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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12, 2012

설교 - 누가복음 5장 27-29절 "나를 따르라 하시니"


설교본문 : 누가복음 527-29
설교제목 : 나를 따르라 하시니 ... 누가 따를 수 있는가? 따른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변화가 동반된 예수의 제자가 되라.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예수를 수 있을까?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27 After this, Jesus went out and saw a tax collector by the name of Levi sitting at his tax booth. "Follow me," Jesus said to him,
28 and Levi got up,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29 Then Levi held a great banquet for Jesus at his house, and a large crowd of tax collectors and others were eating with them.
 
말씀 요약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가시는가?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
1. 심령이 가난할 때 바로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2. 예수님은 오직 죄인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죄인의 친구로 오셨다.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조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예수님의 제자가 하는 가장 기본은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레위 세리 세관의 변화
따르기 전 -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무엇인가?
따르기 후 - 모든 것을 버리다. => 예수님이 최고다. 최선이다.
 
설교문...
그리스도인, '그저 교회 가는 사람들 Church-goer'들과 '주일 크리스천 Sunday christian'
마태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며, 히브리식 이름은 레위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알패오의 아들로 태어나 세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명으로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사역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제자로 마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난 후에,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 제자가 바로 세리 마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세리 마태를 부리시는 장면을 통해서 함께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를 부르시는 지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은혜를 누리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라. 예수님을 만나면 세리가 누렸던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1. 심령이 가난할 때 바로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심령이 가난 한 자가 된다는 의미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리 마태가 예수님을 만나는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참조하면, 마태는 세리였고 본명이 레위였습니다. 당시 로마인 세금 징수원은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런 일에 종사한 유대인 또한 인기가 없었습니다.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 당국에 일정한 금액을 바치고, 그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결국 세리가 정한 금액은 사람에 따라 달랐습니다), 되도록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많이 세금을 받았습니다.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게 되었습니다.
세리가 정한 금액은 사람 따라, 그 때 그 때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세리 앞에서 잘 보이려고 했지만, 뒤돌아서면 호박씨를 까고, 더러운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다보니 세리 마태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라는 직업상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믿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마음은 그러나 공허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기 원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찾아오셨습니다.
27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공허함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상한 심령을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기쁨과 평안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혹시 힘들고 괴롭고 상한 심령가운데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찾아가세요주님을 만나보세요. 주님만이 상한 심령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직 그 분만이 온전한 회복을 가능하게 합니다.
 
2. 예수님은 오직 죄인들에게 찾아오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죄인의 친구로 오셨다.
3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떼 있나니
 
건강한 사람들은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의사는 병든자에게 쓸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무엇을 많이 가졌기에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가 죄인일 때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자는 누구입니까? 스스로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자기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배하러 나오면서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주님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는데 우리야 오죽 하겠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은 자이면서도 날마다 죄를 짓는 죄인으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러분 죄가 많은 것 같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니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부족하기에, 나는 잘난 것이 없기에 더욱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자꾸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예수님 보시기에 만족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늘 부족함에 나의 죄를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너는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믿음에서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매일, 매 순간 해야 할 절대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도 세리이며, 죄인입니다.
 
누가복음 7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우리가 아직 연약하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 여전히 무너지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금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연애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때론 무너집니까?
무엇이 부족해서 그들이 무너질까요?
자신이 잘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늘 팬들의 함성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준에 그게 미치지 못할 때 무너집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기가 있고, 유명하더라도 늘 자신의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습니다.
 
3.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 나에게 이러한 것을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시면, 나에게 대학을 주시면,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세리처럼 세상의 모든 것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최고로 최선으로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처럼 변화가 동반된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실제적으로 이렇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것, 어떤 봉사를 한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조건을 걸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리 마태를 보면, 그가 제자가 된 후 첫 번째 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자신을 것을 쏟아 부어 큰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어떤 댓가나 잘 됨을 바라지 않았으면 오히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 드렸습니다.
 
