형성하는 작지만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중요한 지시어 두개가 신학적 핵심을 주위로 봉투구조(envelope figure, inclusio)를 형성하는 것이다.  즉 4:44에 표현된 torah라는 단어와 29:1(MT 28:69)이 표현한 Moab berith란 단어이다.  이것은 신학적 핵심의 시작과 끝에 있어서 하나의 지시어로 역할(signal fuction)하는데 하나는 시작을 나타내며 다른 하나는 끝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토라(torah)가 모압언약(Moab berith)라는 점이다.  이 점은 4:44의 표현이 겉보기에는 4:45과 중복된 것같이 보이는 데서도 나타난다.  신명기같이 정교한 책이 불필요한 반복을 이은 절에서 할 수가 없으므로 이것은 저자의 의도적인 반복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신명기가 신명기의 핵심을 지칭하는 진정한 내용은 토라(torah)이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모압(세겜)언약이라는 것이다. 

13.6. 봉투구조 2 (envelope figure) : 1:1-4 // 34:1-12

 여기에 또 다른 봉투구조가 보이는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 봉투구조보다 더 외곽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신명기의 시작과 끝에서 보이는 모세를 3인칭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다 : 1:1-4 // 34:1-12.  전자는 모세가 모압에서의 특별한 활동의 시작을 알리고 후자는 모세의 죽음을 다룬다.  이 두 부분은 그 안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여 운송하는 보자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는 실제로 모세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의 서술자로 등장한다.  이것은 신명기의 시작과 끝이 모세의 모압에서의 활동과 그 끝으로 이루어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신명기의 이러한 독창적이고 전무후무한 상황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전통 위에 서 있음 : 우선 신명기는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에 포괄적으로 표현된 시내산언약의 기초 위에 확실하게 서 있다.  그 본래의 내용을 결코 벋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쉽게 언약법의 핵심인 십계명의 거의 그대로의 반복에서 볼 수 있다 : 출 20:1-17, 신 5:6-21.  그리고 언약관계 당사자의 공적인 정의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 알 수 있다 :   

   출 19:5-6 :   보배  -----  제사장 나라            --- 구별된 백성
                 (segullah)                                 (goi qadosh)
   신 26:18-19 : 보배  ----- 칭찬,명예,영광 / 지존자  --- 구별된 백성
                 (segullah)                   (elyon)       (am qadosh)

 (2) 반복이 아닌 진정한 발전 : 그렇다고 해서 신명기는 단순한 반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진정한 역사적 발전을 담고 있다.  십계명을 표현해도 그 속에 진정한 발전을 볼 t수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제 4계명이다.  더 구체적으로 법을 다룸에 있어서도 훨씬 더 구체적이고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출 21-23장까지가 시내산언약의 세부법이라면 신 12-26장 전체가 모압언약의 세부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두 법체계의 근본적인 내용은 동일하게 십계명의 구조를 따르고 있으나 신명기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모습을 보인다.  또 같은 언약적 축복과 저주이나 시내산언약의 축복과 저주(레 26장)에 비하여 풍성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신명기의 축복과 저주이다 (신 28장).

 (3) 독창적인 내용과 표현방식들 : 신명기의 내용과 표현은 독창적이다.  예를 들어서 시내산언약에서 제사장 나라(출 19:6)라는 용어를 칭찬-명예-영광 그리고 지존자로 풀어서 표현함(신 26:19)으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출 20:1-17) 어서 바로 세부법(출 21-23장)이 주어졌으나, 신명기에서는 십계명(신 5:6-21)과 세부법(신 12-26장) 사이에 긴 강화 내지 설교가 포함되어 있다 (신 6:4-11:32).  이것은 신명기에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설교적 표현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현실(재)적 목적에 충실함 : 신명기는 이 책이 만들어지던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고 그 현실적인 목회적 목적에 부응하는 내용과 구조를 가진다.  신명기는 전체적으로 설득적이다.  심지어 법 항목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고대법에 비하여 엄청나게 높은 동기절(動機節 motive clause)의 사용비율이 높음을 통하여 이 선포와 낭독을 듣는 이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유도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설교적인 신명기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5) 신명기는 읽혀지는 책이 아니라 낭독되고 들려지는 책 D.L. Christensen, Deuteronomy 1:1-21:9 (WBC), ci.
: 이런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신명기는 읽혀지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의도적으로 공적인 예배적 상황 속에서 낭독되고 들려지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점이 신명기가 신학적 내용에 있어서도 독특할 뿐 아니라 상황적 구조나 형식에 있어서도 완연히 구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신명기의 신학

