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4, 2020

마가복음 9장 30-50절 예수님의 두번째 수난예고

 마가복음 9장 30-50절. 

 오늘 본문은 시작은 예수님의 두번째 수난예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절)

 그리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37절)

 당시 어린 아이는 천대 받고 배척 받고 무시 당하였습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복음이 방해받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섬김, 예수님의 섬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 중요한 것은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해서는 안됩니다.
 약한 자들, 연약한 자들은 한편으로 쉽게 있는자들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그들도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45, 47절)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루도 사회 곳곳에서 하나님이 나라 백성으로서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다투지 말고 섬기려는 마음으로 화목하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한 날도 맛 잃은 소금과 같은 삶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과 배려의 마음으로 화목을 이루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7~31절 내려 놓아야 얻을 수 있는 것

  마가복음 10장 17~31절. 내려 놓아야 얻을 수 있는 것.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로. 

 1. 부자이며, 젊은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구원을 얻는 문제에 대해 ‘선함’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디.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3. 여기서 예수님은, 왜 그에게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올 것을 요구하셨을까요. 재물에 마음이 있는 한,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자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4. 왜 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께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들이 그 마음을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5.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6.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의 힘으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능한 사람도, 죄인도 얼마든지 구원하십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기에 거저 주시는 은혜의 구원입니다.  

 7. 사람의 어떤 노력이나 수고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되지 못합니다.

 8. 주님은 재물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물질적인 가치관이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와 물질을 주신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생명을 구하시기 위함입니다.

 9. 코로나19로 어려운 이 때에도, 내 가진 것들이 무엇이든,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세상 것보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가진 것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나눔으로, 있는 그곳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Thursday, March 19, 2020

마가복음 8장 27 - 9장 1절. 죽어서 사는 길.

 오늘의 말씀. 마가복음 8장 27 - 9장 1절. 죽어서 사는 길.
 1. 로마 황제를 기념하는 도시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답합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2. 맘몬을 섬기며 음란하고 죄가 가득한 이 세대에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 고백하고 있는가? 
 예수와 예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도무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예수와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나도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사람의 일이다. 

 3. 그럼 우리는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성령에 이끌리어”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  34, 35절에 성령의 이끌리어 살아가는 제자의 핵심 세 가지가 담겨 있다. 자기부인 (Self Denial). 자기 십자가. 자기 목숨. 이는 점진적으로 신앙이 성장하는 단계이고, 예수님의 삶의 단계이다.

 4. 왜 예수님은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목숨을 잃으신 걸까?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이었고, 그 십자가만이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삶이 이와 같다. 

 5. 그런데 반대로,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 제자도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따르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6. 오늘 한 날도 제자도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일구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35절에는 '나와 내 복음을 위해'라는 말처럼, 이는 내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을 것처럼 힘든 생활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을 기억하는 한 날이 되어야 한다. 

 7. 왜 예수와 복음을 사랑해야 하죠?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답은 요한일서에 나와 있다. "바로 그 분이 먼저 우리를 목숨 다해 사랑했기 때문"이다.

 8. 이 시대는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을 가볍게 여긴다. 음란하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었다는 의미이고, 영적으로 간음한다는 거다. 38절에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면 나중에 예수님이 우리를 부끄러워할 것이라 하셨다.

 9.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중에는 무리도 있었고, 제자들도 있었다. 무리와 제자는 구분이 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은 필수이다.
 지금은 사사기 신드롬에 걸린 시대이다. 내가 중요하고, 내 마음대로 살려는 풍토가 짙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랑으로 헌신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사랑하며 살아갈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것만 보며 살지.


 10.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건데, 하나님 나라를 일구며, 사랑으로 고난을 견뎌내며 예수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길 바란다. 

마가복음 7장 24-37절 오고 가는 모든 것에 고귀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오고 가는 모든 것에 고귀한 목적과 의미를 담고 사셨던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24절 본문을 보면, <일어나사 ... 떠나 ... 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오고가심에는 거룩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을 위해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분주하게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오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예수님께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처럼 그 발 아래에 엎드리기 원합니다.
 ‘엎드리니’는 ‘예배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모여 찬양하며 말씀듣고, 기도하는 수요기도회가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며 상대방을 배려하고자 함께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예배이며, 무엇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우리의 오고 가는 발걸음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랑나눔 공동체 식구들을 살피며, 더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서로 돌아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이 진정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이며, 우리가 드리는 온전한 예배입니다.

 수요기도회로 함께 하여 모여할 시간,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를 삶의 자리에 드리는 사랑나눔교회 성도님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Wednesday, March 11, 2020

마가복음 5장 1-20절 예수님의 발걸음.

