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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rch 2, 2012

예루살렘 대성전(3),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이슬람은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성전 자리 위에 이슬람 사원인 ‘바위 돔 사원’을 지었는데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사악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믿고 있다)을 제물로 바치려던 바위이다. 이 바윗돌의 크기는 길이가 약 18m, 폭이 13m, 높이는 1.25-2m 가량 된다. 661년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칼리프(caliph, 이슬람의 종교 ․ 정치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옛날 명칭) 무아위야(Muawiya)는 바위돔 사원의 건축을 계획하였고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Abd al-Malik, 685-705 재위) 때인 691년에 완공되었다. 칼리프 알 말리크는 이 사원을 짓기 위해 이집트에서 들어오는 7년 동안의 국고 수입에 맞먹는 돈을 이 사원의 건립에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원의 정화 예식을 몸소 거행하여, 직접 손으로 바닥을 쓸고 닦았다고 하며, 그 때문에 그 후의 모든 칼리프들은 똑같은 예식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칼리프 말리크는 685년에 그리스인 건축가, 아르메니아인 장인과 더불어 시리아인 인부들을 고용하여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자리 위에 비잔틴 양식으로 8각형의 기념 건물을 웅장하게 지었는데,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축한 예수님 부활 성당을 모방 했지만 그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나무로 된 돔은 지름 18m로 높은 ‘원통형 구조물’ 위에 얹혀 있으며 그 밑은 16개의 기둥이 둥글게 배열되어 있다. 이 원을 둘러싸고 2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8각형 아케이드가 있다. 외벽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8각형이며 각 면은 대략 너비가 18m이고 높이가 11m이다. 바위돔 사원은 수학적 ․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슬람이 예루살렘에 남긴 최고의 걸작이며 현존하는 이슬람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아직도 가장 웅장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돔을 이루는 둥근 틀은 납과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겨울에는 동물의 가죽을 그 위에 덮어 예루살렘의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얼어붙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솔로몬 성전의 중심이었던 거룩한 바위 위에 바위 돔 사원을 지으면서 그리스도교의 예수님 부활 성당의 돔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만든 이유는 이슬람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반 위에서 탄생 했지만 이 두 종교를 최종적으로 완결하는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등 아랍권에서 온 이슬람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대한 그리스도교 성당들을 보고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알 말리크는 돔 내부의 천장 벽에 꾸란 중에서도 반 그리스도교적인 구절들을 인용하여 새겨 놓았다. 그렇게 새긴 글은 길이가 240m나 되며 현존하는 이슬람 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인데,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이란 것과 삼위일체설 등을 비난하는 구절들과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바위돔 사원이 있는 성전터의 항공사진

서쪽 통곡의 벽이 보이고, 통곡의 벽 오른쪽으로 보이는 통로는 무어족의 문으로 들어가는 비이슬람들을 위한 입구이다

성전산에 들어가는 입구

무어족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고학 발굴을 위해 최근에 통로로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토라법에 의거해서 성전산 지역에 들어가는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성전산에 들어가기 위한 검문, 엑스레이 검사까지

무어족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고학 발굴을 위해 최근에 통로로 만들었다

중앙에 황금 돔이 보이는 것이 바위돔 사원이며, 왼쪽 아래에 있는것은 알 악사 사원. 그리고 아래 오른쪽은 솔로몬의 마구간 자리이다

8각형 사원

8은 7+1이라는 의미에서 옥타브를 나타내는 숫자, 재출발을 상징한다. 8은 낙원의 회복, 재생, 부활, 지복, 완전한 리듬의 상징이다. 단식과 참회의 7일간이 끝나고 8일째는 풍요와 신생의 날이다. 동서남북의 4가지 기본 방위에 각각의 중간 방위를 다하면 8개의 방위가 되며, 입체성을 상징한다. 불교는 여덟 가지 상서로운 상징과 특히 깨달음에 이르는 팔정도로 유명하다.