2.1. 신명기신학의 기초로서의 사경(四經 tetrateuch)

 신명기의 내용은 사경(tetrateuch)과 상관이 있는 점은 명확하다.  그 중에서 핵심으로서의 언약적 상관성은 필자가 명백하게 지적하였다.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2003, 13-55)을 참조하라.
 즉 창세기는 족장언약을,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는 시내산언약을 나타내고 신명기는 모압언약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언약들이 모두 하나의 목표인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려고 한다.  창세기의 족장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씨와 땅이 준비완료되는 것을 드러내고,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의 시내산언약은 하나님의 나라의 씨가 완성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비해서 신명기의 모압언약은 땅의 완성을 나타낸다.  이렇게 해서 다섯 책이 하나를 이루어서 하나의 총체적인 목표를 이룬다.  이 점에서 신명기는 독창적이기는 하나 선배의 기초  위에 명확하게 서고 있다.
 특히 신명기는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의 기초 위에 선다는 것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다.  시내산언약은 최초의 언약으로서 가치를 가지지만 신명기의 모압언약은 갱신되는 언약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신명기에서 언약형성에서 시내산언약을 전제로 하고 있는 부분은 언약당사자의 직접대면이라는 부분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의 당사자로서의 이스라엘과의 만남은 시내산에서 최초로 이루어졌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언약갱신은 모두 이 언약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신 5:2-5에 나타난 소위 열조의 역사의 ‘현재화’(Vergegenwaertigung, actualization)는 바로 이런 점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그 때 그 시내산의 언약체결의 현장에 이미 후대에 있는 이스라엘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 법적인 관련성인데 그 중에 차이가 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출애굽기에서는 공적 예배장소의 복수성(출 20:24)을 나타낸 반면에 신명기에서는 예배의 중앙집중화를 표방한다 (신 12장).  이러한 차이를 여러 가지 신학적 배경을 따라서 해석하는 전통이 주어졌으나 두 본문의 실제적인 차이를 그대로 일단은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출애굽기의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아직 그 땅이 주어지는 상황이 아닌 가운데 주어진 것이나, 신명기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이제까지 살던 성막을 중심으로 하던 삶을 중지하고 다양하게 흩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럴 경우에 언약공동체가 하나로 될 수 있는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배처소의 단일화로서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2.2. 신명기의 언약적 기초로서의 모압(세겜)언약

 이제 신명기의 핵심부분(신 4:44-29:1)에 담긴 신학에 대해서 살필 때가 되었다.
 신명기의 모압(세겜)언약은 실체성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도깨비같은 언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신명기의 ‘모압언약’(신 29:1)이라는 표현은 실체적이고 그 실체의 구체적인 내용은 신 4:44-29:1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 (1998).
 거기서 명확하게 호렙(시내산)언약의 실체성 외에 모압언약의 실체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주로 학자들에게 어려움은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의 상관관계였다.  신 5:2-5에 나타난 시내산의 언약맺는 현장에 왜 현세대, 즉 출애굽 제 2세대가 거기 그 시간에 원리적으로 있었다고 표현하는 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에 의하면 출애굽 당시의 시내산언약의 원리를 그대로 응용하는 모압언약의 성격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것을 거의 그대로 응용하는 것이 시내산언약 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속에는 그 후대에 이루어질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었으므로 그것에 근거하여서 언약갱신을 이루는 것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압언약을 표현하는 중심부분인 신 4:44-29:1에서 수많은 '신언공식'(神言公式 divine speech formular)를 볼 수 있다.  모압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2.2.1.  언약당사자의 공적 관계정의 (신 26:17-19)