 마가복음 5장 1-20절. 예수님의 발걸음.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을 가십니다.
 거기서 하신 일을 하나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에게 고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세상의 욕망이나 악한 것들은 
 결국에 우리는 더욱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끄십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세우시기 위해 
 지금도 예수님은 사람을 찾으시고 찾아오십니다.

 예수안에 참된 자유를 누리십시오.
 또한 여전히 세상에 짓눌린 자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나누십시오.

 오늘 수요기도회를 드려야 하는 시간에
 코로나 19로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없고 할 수 없지만,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경건한 시간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나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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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발걸음.

 1절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가셨다.
 2절 거기서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와 만남. 귀신을 쫓아내심. 제정신이 들었다. 
  3절 그는 무덤 사이에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아무도, 
6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절 큰 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8절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결국 사람을 괴롭게 하는 존재다. 수가 많다. 예수님을 볼 때, 자신을 괴롭게 하는 존재로 본다. 예수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시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귀신들도 두렵고 떠는 존재시다.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15절 사람들은 군대 귀신에 사로 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15절. 왜 제정신이 들었는데 두려워할까? 세상이 그만큼 비정상이다.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17절.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아이러니하다.)

 1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귓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19절. 예수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20절 그는 떠나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리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다. 


 21절.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으면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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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8, 2020

마가복음 4장 21-34절. 하나님 나라 운동 생명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4장 21-34절. 하나님 나라 운동 생명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비유를 통해서 생명력을 가지고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합니다. 

 생명력.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을 밝히 비추라. 이게 곧 생명력이다.
 등불 - 등경 위에 둔다. 22절. 잘 드러나도록 하라. 감추어 둔것이(어두운 것들이) 드러나도록 하라. 

 생명력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라. 
 들어라. 행하라. 24절. 도질, 되질,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하는 이들은 더 받을 것이요, 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자라남.
  하나님 나라는 자라나야 합니다. 38-29절. 하나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납니다. 분명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하는 사이에, 씨 -> 싹 -> 이삭 -> 낟알 -> 열매 -> 추수.

 확장성.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누구보다 더 큰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정성은 섬김으로, 낮아짐으로 이루어집니다. 
 겨자씨 비유, 31-32절.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이성적 사고. 
 하나님 나라는 알아듣도록,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다하는 이들에게, 다음세대에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알아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다음세대에도 알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나의 작은 수고와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큰 역할이 되게 하소서. 



Friday, March 6, 2020

마가복음 3장 20-34절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은 누구?

 마가복음 3장 20-35절 

 예수님은 집에서도 많은 무리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모습을 보고 
 예수의 가족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를 붙잡으로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에 들렸다고 합니다(귀신 들렸다는 말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니 
 귀신의 왕을 힘입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서기관들은 말씀인 율법은 알았지만 
 그 말씀의 능력이 그 말씀의 행함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구원한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행하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족이나 율법학자들 눈에는
 미친 자로, 귀신 들린 자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그 뜻과 말씀대로 행하는 자! 누구든지
 그가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Thursday, March 5, 2020

마가복음 3장 7-19절 제자인가? 많은 무리인가?


 마가복음 3장 7-19절.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와 제자의 다른 점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소문으로 듣고 따르는 자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원하신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다.

무리들은 어느 지역에 온 사람들로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무리들을 예수님은 피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챙기고 세우셨다.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드러내지 말라 엄히 꾸짖으셨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라 하셨다. 

 무리들은 예수님보다 앞서려고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따라간다. 

 무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으려 예수님을 이용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워주신 정체성을 따르는 자들이다. 

 무리들은 곧 예수님을 떠난다.
 제자들은 곧 예수님이 떠나시지만 늘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한다. 

 한 날 다짐해 본다.
 ‘내 안에 그 분이 계시고, 그 분은 나를 통해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가?’


 주님이 부르신 것이며,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들이 제자이다. 

마가복음 2장 13-28절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사


 마가복음 2장 13-28절의 예수님은 모습은 
 그 당시에 통념을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이들은 당시 천시 받던 어부요, 경멸 받던 세리로서 사회에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더 나아가, "죄인들"과 함께 앉았습니다(2:15).
 예수님은 이방인들, 그들과 함께 먹고 대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은,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죄인들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 1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후 병든 자에게 다가가 그들을 만졌고 죄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넘지 못할 경계, 결코 다가 설수 없다고 말하는 이방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일은 정죄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니다. “너희도 나처럼, 경계를 넘어 그들에게 나아가라”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주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죄인을 부르시는데, 어찌 은혜 입은 우리가 …


 오늘 한 날도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하며 주님의 이름을 나누는 한 날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가복음 2장 1-12절 "영적으로 함께하기"

 “사회적 거리두기”

 참으로 낯설었던 말이 요즘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은 아쉬울 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함께하는 것이 기쁨이고 위로인데…

 오늘 큐티본문 마가복음 2장 1-12절 말씀은 
 중풍병 환자를 네 사람이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네 사람을 포함)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역사하십니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정에만 있고,
 사회적 분위기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교제가 중단된 때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마음까지 거리 두기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모두의 건강과 사회적 안녕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지만,
 마음만은 더욱 가까워져야 할 때입니다.