붉은 글씨는 바위돔 사원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이다. 비이슬람 신자는 11번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고 나가는것은 어느 문이나 상관없다. 1.지파문(Tribes Gate) 2..히타문(Hittah Gate)  3.화이잘왕문(King Faisal Gate)  4.과와니마문(Ghawanima Gate)  5.감옥문(Prison Gate)  6.철문(Iron Gate)  7.목화상인문(Cotton Merchants Gate)  8.세정문(Ablution Gate)  9.고리문과 평온문(Chain and Tranquillity Gate)  11.무어족의문(Morocco Gate)  12.이중문(Double Gate)  13.삼중문(Triple Gate)  14.외문(Single Gate)  15.황금문(Golden Gate)   A.바위돔 사원  B.다윗법정(쇠사슬사원) C.설교단  D.요셉의돔  E.문법돔(Grammar Dome)  F.모세의돔  G.이집트 마멜룩크 샘  H.가브리엘돔  I.무함마드 승천기념돔  J..헤브로니테의돔  K.엘리야의돔  L.무함마드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설교했다는 곳(Dome of the Sprit)  M.솔로몬의돔  N.파샤의돔  O.슐레이만샘  P.샘(엘 카스, El-Kas)  Q.엘 악사사원(El-Aqsa)  S.여자들의 사원  R.이슬람박물관  T.솔로몬마구간(지하)  U.안토니아요새  *.예수님이 유혹 받으신 곳

