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막1:4-5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그가 오실 길은 곧게 하는 삶이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이라>
1. 3절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 하고 있는 것처럼,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이란? 주님이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4. 쉽고 정직하게 말하면, 세례 요한은 "기록된 것과 같이"의 삶을 살아갔을 뿐 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5. 세례 요한이 하고 있는 일을 본문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그처럼 똑같이 하면 됩니다.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6.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간 곳이 참으로 재미있는 곳입니다.
7. 4절에 보니 그는 "광야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사람 많은 곳으로 가야 할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8.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생각하기를, 사람 많은 곳으로 가야 뭐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무엇이라 하나 더 얻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9. 그런데, 진정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얻을 수 있을만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10.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진정 세례 요한이 있어야 할 곳이었으며, 또한 우리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11. 광야는 참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한 심령에 말씀이 들어가면 바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12. 그렇지 않고,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어 보십시오. 튕겨 나올 뿐입니다. 나올 뿐 아니라 튕겨 나온 것 때문에 말씀을 나누어 준 사람이 상처 받기 쉽습니다. 물론 이 또한 능히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입니다.
13. 그렇지만 먼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광야"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14.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 각 사람의 심령에 "광야"와 같은 상한 심령,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져 열매 맺을 수 있는 심령의 사람에게 회개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15. 결코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심령입니다.
16. 우리 각자의 마음이 "광야"와 같은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때 비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그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17. 우리가 이처럼 "광야"와 같은 마음을 품기 원한다면, 적극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적 결단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18. 이는 결코 마음의 다짐으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광야"의 마음이 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광야"의 마음을 가리켜 옥토밭이라 말합니다.
19. 우리의 마음의 밭이 "옥토밭"이 되어야 말씀이 쑥쑥 자랄 수 있습니다.
20. 5절 말씀을 보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두 가지의 의지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22. 5절 말씀을 이어서 보면, 이렇습니다.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23. 여기서 우리는 "광야"와 같은 마음, "옥토밭"과 같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의지적 행동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24. 첫번째는, "다 나아가"입니다. 이는 아주 정확하면서 꼭 필요한 행동입니다. 주님께 나아가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5.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한 걸음 더 의지적 행동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법칙입니다.
26. 두번째는, 주님께 나아가서 "자기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27. 우리와 세상 사람들은 똑같은 점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다는 점입니다.
28. 그렇지만 다른 점 또한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는 회개가 있다는 점입니다.
29. 이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전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까지는 똑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겁니다.
30. "자기 죄를 자복하는"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31. 우리가 참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에 가득하기를 원한 것들이 있습니다.
31. 광야 같은 마음이 되시고, 광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적극적 행동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지적 행동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2. 이번주부터 청소년부 친구들과 함께 세례입교식을 준비하면서 세례입교 공부를 2주간에 걸쳐서 하려고 합니다.
33.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광야로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우리 귀한 청소년부 친구들 또한 그러한 강력한 믿음의 고백과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34.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각자 그들의 마음에 찾아가 이 놀라운 세례식의 의미와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강하게 사모합니다. 아멘"
35. "하나님의 부족한 종의 사역가운데, 각 사람의 세례식 가운데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종을 사용하시고, 세례식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 또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기 위한 나아오던 자들과 같은 심령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36. 날마다 우리의 삶이 죄 사함의 세례를 받게 하는 회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의 길을 예비하며, 주님의 외실 길을 곧게 하는 사역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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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세례식에 임하는 자들
1. 세례 요한
2. 세례 요한의 사역들의 과정 -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의 회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초청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암을 기억하자.
3. 세례 받는 자들의 자세 - 광야 같은 마음, 광야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자,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리자.
Thursday, February 28, 2013
Friday, February 22, 2013
김회권 교수의 서재는 ‘놀이터’다.
http://media.godpia.com/mybook/mybook_view.asp?db_idx=67
내 서재는 나를 위한 놀이터
제게 서재는 새벽에 일어나 홀로 차지하는 놀이터입니다. 주로 서재에 혼자 있기 때문에 서재는 절대적으로 사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광장으로 나가는 하나의 관문이 됩니다. 파주에 있는 집 지하실 전체를 서재로 사용하는데 여기서 기도도 하고 말씀도 봅니다. 그렇게 제 놀이터에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 교통합니다. 때로 큰 목소리로 찬양하기도 하는데 반지하라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웃음)
서재를 가득 채운 다양한 분야의 책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일기와 독후감을 쓰며 자랐습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세 살 터울의 형을 따라 시, 희곡, 소설, 철학서적, 역사서적 등을 읽었고요. 그렇게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삶의 단계마다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 책과 작가가 켜켜이 쌓여 지층을 이룹니다.
