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갈 6: 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 이를 위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1. 지금 힘들다.
금식 2일차. 유혹은 더 심해진다. 진짜로 초콜릿 하나 먹고 싶다. 바로 앞에 초콜릿이 산더미다. 그런데 어떠하리? 좀 더 참아보자. 힘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귀찮다. 뭐 금식 2일차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난 처음이다. 첫경험이다. 그러니 힘든 것 이해해 주세요. 글이 이쯤해서 여긴 그냥 순서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표준새번역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우어야 합니다"
3.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좋은 것을 잘 받도록 하라. 엘리사와 엘리야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갑절의 은혜를 구하는 엘리사처럼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4.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말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목사로 진정 목사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는가? 열정과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는지 않는가? 할 말이 참으로 많다.
5.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관해서는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있는 그리스도인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6. 스스로 속이는 것은 이어서 나오는 7절 "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아니하시나니"과 관련이 있다.
7. 하나님은 이 둘을 철저히 구별하여 보고 계신다. 자기를 위하여 심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다 말하는 자는 아닌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인가? 심령을 위하여 심는자인가?
8.
우리의 열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훈련을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9. 결국 우리는 8절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10. 또한 "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고 있다.
11.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들은 열맬로 알리는 말씀을 주셨다. 마 7장 20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2.
8절 말씀이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13. 2012년 보내며, 2013년을 시작하면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내 평생에 3일 금식은 처음이다. 하루 금식이나, 하루에 한끼, 두끼 금식은 해 보았어도, 3일 금식은 처음이다. 앞으로 7일 금식까지 하고 싶다. 아마 2011년 때의 생각이었다. 나도 하루를 넘어, 3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 일주일 금식을 할 수 있을까?
14. 그런데 오늘 2013년 1월 1일 오후 1시이다.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드는 생각은 점차 유혹이 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천지다. 연말을 보내면서 맛있는 초콜릿부터 새해 첫날이니 떡국 먹는 아이들까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니 먹을 것이 널려 있다.
15. 지금 드는 생각은 이틀만 할까? 커피는 괜찮겠지? 하나 쯤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면서 찾아오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하는 것이다.
혹 금식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 여기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16.
이번 금식의 목적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하는 것도 아니다. 2013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뜻을 잘 분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17. 하루 금식하며 드는 생각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시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생각들이 많다.
18. 물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인간적인 일들을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와중에 문득 찾아오는 주님을 향한 마음들이 참으로 고맙다. 참으로 감사하다.
19.
간절히 바라가니 나의 3일 금식, 그리고 앞으로 금식이 내 자신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금식이 훈장이 되지 않고, 금식이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순간이며 여정이며 과정이기를 갈급할 뿐이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고자 한다.
20. 금식의 기간동안 순간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각들로 나의 삶을 채우고 나의 비전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에 주신 고귀한 생각들을 꼭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21. 이게 바로 9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2.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때가 되면이다. 그래서 때가 찰 때까지 결코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24.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마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게 되어 있다.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내 영안이 깨어 있다면, 즉 믿음이 있고, 성령이 내 안에 있어서 매일의 삶이 성령충만의 삶이면, 내 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행동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를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5. 우리는 선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갈라디아서 5장에서 나오는 말씀과 6장 초반부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기억하고자 한다.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26.
2013년 새해맞이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아내가 자신이 뽑은 올해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구제와 관련 말씀이었다.
잠언 11장 25절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7.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갈라디아서 6장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이 일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한 일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28. 이러한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사역의 방향으로 잡고 나아가길 원한다.
기독교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쓰게 된 페이퍼에서 "교통"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진정한 교통이 서로 삶을 나누며 섬기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 구약에서 주시는 메시지, 신약의 초대교회, 그리고 바울의 서신서에서, 성경은 줄기차게 그들을 섬기며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다.
29.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30. 바울도 권면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기회 있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이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최선과 최대로 또한 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이야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31.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32. 모든 이에게 하라고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안갈 곳 또한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3.
