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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rch 7, 2013

한 날 묵상 - 막 1:6-7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의 일상>

한 날 묵상 - 막 1:6-7 <주의 길을 예배하는 자들의 일상>

point -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의 일상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1. 우리가 매일 하는 것들 중에서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2. 나는 오늘도 아내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족을 위한 아침 준비, 아이들의 점심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어야 할 것까지 계속되는 먹는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없을까?

3. 나는 오늘 집을 나오면서 무엇을 입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옷을 잘입는 편은 아니니 그다지 많은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져 옷에 손이 가는 것으로 입고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내 옷을 본 아내가 말을 한다. "옷이 좀 커 보이네요. 오늘 입고 있을 때 마다 이렇게 잘 관리하면 되겠네요"

4. 의, 식, 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이다. 일상이며,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들이다. 옛날보다 지금이 더욱 그렇다.

5. 그래서 가끔 우리의 생각이 이러한 문제들에 너무 집중할 때가 있다. 가장 필요하며 일상적이기에 그 어느것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가 있다.

6.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이 보다 더 먼저인 것이 분명히 있다. 바로 부르심이다. 일상의 이러한 것 또한 부르심을 위한 것들이다. 부르심이 존재하기 위해 일상의 것들이 필요한 것이다.

7. 나의 지난 날을 돌아보니, 깨닫는 아쉬움들이 있다. 나는 얼마나 일상의 것보다 부르심에 더욱 집중했는가? 아내과 함께 한 지난 일들을 돌아보니 아내는 참으로 이러한 일상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부르심에 집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음을 기억하게 된다.

8. 난 그렇지 못함이 솔직한 고백이다.

9. 우리가 부르심에 집중하기 우해서는 우리의 삶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목표가 많으면 하나의 어떤 목표도 이룰 수 없다. 목표를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10. 세례 요한은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그의 삶을 아주 단순화 시켰다.

11. 삶을 복잡하게 할 여러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서 그는 부르심에 집중하였다.

12. 먼저 아주 삶이 간단했다. 입는 것, 먹는 것 모두가 간단한 삶이었다. 잘 먹으려 하지 않았고, 많이 먹으려 하지 않았다. 단 건강을 위해 먹었을 뿐이다. 잘 입으려 하지 않았고, 멋지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단, 건강을 위해 입었을 뿐이다.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건강이란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던 것이다.

13. 나의 삶도 이처럼 단순한 명제 앞에 서 있었으면 한다. 부르심에 한 번 더 순종할 수 있는 삶의 단순함이 나에게 필요하다.

14. 또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의 자세는 겸손한 왕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 겸손한 왕을 섬기는 종들은 겸손한 왕처럼 역시 겸손해야 한다.

15.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7절)

16. 일상에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겸손의 상징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정한 겸손은 삶에서의 성육신이었다.

17. 예수님은 일상의 삶에서도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을 섬기셨다.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오신 성육신의 삶을 넘어, 이 땅의 바닦으로 내려 가셔서 진정한 섬김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셨다.

18.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그의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닮아야 한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섬김의 자리는 많다. 세상 사람들은 가지 않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19.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섬김의 삶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이셨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가까이 가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친구가 되셨고 함께 식사를 하셨고, 함께 대화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필요를 따라 병고침등 필요를 채워주셨다.

20. 오늘 세상의 이목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은 너무나 많다. 세상은 그러한 곳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오직 그들을 이용하려 할 뿐이다. 그들의 친구는 누구인가? 누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가? 바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그들의 제자들인 우리가 아니겠는가!

21. 우리의 일상의 삶의 원리 세 번째는 예수님의 목표와 나의 목표는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이 아니다. 교만하지 말자. 단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

22. 세례요한은 자신의 부르심을 알았다. 물 세례와 성령 세례가 결코 같을 수 없나는 것임을...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과 자신의 사역이 구분되어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23. 자신의 사역을 잘 아는 것이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들의 자세이다.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지도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잘 감당해야 한다.

2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이시다.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제 성령님이 이 땅에서 역사하신다.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이다.

25. 나라는 존재는 예수님의 은혜안이 있는 것이며, 성령의 함께 예수님이 남겨주신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26. 나는 결코 예수님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일 뿐이다. 그것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27.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오늘 나의 일상의 삶이 오직 예수님의 부르심을 위한 가장 합당한 자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8. 오늘도 나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기 원한다.


Thursday, February 28, 2013

한 날 묵상 - 막1:4-5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그가 오실 길은 곧게 하는 삶이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이라>

한 날 묵상 - 막1:4-5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그가 오실 길은 곧게 하는 삶이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이라>

1. 3절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 하고 있는 것처럼,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주님이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4. 쉽고 정직하게 말하면, 세례 요한은 "기록된 것과 같이"의 삶을 살아갔을 뿐 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5. 세례 요한이 하고 있는 일을 본문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그처럼 똑같이 하면 됩니다.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6.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간 곳이 참으로 재미있는 곳입니다.