바위 돔 이슬람사원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바위돔 사원이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성지가 되는 것은 무함마드가 이 거룩한 바위에서 알라의 마지막 계시를 받기 위해 천국에 다녀왔다는 전승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슬림 사원으로 탈바꿈한 지 수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이 바위 돔 사원이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날아와 아크사 사원(al-Aksa)으로 옮겨졌다가, 신의 마지막 계시를 받으러 하늘로 올라갔다는 꾸란 말씀의 그 장소라고 믿게 되었다. 여기서 ‘하람사원’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을 말하며, 아크사 사원은 예루살렘 모리야 산 위에 있는 솔로몬 사원 지역을 말한다. 아크사 사원은 ‘먼 곳의 사원’으로 번역되는데 최근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그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카 근처에 있는 알지라나(al-Jiranah)란 작은 마을로 630년경 무함마드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바위 돔 사원이 완공된 뒤, 무함마드의 40일간의 밤 여행은 더욱 화려하게 각색되었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인도하는 가운데, 부라크(Buraq-번개라는 뜻. 여자의 얼굴과 공작의 꼬리를 가진 말)라는 이름을 가진 백마를 타고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하늘을 날아왔으며 그 중간에 모세와 다윗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시나이와 베들레헴에도 들렀다고 한다. 그는 모리야 산의 바위에서 하늘로 날아가기 전에 부라크를 성전 서쪽 벽(유대인들의 통곡의 벽)에 묶어 두었는데 그 이후로 서쪽 벽은 무슬림들에게 부라크라 불리기 시작했다.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빛으로 된 사다리를 타고 하늘에 올랐으며, 아담, 아브라함, 모세, 솔로몬, 세례자 요한, 예수 등을 모두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 개의 하늘을 지나 알라를 만나서 최후의 계시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 중엔 무슬림들이 해야 할 기도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서 다시 모리야 산 바위로 내려와, 부라크를 타고 새벽이 되기 전에 메카로 돌아갔다. 무함마드의 승천 이야기는 중세 유럽 문학 특히 시인 단테(Dante)의 신곡(Divine Comedy)에서 ‘천국 편’의 모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638년에서 750년까지 100년도 넘게 예루살렘은 수니파인 우마이야 가문이 다스렸다. 이 성전을 지은 칼리프 말리크는 성전을 지으면서 이슬람력 72년(기원후 691년)에 완공했다는 것을 성전 내부에 기록 했는데 이후 이라크 및 이란의 시아파 무슬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바스 가문으로 정권이 바뀐 후 모든 이슬람 건물에서 우마이야조 칼리프들의 이름이 다 지워지고 아바스 칼리프들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성전이 완공 된 후 200년이 지난 후 아바스조의 알 마문(al-Mamun, 813-835년 재위)은 알 말리크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으로 대체했는데 건물 안에 새겨진 완공 일자를 바꾸지 않아 그의 거짓말이 들통 나게 되었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돔 사원은 수세기에 걸친 여러 번의 지진이 있었고 1016년에 무너졌다. 그 후 1319년 맘루크 칼리프 안 나시르 무함마드(An Nasir Muhammad)에 의해 재건축이 되어 우리가 오늘날 보는 모습이 되었다. 16세기 베네치아에 있는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에 영향을 받은 무슬림 장인들은 바위 돔 사원의 둥근 지붕 겉면을 페르시아 자기로 된 타일로 장식했는데, 이 타일들은 노랑, 녹색, 검은색, 청록색 등 가지각색이며 그 기하학적인 꽃무늬 도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슬람 예술의 정수는 바로 둥근 지붕의 안쪽 표면인데, 색깔과 도안이 둥근 표면 전체에 고르게 박혀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건물의 안팎 벽면에는 ‘꾸란’의 말씀이 고대 아라비아 문자로 새겨져 있다. 건물의 안쪽은 갈색 줄무늬가 있는 백색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으며, 그 기둥의 꼭대기에는 금박으로 된 비잔틴식 무늬가 있다. 팔면의 벽체 중 동서남북의 사면에만 출입문이 있다. 각 벽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창으로 만들어진 대형 창문들은 부드럽게 빛을 받아들이면서 둥근 중앙 경배실 안의 신성함을 더해준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돔은 아브라함의 모리야 산 바위이자 무슬림 전통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하늘로 날아간 곳이기도 한 바위를 품고 있다. 이 바위는 울퉁불퉁한 석회암이 아무렇게나 돌출한 모양을 하고 있어, 주변의 찬란한 구조물들과 대조되어 보이는 이 바위는 마치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 때문에 재미 있는 전설이 생겨났다. 무함마드가 하늘로 날아갈 때 이 바위도 그를 흠모하여 따라가려 했지만, 무함마드의 안내를 맡았던 천사 가브리엘이 손으로 바위를 눌러 다시 돌려놓으며 "바위야, 너의 자리는 이곳 세상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에덴동산에는 네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외쳤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바위 위에는 천사 가브리엘의 손자국과 무함마드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옆의 탑 속에는 무함마드의 수염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일 년에 단 한번 라마단의 27일째 되는 날 공개된다. 이 날은 천사가 내려와 무슬림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라고 한다.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믿음은 만일 이 바위가 땅에 떨어지면 바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거라는 이야기는 황금문의 전설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정부는 바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조 받침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 신비한 바위 아래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이 동굴은 무슬림들에겐 무함마드가 하늘에 다녀오기 전 기도를 바친 곳이라고 하여 특별한 경배의 대상이다. 동굴 천장 위에 조금 푹 들어간 곳은 무함마드가 기도 중에 머리를 기댔던 곳이라고 한다. 바위 밑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 엘리야 그리고 무함마드가 야훼 하느님께 기도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바위 밑에 있는 ‘영들의 샘’에는 죽은 영혼들이 모여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무슬림과 유대인들은 하늘의 천국과 땅속의 지옥을 나누는 세상의 중심점이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의 무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위 돔 사원 내부의 반석 밑에 있는 이 우물의 윗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 우물은 ‘이 세상의 모든 연못과 샘에 물을 대주는 근원’이라고 한다. 바위 주위로는 두 개의 폭 넓은 회랑이 있어 메카에 가서 검은 돌인 카바 주위를 도는 의식을 할 수 없는 무슬림들이 여기에서 바위 주위를 돌며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 돔 사원은 메카에 있는 카바,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무덤과 함께 이슬람교도들에게는 3대 성지 중 하나다. 알라는 여호사팟 계곡으로 통하는 예루살렘 동문 밖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메카와 메디나가 충성스런 종복처럼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와서 신에게 경배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최후 심판 때는 이 바위 꼭대기에서 심판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고, 알라 신은 바로 이 바위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시리아 및 팔레스타인에 사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메카까지 가는 의무적인 순례여행(하즈-Haji, 모든 성인 무슬림들이 성도인 메카를 일생에 적어도 한번은 순례해야 하는 다섯 번째 의무) 대신 바위 돔 사원을 찾는 바람에 예루살렘은 그 신성함을 더하게 되었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아치

바위돔 사원이 있는 성전 뜰은 주위보다 3m 더 높게 만들었고, 성전 뜰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방에 8개가 있고 각 계단 위에는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무슬림들은 최후의 심판 날에 이 아치 사이에 모든 인간들의 선과 악을 재기 위해 저울들이 드리워질 거라고 믿으며 그래서 이 아치를 ‘저울’이라고 부른다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 돔 이슬람사원