 이 점은 시내산언약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시내산언약의 경우는 거의 하나님 편에서의 언약관계적 표현을 한다 : 출 19:(1-4)5-6(7-8).  그러나 신명기의 경우는 언약의 양당사자의 입장이 골고루 고려되어 있다 : 신 26:17-19.

 신 26:17 : 이스라엘의 편에서의 여호와의 언약적 위치로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된다는 선포를 한다.
 신 26:18-19 : 여호와 편에서의 이스라엘의 언약적 위치로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보배(am segullah), 칭찬,명예,영광/지존자(elyon), 탁월한(거룩한) 백성
            (am qadosh)이 됨을 선포한다.

 이 선포는 모압언약을 세울 때에 새롭게 한 것이라기 보다 시내산언약에서 이미 형성된 관계를 원리적으로 부연하면서 재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약관계는 영원히 고정되기 때문이고 필요한 것은 상황마다 그 원리적 선언을 재사용, 재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2. 언약당사자의 공적인 대면

 이 부분 역시 모압언약에서 새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이미 시내산언약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근거로 해서 부연 설명하는 것만이 주어졌다 : 신 5:3-5.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였고 직접 음성을 들은 사실의 심각한 경험성은 강하게 표현되었다 : 신 5:23-27.  그 경험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 이 모압 땅에 서 있는 출애굽 제 2세대에 하신 것이라는 소위 ‘역사의 현재화’(actualization)의 과정을 통하고 있다.

2.2.3. 언약법의 선포

 언약법은 두가지 형태로 표현되었다.  하나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선포요 둘은 그것에 대한 세부법을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 표현되는 양식에 있어서는 시내산언약의 상황과 같으나 (출 20:18-22), 모압언약에서 새로운 차원이 소개되었다.  그 새로운 차원은 모세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대리적 선포의 권위를 사용하여서 자신의 말로 백성에게 세부법을 선포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신 언약법으로서의 십계명의 절대적인 권위는 부인할 수 없다 (신 5:6-21).  그것은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시내산언약의 그것과 거의 그대로 표현되었다 (출 20:1-17).  그러나 그 약간의 차이는 제 4계명에서 발견하는데 그것은 신명기의 모압언약법의 법정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즉 안식일 계명의 기초가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 출애굽이 됨으로 훨씬 더 우리의 행동의 기초가 역사적이 된다.  그래서 모압언약세부법이 담긴 신 12-26장에서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해야 할 많은 종교적 윤리적 행동의 기초 원리가 됨을 알 수 있다.    
 또 둘째로 모세를 통해서 간접으로 선포하신 세부법(신 12-26장)도 원리적으로 직접 선포하신 법, 십계명(신 5:6-21)에 근거하는 것은 시내산언약법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훨씬 더 확대되었고 자세하며 설득력있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도 신 12-26장에 표현된 세부법은 하나님에게서 모세가 받아오는 면(신 5:31)보다 그것을 전제로 하는 면이 두드러졌다.  오히려 모세 자신의 말로 그 법들은 백성들에게 절대적 권위로 선포되었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면은 모세를 통한 세부법이 주어지기 전에 (신 12장), 모세의 긴 설교와 같은 것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 신 6-11장.  이것을 소위 주요법(主要法 Hauptgebot)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했고 앞 뒤 문맥과의 상관관계는 설명되지 못했다. N. Lohfink, Das Hauptgebot. Eine Untersuchung literarischer Einleitungsfragen zu Dt 5-11, Rome, 1963.
 이제 우리는 전체 구조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 4:45-11:32까지의 모압언약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와 12:1-28:68까지의 세부적인 묘사 속에 평행법적 반복을 이루며 대칭을 이룬다.  즉 신 5:6-21과 신 6:4-11:25까지에서 모압언약의 법적요소가 일반적으로 표현되었는데 비해서 신 12:1-26:15에서 모압언약의 법적인 요소가 세부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신 6:4-11:25까지에서 시내산언약에서는 없는 모세의 긴 설교 혹은 강화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신명기가 모세 자신의 권위적인 말로 표현된 것과 관계한다. 

