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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26, 2012

우리는 하나 '인종 화합"


사도행전 17장 26절 - 성경은 인류 전체가 '한 혈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종간의 화해를 이루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다. 특히 창조에 관한 설명은 일종 편견의 중추신경을 밑동에서부터 싹뜩 잘라 버린다.  창조주가 아담을 지으시는 장면은 인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유대인 학자들이 편집한 성경의 주요 주석서로 첫손에 꼽히는 미슈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로 만드신 까닭은 무엇인가? 그래야 아무도 '내 아버지가 그대의 아버지보다 낫다'는 소릴 할 수 없을 것 아니겠는가!"

인종차별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이야기는 교만과 권력욕에 사로집힌 인류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그 오만함을 벌하시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하셨다. 인간의 교만과 권력욕으로 인해 인종과 국가가 여럿으로 분리되었고,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게 되었다는 창세기의 설명에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어느 학자는 이 대목을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수많은 인간 집단으로 쪼개지게 된 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곧바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땅에 사는 모든 민족(mispahah)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에 쓰인'민족'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집단이나 민족, 또는 인종을 의미한다. 주님은 인류라는 가족의 연대가 깨어진 걸 안타까워하시고, 인간의 죄와 교만이 빚어 낸 인종차별과 국수주의의 장벽을 허무시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이다.

복음 안에서 인종의 벽이 허물어진다.
 신약성경은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완결 짓는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을 맞아 한지리에 모여 있던 교회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시사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바벨탑에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이들이 서로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오순절에서는 제각기 다른 말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빠짐없이 이해했다. 예수님의 은혜가 인종차별의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는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오순절에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 모든 언어로 전달됐다는 사실은, 어떤 문화도 '정통'을 주장할 수 없으며, 성령님 안에서 민족과 언어,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 일치를 이룰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에베소서 2장 11-22절에 따르면, 그 결과 인종과 민족이 '동일한 시민'으로 참여하는 공동체가 탄생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런 점에서 크리스천은 '새로운 종족'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통해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파트너십과 우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복음 임재와 권능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크리스천들을 익숙한 고향 문화를 등지고 한 번도 밝아 본 적이 없고, 그럴 일도 없는 땅으로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만든다.

 성경의 마지막 장은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계 5:9; 7:9; 11:9; 14:6)에서 나온 백성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부터 요한계시록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인종차별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팀 켈러, 두란노, pp.178-183.

Friday, September 23, 2011

한 날 묵상 - 창 12:6-8 <훈련 받으실 준비 되셨나요?>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훈련이 아브람을 아브라함되게 하였습니다

12장
 6절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난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 나의 예배를 진단해야 합니다. 나의 예배는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나 자신? 나의 문제들? 아님, 무엇을 위한 예배인가? 우리의 예배는 여호와를 위한 예배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나타나신 그 분을 위한 예배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 나의 하나님을 위한 예배이기 원합니다.

 8절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 곳에서 여호와을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20절 하나님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간다는 것은 믿음안에서 전진한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완성되지 않는다. 찾고 두드리고 만나려고 할 때 점점 더 가까이 그분께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훈련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의 생각을 버리는 훈련이다. (11-13절)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훈련이다. (17-20절)

점점 더 거룩해지는 훈련은 하나님의 이끌림에 민감하게 더욱 더 반응할 때 성공적이 된다.
이끌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릴 때 인정하고 돌아오자.
나의 실패로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께서 바르게 세우실 때 그 상황을 감사로 인정하자.

 오늘 날의 실수를 돌아본다. 그 실수는 나를 자만하지 않게 한다. 하나님의 세우심에 감사하게 한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게 한다. 다시 넘어지지 않으리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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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끄심에는 나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기근 앞에 아브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렸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약속에 아무런 감이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손길을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실 때 우리에게 향하신 원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적 미숙아로 오늘도 자신의 옛 자아라는 돌부리에
또 넘어져 하나님의 뜻하심을 쉬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세우십니다. 그리고 뜻대하신 대로 사용하십니다.

넘어졌다고 낙망하지 말고,
감사합시다.
그리고 일어나 이끄심에 순종합시다.
이게 바로 온전히 세워져가는 훈련입니다.
훈련이 바로 아브람을 온전히 세워가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12제자를 3년동안 훈련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기 원하십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910호


개인적 변화의 원리 - 과정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당신의 삶의 결점을 없애고자 하실 때, 하나님은 손가락을 딱 부딪쳐서 그 일이 즉시 일어나게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서서히 그렇게 하신다. 전에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하나님이 버섯을 만들고자 하실 때는 여섯 시간을 들이시지만, 떡갈나무를 만드실 때는 60년을 들이신다.
여기서 질문 - 당신은 버섯과 떡갈나무 중 무엇이 되고 싶은가?
성령은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실 것이지만, 그것은 하룻밤 새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숙명의 1일’이 아니라 ‘숙명의 10년’을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내 기도는 이것이다. 오늘부터 10년 동안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소그룹의 지원으로 당신이 더 성숙해지고 더 그리스도를 닮고 당신의 삶의 목적을 더 많이 성취하는 것이다.
또한 내 기도는 지금부터 10년 동안 당신이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에 대해 의도적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한다. (엡 4:24)
이렇게 하면 더욱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릅니다. 그 영광은 성령이신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고후 3:18, 쉬운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