바위 돔 이슬람사원 황금 돔

이 사원은 돔을 이루는 둥근 틀은 납과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겨울에는 동물의 가죽을 그 위에 덮어 예루살렘의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얼어붙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초승달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바위 돔 사원의 돔 위에 놓인 초승달은 항상 남쪽의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데 메카가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이는 재앙이 일어날 징조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 초승달을 십자가로 바꿔 놓았지만 1187년 10월 살라딘이 탈환한 뒤 황금으로 만든 초승달을 원래의 위치에 남쪽 방향으로 다시 달아 놓았다. 그 이후 1855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출입이 금지 되었다.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건물의 안팎 벽면에는 ‘꾸란’의 말씀이 고대 아라비아 문자로 새겨져 있다. 건물의 안쪽은 갈색 줄무늬가 있는 백색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으며, 그 기둥의 꼭대기에는 금박으로 된 비잔틴식 무늬가 있다. 팔면의 벽체 중 동서남북의 사면에만 출입문이 있다. 각 벽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창으로 만들어진 대형 창문들은 부드럽게 빛을 받아들이면서 둥근 중앙 경배실 안의 신성함을 더해준다.

출입문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모자이크 창과 벽면의 꾸란 문자


 


사원 구조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바위돔 사원의 단면도

1.남쪽 문  2.서쪽문(출입문)  3.북쪽문  4.동쪽문  5.다윗법정(쇠사슬 돔)  6.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친 바위  7.무함마드의 수염과 유물이 보관된 탑  8.지하 동굴로 내려가는 입구  9.미흐랍(mihrab, 메카의 방향을 지시)

사원 내부 입체도

사원 내부 모리아산 바위

돔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바위이자 무슬림 전통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하늘로 날아간 곳이기도 한 바위를 품고 있다. 이 바위는 울퉁불퉁한 석회암이 아무렇게나 돌출한 모양을 하고 있어, 주변의 찬란한 구조물들과 대조되어 보이는 이 바위는 마치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 때문에 재미 있는 전설이 생겨났다. 무함마드가 하늘로 날아갈 때 이 바위도 그를 흠모하여 따라가려 했지만, 무함마드의 안내를 맡았던 천사 가브리엘이 손으로 바위를 눌러 다시 돌려놓으며 "바위야, 너의 자리는 이곳 세상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에덴동산에는 네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외쳤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바위 위에는 천사 가브리엘의 손자국과 무함마드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옆의 탑 속에는 무함마드의 수염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일 년에 단 한번 라마단의 27일째 되는 날 공개된다. 이 날은 천사가 내려와 무슬림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라고 한다.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믿음은 만일 이 바위가 땅에 떨어지면 바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거라는 이야기는 황금문의 전설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정부는 바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조 받침대를 세웠다고 한다.

내부 바위 

 
사원 입구 아치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바위돔 사원이 있는 성전 뜰은 주위보다 3m 더 높게 만들었고, 성전 뜰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방에 8개가 있고 각 계단 위에는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무슬림들은 최후의 심판 날에 이 아치 사이에 모든 인간들의 선과 악을 재기 위해 저울들이 드리워질 거라고 믿으며 그래서 이 아치를 ‘저울’이라고 부른다   

사원 입구 아치

사원 입구 아치

사원 입구 아치

사원 동편 아치 


예루살렘 대성전(2), 헤롯(헤로데) 성전


헤로데 성전(Herod's Temple)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기원전 37년, 이두매 출신 헤로데(기원전 37-4년 재위)가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유대 왕이 되었다. 헤로데는 비록 유대인 행세를 했으나 부계와 모계 모두 아랍 혈통이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하스몬 왕가의 공주 마리암과 재혼을 하였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예찬자였던 헤로데 대왕은 거대한 성전과 왕궁, 원형 경기장, 목욕탕, 도로, 광장과 요새들을 지어 위대한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헤로데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제2성전을 재건하고 부속 건물과 주변의 요새들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사두가이들의(Sadducee, 기원 후 70년 제2차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하기 전의 약 2세기 동안 번성했던 유대교 제사장 분파) 열렬한 지지를 얻은 성전 재건축은 기원전 20년에 시작되었다(유대고사XV, 380). 헤로데는 즈루빠벨이 지은 제2성전을 부수지 않고 희생 제사나 제물 봉헌도 중단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성전을 만들었다. 성전 건물 자체는 1년 반 정도 걸려 완성되었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의하면 성전은 46년이나 걸려서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에는 성전이 완성되지 않았었다(마르 13,2참조). 역사가들은 헤로데가 죽고 68년이 지난 뒤인 기원후 64년 헤로데 아그리빠 2세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1.안토니아요새 2.행각 3.솔로몬의 행각 4.왕실의 행각 5.이방인의 뜰 6.난간 7.여인의 뜰 8.사제들의 뜰 9.성전 10.윌슨의 아치
11.로빈슨 아치 12.훌다문 13.수산문(오늘날 황금문) 

