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1-36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자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비뽑아 10분 1민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이 재건 된 후 예루살렘 성은 전혀 살만한 곳이 아니없습니다. 선교적 사명이 아니면 살 수 없었습니다>
1.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2.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이제 그곳에 누군가 살아야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상징적인 건물이 아니라면, 실제로 누군가 그곳에 살아야 합니다.
3.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4. 느7장 4절에 보면,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성벽은 건축되었지만, 무법천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성벽인 무너지면서 그곳에 도적과 강도들이 많았을 것이며, 짐승들 뿐만 아니라 풀이 무성하였습니다. 사람이 산지 오래 된 곳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우리늘 잘 알 수 있습니다.
6. 왜 그곳이 무법천지였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11장 6절, 8절에 보면, "용사"가 그곳에 들어가 살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느 사람들과 함께 그 당시에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용사였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7. 그런데 그곳에 지금 누군가 들어가야 살아야 했습니다. 첫번째로 지도자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들어갔습니다.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희생을 볼 수 있습니다.
8. 지도자들이 희생이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에 살고자 했기 때문에 그중에 10분 1만 성안에 살도록 했습니다.
9. 이처럼 지도자의 희생은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10. 또 한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 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나머지 10분 9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11. 흔히 우리 모두를 가리켜 선교사라로 합니다. 실제적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시는 선교사님과 후방에서 물질로, 기도로 후원하는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12. 이 두 조직이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어야 참맛나는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씁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성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13. 하나님 편에서 이들 모두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11장 3-9절까지 지도자의 이름, 10-14절까지 레위 자손의 이름, 19-24절까지 성문지기의 이름, 25-36절까지 성 밖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14. 성 안에서 살든지, 성 밖에 살던지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15.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16. 하나님의 일에 대한 희생이며, 자발적 참여이며, 하나님의 일에 전적 헌신 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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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 예루살렘에 자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서, 10분1을 특별히 제비뽑아 구별하였다. 예루살렘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느7장 4절에 보면,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으니라"
2절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6절 "용사"
10절 "제사장 중에는"
14절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15절 "레위 사람 중에는"
17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19절 "성 문지기는"
22절 "노래하는 자들은"
25절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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