 마음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SNS를 통하여,
 영적 네트워크 기도를 통하여,

 좀더 행복하고 예수님의 사랑도 전하며 나는 한 날 되기를 소망합니다.

Sunday, February 9, 2020

30~40대 75% 한국교회 불신…목회자는 '도덕성' 개선, 교인은 '배타성' 극복이 과제


기윤실 2020년 사회적 신뢰도 조사 발표…사회봉사 가장 많이 하는데 신뢰도 가장 낮아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31.8%, 불신은 63.9%로 나왔다. 구체적으로 보면 매우 신뢰한다 6.7%, 신뢰한다 25.1%, 신뢰하지 않는다 31.5%,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32.4%를 기록했다.
연령대별로는 30대와 40대의 반감이 가장 컸다. 30대는 전체 73.5%, 40대는 74.7%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60대 이상에서만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48.9%)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42.3%)보다 높게 나타났다.
종교별로는 개신교인만 개신교를 신뢰(75.5%)하고, 타 종교인이나 종교가 없는 이들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나타났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가톨릭 신자에서 58.6%, 불교 신자에서 67.2%, 무종교인은 78.2%를 기록했다.
개신교는 종교별 신뢰도 조사에서도 꼴찌를 기록했다. '개신교·가톨릭·불교 중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가톨릭 30%, 불교 26.2%를 기록했으나 개신교는 2017년과 같은 18.9%에 그쳤다. 개신교는 과거 조사에서 2009년 26.1%, 2013년 21.3%를 기록했다.
목사와 개신교인에 대한 세부적 신뢰도 역시 한국교회 전반을 향한 인식과 비슷했다. 목사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0%, 개신교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2.9% 수준이었다.
'한국교회는 교회 밖 세상과 잘 소통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2017년 조사보다 4.1% 하락한 34.6%가 그렇다고 동의했다. 응답자들은 '한국교회가 사회문제 해결이나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64.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응답은 31.6%에 그쳐 2배 차이를 보였다.
한국교회가 잘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분야는 봉사 활동이었다. 응답자들은 종교 중 개신교가 사회봉사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고 인식했다. 개신교 35.7% 1위에 올랐고, 가톨릭(32.9%), 불교(10.2%)가 뒤를 이었다.
응답자들은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불투명한 재정 사용'(25.9%)을 꼽았다. 교회 지도자의 삶(22.8%),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19.9%), 교인들의 삶(14.3%), 교회 성장 제일주의(8.5%)가 뒤를 이었다.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할지 물었다.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49.8%), 봉사 및 구제 활동(27.9%), 환경·인권 등 사회운동(8.4%), 문화 예술 활동(4.3%), 학교 운영 등 교육 사업(4.2%) 순으로 나타났다.
목회자와 개신교인의 개선점도 물었다. 목회자는 윤리·도덕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51.9%로 압도적이었다. 물질 추구 성향(14.5%), 사회 현실 이해 및 참여(12.1%), 교회 성장주의(6.4%)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 개신교인이 개선할 점으로는 남에 대한 배려 부족(26.6%), 부정직(23.7%), 배타성(22.7%)을 꼽았다.
기윤실은 이번 조사에서 특별히 '가짜 뉴스'와 4월 총선에 대한 인식도 함께 물었다. 가짜 뉴스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10명 중 9명이 가짜 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매우 심각하다 64.9%, 약간 심각하다 24.1%, 별로 심각하지 않다 6.0%, 전혀 심각하지 않다 1.8% 응답을 보였다.
가짜 뉴스 주요 유통 경로로 유튜브·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54.3%)를 1위로 꼽았다. TV·신문·라디오 등 전통 매체(18.3%)는 2위, 인터넷 뉴스·포털(16.3%)이 3위, 인터넷 밴드·카페(6.3%)가 4위였다.
목사의 정치 활동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응답자 절반 정도(47.7%)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길 원한다고 답했다. 목사가 정치적 집회 참여 활동을 해도 좋다는 의견은 16.3%로 나타났다.
*적용
뉴스를 보면서 우리 교회가 적용할 점을 본다., 문제 지적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대안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도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의 7가지 적용
1. 세상 밖에서도 인정받는 교회여야 한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서 자리매김하라. 
2. 목회자의 윤리성, 도덕성 확보는 필수다.
성적인 문제, 재정적 문제, 세습을 철저하게 지양하라. 
3.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모든 재정은 투명해야 하며 정확하게 관리해야 한다. 
4. 타종교에 대해 혐오와 배제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종교를 배제와 혐오로 바꿀 수 없다. 인간은 사랑으로 변한다.
5. 세상 밖과 소통하면서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세상을 알고 세상보다 높은 수준을 회복해야만 소통과 통합이 이루어진다. 
6,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는 정치적 발언은 삼가해야 한다.
극우나 극좌 모두 균형을 잃은 것이다. 교회는 말씀에 기초해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특히 설교단에서는 정치편향적인 발언은 삼가해야 한다. 
7. 가짜뉴스를 분별하고 차단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불순한 목적으로 전파되는 거짓뉴스의 숙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내의 나눔이 아니라면 특정한 극단에 치우친 주장을 싫은 기도제목이나 알림이나 여러 다양한 내용들을 카톡이나 밴드나 유튜브를 나누지 않아야 한다.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목사-