14.미문 15.니카노르문(Nicanore) 16.이스라엘의 뜰 17.분향제단 18.분향제단으로 오르는 경사 19.정결례 욕조 20.희생제물을 잡는 곳 21.현관 22.성소 23.지성소 24.성소 방 25.나병환자 창고 26.장작 창고 27.나자렛인 창고 28.기름 창고 29.기타 창고 30.행각 31.출입문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

1.창고  2.지성소  3.휘장  4.성소(본관) 5.향제단  6.제사 빵을 차려 놓는 제대 7.일곱촛대(메노라)  8.금포도나무로 장식한 금을입힌 기둥  9.현관  10.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사 지내려 했던 바위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경내에 있는 제2차 성전 모형도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새 성전은 코린트(Corinth) 건축 양식을 따라 하얀 대리석 기둥이 쭉 늘어서 있어 역사가 요세푸스의 표현을 빌면 먼 곳에서 보니 마치 ‘눈 덮인 산 같았다’고 한다. 헤로데는 성전을 더욱 큰 규모로 세우고 외벽을 흰 돌로 입혔다. 성전 본체 주변은 높은 돌담으로 성전 전체를 둘러쌌다.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성전의 가장 거룩한 부분을 건축하기 위해서 천여 명의 사제들이 벽돌공과 목수로 훈련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성전 건물 자체는 벽이나 난간으로 둘러싸 거룩한 영역을 이방인의 뜰과 분리시켰다. 사방 벽에는 이방인들이 그곳에 들어올 경우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들의 뜰은 이방인과 유다인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커다란 뜰이었다. 성전 안에는 세 개의 뜰이 있었는데 바깥쪽에서부터 여인들의 뜰, 유다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이 차례로 있었다. 헤로데는 성전 뜰 남동쪽의 경사진 면과, 현재의 오펠쪽을 메우고, 동과 서로 높은 돌담을 쌓아, 성전 뜰의 넓이를 솔로몬시대의 2배로 확장했다. 성전 북쪽 길이는 314m, 남쪽 길이는 280m, 동쪽 길이는 469m 그리고 서쪽 길이는 485m로 불규칙한 장방형을 하고, 예루살렘 구시가의 약 1/6의 면적을 차지한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예수님께서 사십일 밤낮으로 단식하신 후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아래로 몸을 던지라는 유혹을 했던(마태 4,5-6; 루카 4,9-10) 장소라고 하는 성전 뜰 동남쪽의 거대한 돌담과 성전 서쪽의 통곡의 벽은 오늘도 볼 수가 있다. 통곡의 벽은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전 자체는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 여인들의 뜰'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뜰은 사방에 문이 하나씩 있고, 각 모퉁이에는 방이 하나씩 딸려 있었다. 이 뜰에서 반원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쪽 문을 지나면 ' 이스라엘인들의 뜰'이 나오는데, 이 뜰은 모든 유대인 남자들에게 개방된 '사제들의 뜰'의 일부였다. 성소 바깥을 둘러싼 ' 사제들의 뜰'에는 제단과 사제들의 정결의식을 위한 청동 대야가 있었다. 이 뜰의 가장자리는 문들과 방들로 담이 둘려 있었다. 성소에는 제단에 올리는 빵을 놓는 상, 등잔대, 향 제단이 있었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쳐져 있는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는 구분되어 있었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성전 본당은 뒷면보다 앞면의 폭이 넓었다. 동쪽 정면에는 현관으로 통하는 문 양쪽에 기둥이 2개 서 있었다. 현관 안에는 다시 성소로 통하는 큰 문이 있었고, 성소 서쪽 끝은 지성소였다. 봉헌된 구역 가장자리에는 돌담과 성벽을 쌓아 이방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민족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헤로데 성전은 종교의식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성경 및 그 외 민족문학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고, 로마 시대에 유대인 최고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의 집회소이기도 했다. 성전 밖으로는 주랑이 딸린 성벽을 쌓고 대문을 만들었다. 예수님과 율법 학자들이 가르치거나 토론하고 상인들이 장사를 한 곳이 주로 이 주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마르 11,15-17; 루카 2,46 참조). 새 성전 광장은 집회 장소로 활용 되었고,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자리 잡았다. 신약 시대에 와서 유다인들의 생활에서 회당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전의 중요성은 구약에 비해 덜해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과 초대 교회 역사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 아기 예수님의 봉헌, 소년 예수님과 학자들의 토론이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성전이었다(루카 1,9-23; 2,22-38.46-49 참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토론하고 기적을 베푸셨다(마태 21,14.23; 26,55; 마르 12,35; 14,49; 루카 22,53; 요한 7,14.28; 8,20; 10,23-25; 18,20 등 참조). 예수님께서는 경건한 유다인의 한 사람으로 성전을 존중하셨는데 성전을 ‘하느님의 집'(마태 12,4; 마르 2,26; 루카 6,4), '내 아버지의 집'(루카 2,49; 요한 2,16), '기도의 집’(마태 21,13; 마르 11,17; 루카 19,46)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대한 사랑과 열정 때문에 성전을 정화 하셨다(마태 21,12-13; 마르 11,15-17; 루카 19,45-48; 요한 2,14-17 참조). 성전 정화와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성전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마태 12,6; 요한 2,20-21). 성전과 관련된 예수님의 행위는 후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주요한 죄목의 하나가 되었다(마태 26,59-61; 27,40; 마르 11,15-18; 14,55-58; 15,29 참조).