당시 세리의 상황으로 보면, 과연 세리의 잔치에 누가 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를 베풀어 초청하였다.
무엇을 얻어 먹을 것을 기대한 사람외에는 아무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치럼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새생명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따르겠다 결단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28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4. 예수님의 제자가 하는 가장 기본은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 보았지만, 세리 마태가 예수를 따르겠다 하고 첫 번째 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큰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자신을 것을 쏟아 부어 큰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께 친구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초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 마음에 감동이 오는 첫 번째는 잔치를 베풀어 예수님을 소개시켜 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의 제가 되었다면 이러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 하시니이렇게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신다면,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하셨다면,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십시오. 나아가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로 이런 삶이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uesday, January 3, 2012

한 날 묵상 - 창 34:1-31 <야곱의 가족 이야기>

한 날 묵상 - 창 34:1-31 <야곱의 가족이야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가야 할 길이 산 너머입니다. 내 스스로를 바라보아도 나의 목표에 한 참 미달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주 형편 없어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그런 나를 품어주시고 찾아와 주시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야곱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원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자.
또한 가족들의 신앙이 어떻게 성숙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디나 - 딸로서 유일한 등장한 주인공. 그러나??
1절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 왜 그랬을까? 왜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는가?
 => 세상에 관심이 많다.

야곱 - 노년의 야곱의 어떠한가?
5절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렵혔다 함을 들었으니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 여전히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의지하고 있다. 아들이 문제 해결의 키라 생각하고 있다.
 => 잠잠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라.

야곱의 아들들 - 그 아버지의 그 아들들. 그 성품 어디로 가는가?
7절 "야곱의 아들들은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 근심과 노함은 함께 온다. 불평과 노함도 함께 온다.
      근심, 걱정이 감사가 되어야 기쁨이 온다. 기쁨은 근심, 걱정을 변하여 웃음이 되게 한다.
      근심을 잘 다루지 못하면 노를 일으킨다.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근심, 걱정을 감사로 받을 때 진짜 감사하게 되고, 더 큰 감사를 보게 된다.  
      근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노를 일으키는 아들들을 보라.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을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이더라"
 => 자신의 부끄러움을 살피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의만을 생각한다. 이스라엘의부끄러움에만 관심이 있다. 디나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던지, 가족의 죄악 때문인지를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

야곱 가족 - 다른 민족과 결혼 하지 말라는 이삭의 유언이 무너지고 있다.
8-13절
 => 25절에서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만 가서 세겜 성의 모든 남자를 죽인 것으로 봐서는 어떤 다른 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을 경홀히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아무리 작은 것이 무너졌더라도,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이 잃어버렸다고, 전체를 다 포기해도 좋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너진 작은 틈을 메워야 한다.
      디나의 아픔 때문에 주신 율법의 말씀을 어겨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말씀은 어디고 갔는가? 그들에게 말씀은 무엇인가?

야곱 가족 - 할례에 대한 잘못된 이해
14-17절
   14절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 전형적인 율법주의 모습이다. 주신 율법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자신의 수치를 감추기 위한 율법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정결케하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하몰과 세겜의 이기적인 생각은 결국 자신에게 큰 화로 다가온다.
18-24절
   23절 "그러면 그들이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시므온과 레위 -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다. 약속은 하찮게 여겨서는 안된다.
25절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 무슨 약속이든 지켜야 한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어도 지켜야 한다. 자신의 분이 풀리지 않는 계약이라도 지켜야 한다. 자신이 손해라고 생각되어도 지켜야 한다.
      약속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보여할 믿음의 성품 중에 하는 정직이다.
      정직이 상식이 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야곱 - 자녀들도 아직 믿음안에서 이끌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30절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가 화를 끼쳐"


시므온과 레위 - 아버지 야곱에게 대항하다.
31절 "그들이 이르되 .. 옳으니이까"

* 야곱은 디나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다시금 점검하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자녀들을 믿음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는 결단하고 행동한다.

  창 35:1 "올라가 벧엘로 올라가서 ..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회복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