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 1985~2020)의 죽음을 애도하며 핑위원이라는 분이 쓴 글


2020년 1월 전세계는 중국에서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이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접촉을 꺼리고,
세계경제는 위축되고 있다.

처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했을 때
리원량 의사는 중국 공산당 정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무시되었고, 그 후 일은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이르게 되었다.

주님께서, 빨리 신종 코라나바이러스 사태로 고통 받는이들을
구원해주시고 백신, 치료제가 개발되고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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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 1985~2020)의
죽음을 애도하며 핑위원이라는 분이 쓴 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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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그립습니다. 눈송이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캄캄한 밤은 어둡고, 어두움에 집집마다 환하던 등불조차 떠올릴 수 없습니다. 일생 빛을 찾았습니다. 스스로 반짝인다 자랑했습니다. 온힘을 다했지만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가족처럼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단지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동화 속 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왕관을 쓴 치명적인 황후는 반란을 위해 속세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천하는 다시 북적거렸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리라고는.
이후 하늘이 대노하고 산하는 시들고 나는 병들었습니다. 내 가족까지 모두 병들었습니다. 우리는 천 송이 만 송이 눈보라처럼 송이송이 흩날렸습니다. 
봄이 오고 강물이 녹으면 가족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 송이 송이 새며 하루 일 분 일 초를 보내리라 여겼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젯밤 눈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비록 인간은 빈한하고 하늘은 따뜻한 곳이더라도 말이죠. 저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올려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나의 기개는 보증서 한 장으로 죽었습니다. 나는 계속 햇볕이 비치듯 살아 생명을 노래하고 소나무 잣나무를 찬미하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
이제 내 육신은 죽지만 한 줌 재가 되기 전에 조용히 고향의 검은 땅과 하얀 구름을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바람은 마음껏 춤추고 눈은 새하얗게 티 한 점 없습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 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대학 벗꽃 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흰구름 깊은 곳까지 연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만나기를 꿈꿨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태어나면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사람의 물결 속에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네가 평범한 아버지를 원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평민 영웅이 되었구나.
하늘이 곧 밝습니다. 나는 가야합니다. 한 장의 보증서를 들고서, 이 일생 유일한 행낭입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동정하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 나는 당신들이 모두 동트는 새벽을, 내가 산마루 건너기를 기다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합니다.
이번 생애 태산보다 무겁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일한 바램은 얼음과 눈이 녹은 뒤 세상 모든 이가 여전히 대지를 사랑하고 여전히 조국을 믿기를 희망합니다. 
봄이 와 벼락이 칠 때 만일 누군가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를 위해 작디작은 비석하나 세워주기 바랍니다! 우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증명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름과 성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Monday, February 3, 2020

내 마음의 밥상 고전 4:20 <생각 그리고 기도>

내 마음의 밥상
 고전 4:20  <생각 그리고 기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하자.
아니 정확한 표현은 생각 먼저 하기 전에 기도부터 하자.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무슨 일에든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말은 무슨 말인가?

바로 생각하기 앞서 기도하니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니의 인도하심이 있는 생각을 갖게 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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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니의 일꾼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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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이어지면 그가 보이지만
기도가 끊어지면 내가 보입니다.

기도를 이어가겠습니다.

- 조병범 목사님 페이스북에서

2020년 2월 4일 다시 블로거 시작하다

어떠한 목표가 있어야
시간 관리가 잘된다.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글을 올리고자 노력할 때
무엇을 할까
생각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심사숙고하면서
글을 쓰게 된다.

다시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