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베풀었다(루카 24,53; 사도 2,46; 3,1-12; 5,12.20-21.25.42; 21,26; 24,12.18 등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밝히고 있듯이(요한 2,19.21-22 참조)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롭고 결정적인 성전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음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이것으로 옛 유대교의 성전은 더 이상 하느님 현존의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이 아니며 이제부터 믿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게 되었다(요한 4,21-24 참조). 예수님께서 몸소 세우셨고(마태 16,18 참조) 그분을 모퉁이 돌로 하여 세워졌으며(에페 2,20 참조) 그리스도의 몸 자체인 교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이다.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주님이 거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다(1코린 3,9.16-17; 6,19; 2코린 6,16; 에페 2,20-22 참조).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그 후 예루살렘은 바르 코크바(Bar Kokhba)가 이끄는 2차 유대 항전(132-135년)이 일어나지만 실패하고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us, 117-138 재위)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 되었다. 2차 유대 항전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는 티투스가 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추방했고, 1년에 딱 한번 히브리 달력으로 아브 달 9일에 성전의 파괴를 애도한다는 목적으로만 입성을 허락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시가지 안에 얼씬도 못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나라 잃은 민족이 되어야 했다. 하드리아누스는 할례를 금지키셨고 유대인들의 명절을 지키는 것, 유태교로 개종하는 것, 토라 설교, 랍비의 임명을 금지했으며 할례를 한 사람이 예루살렘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예루살렘 시가지에는 로마의 신전과 광장들이 들어서고 점차로 로마 양식으로 변모되었다. 성전 터에는 주피터 신전이 들어섰으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족명인 엘리우스(Aelius)와 로마의 수호신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의 이름을 따서 예루살렘은 이제 이름마저 빼앗긴 로마의 식민지 도시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306-337년 재위)에 의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 전 지역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325년). 로마 신전과 석상들은 허물어지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담긴 유서 깊은 곳에 기념 성전들이 곳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때부터 예루살렘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가 있었다. 로마의 승리 이후 비잔틴 시대가 되면서 300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통치시대가 이어졌다. 이 기간 중 비잔틴 황제들은 예루살렘에 교회와 수도원을 수도 없이 지었다. 그러나 기원 후 614년 봄, 페르시아 사산 왕조 호스로우 2세(Khosroes II)가 파견한 페르시아 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써 그 화려했던 비잔틴 시대는 기울기 시작하였다. 성당들은 털리고 불태워졌으며, 수도원들은 파괴되고 사제들과 신자들이 발견되는 대로 학살되었다. 특히 예수님께서 못 박혔던 십자가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조르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군은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 성탄 성당(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벽화가 페르시아 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화를 모면했다고 한다)을 제외하고는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어진 예수님 부활 성당을 포함하여 모든 성당들이 파괴 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들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유물인 십자가를 되찾기 위해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기원 후 622년에 메소포타미아 깊숙한 곳까지 침공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627년에는 페르시아의 수도 니네베를 정복하자 페르시아인들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이집트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일부까지도 다시 돌려주는 평화 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은 630년에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 십자가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8년 만인 638년에 무슬림들은 10개월간의 공방 끝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 이후 십자군이 1099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할 때 까지 460년 동안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638년 칼리프 우마르(Umar)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638년 이후 이제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의 도시로 변모되어 많은 기념 성전들이 파괴되거나 아니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팔레스티나의 새 주인이 된 우마르는 그리스도교 총대주교와 함께 솔로몬의 성전과 헤로데의 성전이 있었던 성전 산을 방문하였는데 페르시아인들이 파괴하여 무너진 돌들로 막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자 손수 앞에 있는 돌들을 치워가며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유대인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에 쓰레기를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즉각 쓰레기들을 치우도록 했다고 한다.