2.2.4. 언약갱신예식체결

 이 요소와 아래의 요소(2.2.5.)는 신명기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은 신명기의 주요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가서 해야 할 법적인 행동에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후자의 요소가 극단적으로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신 27:7뿐 “여호와 앞에 즐거워하라”).  언약갱신예식이 체결될 장소는 여기, 모압이 아니라 세겜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강조되어야 할 요소는 여전히 법이었다.
 먼저 신 27:1-8에서 언약갱신예식을 체결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법의 수행과 기록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27:1,3,8) 그리고 강조해서 (27:8 “명백히 기록할지리니라”) 표현한다.  이어서 언약적 축복과 저주의 선포(신 28:3-6,16-19)와 그것에 대한 모압에서의 모세의 부연설명(신 28:7-14,20-68)에 있어서도 얼마나 언약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를 설명한다.  또 백성이 해야 할 서약(dodeca-logue 신 27:15-26)에 있어서도 그 시대에 당장에 필요한 법적인 요소가 구체적으로 강조되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필자의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1998), 3.9., 3.10.을 참조하라.

2.2.5. 언약체결축하피로연

 이것도 장차 세겜에 가서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가장 들 강조된 부분이다 (신 27:7, 수 8:30-35, 비교 출 24:9-11).  그러나 명백히 이 요소가 언약체결시에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위의 요소와 함께(2.2.4.) 이 요소가 명백히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행해졌을 것이나, 정작 여호수아서에서 이 요소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요소가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인 것은 축제와 즐김이 중요한 고대의 예식이기 때문이다.


2.3. ‘땅의 신학’으로서의 신명기 신학

 이런 기본적인 언약신학의 요소 외에 신명기 만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신학적 요소가 있는 데 바로 땅의 신학이라는 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많이 언급하였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 소개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앞의 시내산언약과의 상관관계나 창세기의 족장언약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더 나가서 언약과 하나님 나라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에 구현되려면 반드시 세 요소가 있어야 한다 : 국민(씨), 주권(뜻), 영토(땅).  이 요소를 구현시키는 역사적인 방법과 수단이 바로 인격당사자인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맺는 언약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일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행동하신다.  즉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의 시내산언약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씨의 완성을, 신명기의 모압언약에서는 땅의 완성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시내산언약이 독자적이지 않고 모압언약을 필요로 하듯이 모압언약도 시내산언약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두 언약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는 데, 이 둘이 합쳐서 하나님 나라의 씨와 땅의 완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가 완성되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현재적으로 이루어야 한다.  이 현재적 요소에 있어서 칼과 같이 명백함을 시내산언약에서나, 모압언약에서 볼 수 있다. 
 즉 신명기는 그 땅을 소유할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땅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씨의 완성의 요소가 강한 시내산언약 세부법의 간략한 모습보다 모압언약 세부법이 자세할 수 밖에 없다.  신명기에서야 말로 이제는 이스라엘이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구체적인 상황 중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모압언약 세부법 중에서 가장 먼저 표현된 예배처소의 중앙집중화이다 (central sanctuary law 신 12장).  즉 땅을 정복하고 난 뒤에 흩어져서 살게 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12지파가 하나가 된 언약공동체를 이룰 것인가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신명기에서 중요한 땅의 요소라는 거점 때문에 특별히 주어진 법이라고 볼 수 있다. 