"더욱 믿음의 가정에게 할지니라" 표준새번역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34. 특별히 믿음의 가정을 먼저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지난 주간 한 밤중에 깨닫는 것이 있어서 글을 적어 본 것이 있다. 기회가 되면 전체적으로 글을 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35. 가제는 이렇다. "나는 지난 10여년 비정규직이었다"
내가 지난 교회의 사역자로 10여년을 돌아보니 절처히 나는 약자였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교회와 성도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앞서 갈 6장 2-5절에서 나눈 것처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36. 교회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37. 그들은 사회생활에서 철저히 비정규직이다. 파트파임이다. 언제 나락을로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도우며 섬길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섬기며 도우는 선한 행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는 도움을 교회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8. 이러한 모습들은 여러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하고 있다.
39. 말씀을 마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만열 교수님 쓰신 페이스북의 내용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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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정식 목가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영신(迎新)예배에 참석,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의거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다음은 그 나눈 말씀의 부분 부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를 행하면 귀하게 되고 명예를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그 보상을 받은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큰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남겨진 선한 역사와 전통은 보상받지 않고 죽어간 많은 의로운 자들의 희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없이 죽음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사는 것은 그들 이름없이 죽어간,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며 사라진 거룩한 이들의 희생의 은덕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보상없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되다고 언명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을 언급하다보면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복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20장 35절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그 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언급한 8복 외에 새로 추가된 복입니다. 이것은 나눔의 복이요, 주는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복을 실천하는 대안적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하고 더 얻는 것을 복되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이 말씀은 소유와 탐욕 중심의 복의 정의를 달리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과 주는 것, 그 사이에서 더 복된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얻는 것보다 주는 것, 베풂을 당하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유 중심의 일상적인 복 관념을 뒤집어(顚倒)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에게 주고 가난을 실천하는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복되며,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자보다 훨씬 복된 삶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자가 오히려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막힌 반전(反轉)이 여기서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유는 내 맘대로 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소유란 땅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도록 맡긴 위탁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위탁받은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가진 소유는 제 때에 나누고 관리하기 위해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움켜쥐고 자기 것인양 유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청지기의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은 많이 가진 자가 있음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베푸는 자가 있음으로 넉넉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약속하면서 출발한 이 정권이지만 삶은 더 팍팍해졌고, 새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 놓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멍들어가는 공동체를 생명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실천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나눔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누면 작아집니다. 특히 저급한 가치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고급가치는 나눌 수록 불어납니다. 예술과 문화와 학문과 사상은 나눌 수록 커져 가고 불어납니다. 사랑과 희망, 위로와 평화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물적 가치도 사랑으로 나누면 5병2어의 기적을 불러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나눌수록, 줄수록 더 커지는 기적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屬性)은 사랑과 정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울의 양 추와 같이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이루기가 힘듭니다. 인간에게서 거의 불가능한 이 두 개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나누고 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요, 정의가 요구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정의는 균형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 주는 것은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주는 것, 나누는 것의 극치라고 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정의는 동시에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 이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이 베풀 수 있는 자, 많이 줄 수 있는 자가 부자입니다. 세상에는 많이 가졌지만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을지 몰라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와 반대로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입니다. 우리가 많이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베풀 수 있는 신앙인이 될 때, 또 베풀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될 때,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많이 베풀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실천하려고 할 때, 온 우주를 소유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더 잘 줄 수 있도록, 더 잘 베풀 수 있도록 늘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라고 할 때 정녕 받아야 할 복은 바로 이 복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복입니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많이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이 복입니다. 이 복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은 복을 공급하고 복을 나누는 복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다.
40. 2013년 나의 표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41. 아멘. 기쁨으로 참으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2. 우리 모두 그러한 은혜가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43. 오늘은 한 날 묵상이 아니라 한 해 묵상이었습니다.
44. 날마다 매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은혜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45. 할렐루야. 아멘.
2013. 1. 1. 오후 4시 10분 금식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