헤로데 성전의 함락과 파괴  

헤로데가 만들고 있던 성전은 복음서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극찬할 정도로(루카 21,5; 요한 2,20참조) 빼어난 성전이었지만 46년을 정성들여 지은 이 성전은 완공된 지 겨우 6년 만에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기원 후 66-70년에 일어난 유다 1차 항쟁을 진압한 로마의 티투스 황제(Titus, 79-81 재위)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루카 21,6)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 되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날은 유대 달력으로 아브(Av. 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 날이었다. 제1차 성전과 제2차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통곡의 벽 앞에 전날 밤에 모여 밤새도록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고 단식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해가 진 후 예루살렘 구 성곽 밖을 행렬한다. 로마 콜로세오 옆에 있는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에는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황금 제대, 은 나팔, 금으로 된 일곱 촛대(메노라)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빠져 나간 일부 유다인들도 사해 남서쪽에 헤로데가 만든 천연 요새 ‘마사다’로 퇴각하여 최후까지 항쟁하다가 결전의 날에 모두 자결함으로써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 조감도

성전 서남쪽 모서리를 중심으로, 서남쪽 모서리에 나 있는 다리는 고고학자 '로빈슨'에 의하여 발견되어 로빈슨 아치라고 부른다. 그 왼쪽으로 있는것이 통곡의 벽이다. 그리고 모서리에서 오른쪽 벽면에 두개짜리 문은 예수님 당시에도 출입문으로 사용 되었던 이중문과 그 오른쪽으로 삼중문이 보인다
성전 동편에 나 있는 수산문, 오늘날의 황금문 자리

여인들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사제들의 뜰)을 이어주는 대문, 니카노르 문

지성소로 들어가는 출입문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성전 서쪽에서 바라본 도면. A.암반-원래 모리야 산 B.메워진 곳  C.현재 드러난 부분
1.로빈슨 아치  2.바클레이 문  3.윌슨 아치  4.고리 문  5.웨렌 통로  6.웨렌 문

성전 동쪽에서 바라본 도면. A.암반-원래 모리야 산 B.메워진 곳  C.현재 드러난 부분
1.성전 동남쪽 끝부분-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은 곳  2. 황금 성문  3.벳자타 계곡  4.이스라엘 연못

A는 성전 서남쪽 모퉁이, 그리고 B는 동남쪽 모퉁이. A와 B 사이에 A쪽으로 조금 치우쳐 솟아 있는것이 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 A와 B 아래쪽에 둥글게 굵은 실선으로 나 있는것이 원래 모리야 산 언덕...B 오른쪽 부분은 성전 북동쪽이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붉은 기와집은 성전 남쪽으로 왕실 회랑

윌슨(Wilson) 아치.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리로 곧바로 대사제의 집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로빈슨 아치, 아랫도시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아랫도시로 연결되는 계단

아치 다리가 파괴되어 성벽 벽면에 약간의 흔적만 남았었는데, 이 돌출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미국의 고고학자 로빈슨이 발견하여 아랫도시로 연결되는 아치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 후 이 아치를 로빈슨 아치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에서 벽면에 조금 튀어나온 흔적이 남아있다.

벽면의 돌출된 부위를 이상하게 여긴 로빈슨에 의하여 아랫마을로 연결된 아치였음이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확인되었다. 

성전 동남쪽 끝부분. 윗쪽에 드러나 있는 부분이 현재 성곽부분이며, 중간 부분은 메워진 곳이고, 그 아래쪽은 원래 모리야 산 언덕 부분. 드러난 부분만큼 땅속에 묻혀 있다. 이 성전 꼭대기가 예수님께서 두번째 유혹은 받은 곳이라고 한다. 

동남쪽 성전 모서리        

동남쪽 성전 모서리, 동편에서 바라본 모습, 성전 동남쪽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예수님께서 유혹 받으신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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