2.4. 신명기의 역사철학 (4:29-30, 30:1-10)

 이제 신명기의 중심부(신 4:44-29:1)를 벋어나면서 외곽에 위치한 내용들의 의미를 볼 때가 되었다.  이 내용들은 이미 말한 것과 같이 신명기의 독특한 상황적 구조(situational structure)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 4:29-30, 30:1-10에 나타난 신명기의 특별한 역사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양 본문이 놓인 장들은 역사를 앞뒤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앞으로 멀리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신 4장은 현재 모압 땅에서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창조까지 이르며, 29-30장은 역사를 미래로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먼 미래인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됨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런 양자의 시간의 확장 속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교훈이 바로 4:29-30과 30:1-10에 나타난 신명기의 역사철학이 보이는 부분이다.
  이 둘은 동일하게 인간의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의지의 현실화와 관계되는 데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뜻만이 나타나면 역사는 인간에게 무의미하고 인간은 로봇과 같은 존재가 된다.  반면에 인간의 의지만 발현되면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허무와 무의미 밖에 없게 된다.
 이제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이것이 적용되는데 특별히 이스라엘이 한계상황 속에 처했을 때에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생활이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역시 바랄 수 있는 것은 두가지인데 이스라엘의 행동과 하나님의 행동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파멸이라는 이 역사적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는데 그것은 이 두 행동주체가 서로 가진 특별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언약관계와 그 속에서 표현되는 원리인 인자와 성실(chesed we-emet)이다.  언약의 양주체는 이 원리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스라엘의 파멸이라는 절대적 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은 언약적 성실함(emet)으로 언약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의 다른 당사자인 여호와 편에서 언약적 자비(chesed)를 베푸실 날은 이스라엘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다.  이러한 변증법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타개의 긴장된 모습이 양 본문 속에 드러난다.  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신 4장), 역사를 미래까지 전개해도(신 29-30장) 이 긴장을 인간은 벋어날 수 없고 오히려 그 속에 충실할 때에 역사가 해방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런데 신 4:29-30은 어느 정도는 이 열쇠를 표현하고 있으나 30:1-10만큼은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  신 30:1-10은 이 두가지를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스라엘 편의 언약적 의무인 언약적 자비(chesed)를 두 번 표현한다 (신 30:2,9-10) :

    이스라엘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순종하면”
                  ---> 여호와가 회복케 하시리라 

이것은 조건과 결과라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즉 이스라엘이 언약적으로 다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자비가 맛보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있는 신 30:6에는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이 이런 조건을 채우지 않는 데도 부어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것은 거의 하나님 편에서의 무조건적 자비베푸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역사의 현실 속에서 이런 것이 가능한가 ?  하나님은 인간을 조롱하시는 듯이 역사를 조정하시는가, 아니면 역사는 인간편의 활동으로만 충만한가 하는 선택적 질문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둘 중의 하나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 ?  특히 여호와와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 속에서 역사는 어떻게 이렇게 진행될 수 있는가 ?  하나의 대답은 여호와는 자신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의 개별적 모습에 대해서는 철저한 언약적 심판을 행할 수 있지만, 총체적 이스라엘은 전멸시키실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애 3:22).  이것이 언약적 자비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이스라엘마다 이런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를 경험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총체적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역사요 궁극적인 하나님과 언약의 승리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개별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가 있다.  그것은 총체적, 거시적, 초역사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가 주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믿고 혹시 자신의 시대에 경험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며 그 기대를 후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그 기대가 성취될 때에는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예언자들이 앞으로 호통치면서 이스라엘의 책임으로 선포하던 것이 될 것이다.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로 이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음은 장차 후대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하는 동안 이 복음을 기대하면서도 개별 이스라엘의 역사적 책임의식은 조금도 죽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앞으로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지고가야 하고 궁극적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역사의식인 것이다.  이 역사의식은 특히 앞으로 예언자들의 고통스러운 개인적 삶과 심판받으나 궁극적인 미래의 승리를 확신하는 공동체를 향한 선포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3.5. 신명기의 상황적 구조에 나타난 삶의 정황 : 정기적 언약갱신축제 (31:9-13)

 신명기의 상황적 구조(situational structure)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고대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정확하게 재구성하기는 극히 힘들다.  우선 성경이 이런 것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고, 고대 근동의 제의들로 성경을 재구성하는 데 동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관계는 아주 독특하기 때문이다.