7. 4절에 보니 그는 "광야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사람 많은 곳으로 가야 할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8.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생각하기를, 사람 많은 곳으로 가야 뭐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무엇이라 하나 더 얻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9. 그런데, 진정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얻을 수 있을만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10.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진정 세례 요한이 있어야 할 곳이었으며, 또한 우리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11. 광야는 참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한 심령에 말씀이 들어가면 바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12. 그렇지 않고,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어 보십시오. 튕겨 나올 뿐입니다. 나올 뿐 아니라 튕겨 나온 것 때문에 말씀을 나누어 준 사람이 상처 받기 쉽습니다. 물론 이 또한 능히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입니다.

13. 그렇지만 먼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광야"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14.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 각 사람의 심령에 "광야"와 같은 상한 심령,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져 열매 맺을 수 있는 심령의 사람에게 회개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15. 결코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심령입니다.

16. 우리 각자의 마음이 "광야"와 같은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때 비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그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17. 우리가 이처럼 "광야"와 같은 마음을 품기 원한다면, 적극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적 결단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18. 이는 결코 마음의 다짐으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광야"의 마음이 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광야"의 마음을 가리켜 옥토밭이라 말합니다.

19. 우리의 마음의 밭이 "옥토밭"이 되어야 말씀이 쑥쑥 자랄 수 있습니다.

20. 5절 말씀을 보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두 가지의 의지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22. 5절 말씀을 이어서 보면, 이렇습니다.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23. 여기서 우리는 "광야"와 같은 마음, "옥토밭"과 같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의지적 행동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24. 첫번째는, "다 나아가"입니다. 이는 아주 정확하면서 꼭 필요한 행동입니다. 주님께 나아가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5.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한 걸음 더 의지적 행동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법칙입니다.

26. 두번째는, 주님께 나아가서 "자기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27. 우리와 세상 사람들은 똑같은 점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다는 점입니다.

28. 그렇지만 다른 점 또한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는 회개가 있다는 점입니다.

29. 이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전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까지는 똑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겁니다.

30. "자기 죄를 자복하는"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31. 우리가 참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에 가득하기를 원한 것들이 있습니다.

31. 광야 같은 마음이 되시고, 광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적극적 행동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지적 행동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2. 이번주부터 청소년부 친구들과 함께 세례입교식을 준비하면서 세례입교 공부를 2주간에 걸쳐서 하려고 합니다.

33.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광야로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우리 귀한 청소년부 친구들 또한 그러한 강력한 믿음의 고백과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34.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각자 그들의 마음에 찾아가 이 놀라운 세례식의 의미와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강하게 사모합니다. 아멘"

35. "하나님의 부족한 종의 사역가운데, 각 사람의 세례식 가운데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종을 사용하시고, 세례식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 또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기 위한 나아오던 자들과 같은 심령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36. 날마다 우리의 삶이 죄 사함의 세례를 받게 하는 회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의 길을 예비하며, 주님의 외실 길을 곧게 하는 사역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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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식에 임하는 자들
1. 세례 요한
2. 세례 요한의 사역들의 과정 -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의 회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초청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암을 기억하자.
3. 세례 받는 자들의 자세 - 광야 같은 마음, 광야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자,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자.


Thursday, February 21, 2013

한 날 묵상 - 막 1:2-3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한 날 묵상 - 막 1:2-3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 지난 주 누가복음 묵상중에,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적어 보았다. 

2. 눅 7장 24-29절을 보면서, 나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본다(나의 정체성,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
 난 광야에 나간 사람인가? 그렇다.
 그럼 그곳에서 무엇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가? 부드럽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기 원한다면, 왕궁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화려한이 아니라, 세련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길을 준비함에 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남겨두셨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삶으로가 아니라,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두셨다. 그곳이 내가 오늘 서 있어야하는 나의 자리이다.


3. 이러한 묵상은 마가복음 1장 1절 묵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http://saltandlight21.blogspot.ca/2013/02/11.html

4. 여기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세례요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여러 공통점이 발견될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할 때, 분명 하나님은 이 땅에 각 사람을 보내면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5.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 복음은 완벽히 완성하셨다. 

6. 세례 요한은 이 땅에 두 가지 사명을 위해 왔다. 3절 말씀이다. 첫 번째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둘째는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7. 마가복음 1장 1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이라"는 절대적 진리로 시작되면서, 바로 이어지는 2절에서는 그 귀한 사역을 위해 한 사람을 보냈으니, 바로 세례 요한이요, 세례 요한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8. 복음와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건데, 복음은 인간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주어졌을 뿐 아니라, 이 복음이 인간들에게 확장되는 일에 또한 부름을 받은 자들임을 마가복음 1장 1절과 2-3절은 분명히 하고 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사통팔달로 전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야 할 길을 철저히 준비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인간들의 마음을 곧게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며 사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다. 

10. 특별히 두 번째가 복음을 위해서 남겨진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복음이 각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우리는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부르심을 입은자들이기 때문이다. 

11. 나는 지금 어떠한 사명으로 부르심을 입었는가? 또한 나는 지금 그 사명의 길 위에 바로 서 있는가? 

12.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아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3. 마가복음 16장 20절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14. 복음을 위해 오신 예수님, 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 이게 바로 마가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다. 

15. 우리는 지금 이 시대 복음을 위해 남겨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만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전부여야 합니다. 

16. 다른 그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결코 안됩니다.

17.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지금 우리는 이 땅에 가운데 존재하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18.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9. 오늘도 주의 길을 예배하며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일에 순종하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