3.5.1. 독특한 문서조항 (document clause) : 정기적 언약법의 공적인 낭독 (신 31:9-10)

 그러나 이런 삶의 정황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요청이 본문 자체에서 일어난다.  즉 신 31:9-13의 내용은 조약문에서의 소위 ‘문서조항’(document clause)과 관계한다.  조약, 특히 종주권조약(suzerainty treaty)을 맺은 약한 당사자 국가(왕)는 그 조약문을 정기적으로 꺼내서 공적 예식에서 낭독(봉독)하게 되어 있는 의무조항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과 유사한 것이 신 31:9-13에서 발견된다.  이스라엘은 토라를 제 7년 즉 정기면제년 초막절마다 정기적으로 꺼내어 봉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H. Gunkel - S. Mowinckel - G. v. Rad를 이으면서 하나같이 학자들은 7년을 1년으로 본문을 수정하고 그 이유로 고대근동의 매년제(Thronbesteigungsfest)에서 이것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근동의 매년제와 이스라엘의 7년마다 하는 이 제의는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고대 근동의 매년제는 신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자연현상에 절기를 맞춘 자연종교의 모습을 가진다면, 고대 이스라엘은 언약과 언약법의 수행이라는 역사적 행위에 특정절기를 지정하는 역사적 모습을 지닌다.  새해가 출발되는 일반적인 초막절이 아니라 매 7년마다 하는 정기면제년 초막절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을 보통의 초막절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절기를 우리는 언약갱신축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축제의 편린을 우리는 시 24, 50편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필자의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II (두란노, 2004 예정)을 보라.


3.5.2. 재구성해 본 삶의 정황(Sitz im Leben) : 길갈전승 가설
  
 그러면 이러한 해석이 역사적인 사실로 있을 수 있는 삶의 정황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인가 ?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체적인 증거 부족으로 재구성은 거의 불가능하나 가설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소위 ‘길갈전승’이다.  이 가설은 이스라엘의 7년 정기면제년 초막절마다 진행되는 언약갱신의 축제기간에 이스라엘이 출(出)애굽-입(入)가나안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즉 가나안 정복의 초기에 중요거점이었던 길갈에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중심이 될 증거막이 유하던 곳,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까지의 순례행진과 같은 것을 행했을 것이다.  그 때에 가나안 입성 때와 같이 증거궤를 제사장들이 메고 행진을 했을 것이다.  증거궤를 메고 중심도시인 실로나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에 시편 24편과 같은 것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시 24:7,9).  그리고 그 성에 도착하고 나서 증거궤 속의 언약의 책(seper haberith)이 봉독되는 가운데 예식이 7일 정도 진행될 것이다.  실제로 6-7시간이면 낭독이 끝날 수 있는 신명기의 양이 7일동안 전개되는 초막절의 행사에 적당할 것이다.  소위 ‘레위인 설교자’(levitical preacher)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여서 봉독된 언약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설명하였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느 9장과 같은 언약갱신과 같은 후대의 역사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 속에도 생길 수 있는 위선과 타락에 대한 경고가 시편 50편 같은 곳에서 주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신명기의 상황적 구조에 나타난 신학적 내용인 언약갱신축제는 여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적 원리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것이 행해지는 의 정황으로서의 길갈전승가설을 통해서 우리는 설명 가능한 다음 단계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를 가진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