제 서재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습니다. 백과사전, 고문서, 고대 근동 문서로 시작해 최신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졌습니다. 그 중 신학서적이 가장 많고요. 다음이 성서학, 인문학, 역사, 철학, 문학 서적 등 입니다.
잡지도 많은데 그중에 아내가 좋아하는 <녹색평론(녹색평론사편집부)>이나 <민들레(민들레편집부)>도 있지요. 저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을 돌보고, 위로하고, 돕는 데 필요한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제게 중요한 책이 되지요. 그래서 책을 고를 때도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내가 할 과업의 성격에 맞는 책인가를 먼저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람의 모든 관심사를 추적하며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상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줄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문학, 역사, 과학, 철학 어느 분야이건 추적합니다. 특히 저는 청년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한 번뿐인 인생을 보람차고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의미한 인생의 발자취를 남긴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제게는 중요합니다. 이것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남다른 독서 공간
주로 서재나 소파, 햇빛이 잘 비치는 테라스에서 책을 읽지만, 그 외에 남다른 독서 공간이 두 군데 있습니다. 바로 버스 안 그리고 이불 속입니다. 광역버스는 3번째에서 7번째 줄까지가 진동이 덜합니다. 2,100원짜리 이동식 서재인 셈인데요. (웃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동안 주로 영어만 사용해 모국어에 대한 굶주림과 허기가 심했습니다. 그런 저를 달래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가 다시 산 책이 박경리의「토지」였습니다.
21권 중의 16권을 광역버스 안에서 읽었어요. 또 흔들림이 심한 750원짜리 마을버스를 탈 때는 만화책처럼 글자크기가 큰 책을 읽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손 안에 책만 있으면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가 내릴 정류장을 놓치고 지나간 적도 많습니다. 또 이불 속에서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중에 특히 몰입해 읽었던 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실록 한국기독교백년 (實錄 韓國基督敎百年)」에서 안창호, 조만식 등이 금강산에서 수양하며 남긴 수양회 강의록을 읽으며 눈물을 많이 쏟았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를 하다 보면 동시에 2, 3권의 책을 같이 읽게 됩니다. 생체리듬에 따라 읽는 책의 종류를 달리하는데 정신이 맑을 때는 신학, 경제학, 철학 등의 원서나 논문을 읽습니다. 정신이 약간 느슨해져 지성적 논리를 따라가기 어려울 때는 감미로운 책,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읽습니다.
문자가 주는 유익
저는 영상보다 문자를 선호합니다. 영상으로 보면 졸리는데, 활자로 읽으면 상상력이 만개해 불꽃처럼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책은 상상력을 회화적, 공감각적으로 증폭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자가 주는 유익’이라고 부릅니다. 의미 있게 연결된 문자는 제 뇌와 오감을 총체적으로 격동시킵니다.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거나 동정심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있는 이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가상적인 임재의식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문자는 상상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닥터 지바고>를 영화로 보면, 책 「닥터 지바고」의 감동이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책 속의 내용을 영상언어로 표현해야 해서 빨리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눈으로 읽은 대사는 우리의 뇌수에 박히게 됩니다. 문자 없이 영상만 전달하면 메시지가 모호해지기 쉽지만, 문자가 있으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책이 가장 나은 간접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6권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이 볼 때, 영화가 원작의 감동을 채 10%도 전달하지 못하더라고요.
언어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한 작가와 작품들
영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일랜드 서정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를 보면 영시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존 키이츠(John Keats), 쉘리(Shelley), 바이런(Baron Byron) 같은 낭만주의 영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영어가 영시를 위해 태어난 언어라는 생각이 들고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오셀로>, <리어왕>, <햄릿> 같은 희곡을 읽다 보면 한 번 읽고 지나가기에 아까운 명대사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언어를 어디까지 정제하고 조탁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맛볼 수 있습니다. 현대 영문 작가의 작품으로는 아일랜드 출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특히 추천합니다. 일종의 연작 단편 소설집인데 조이스의 압축적이고 시적인 문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제인 오스틴(Jane Austen) 같은 작가들도 들 수 있겠지요. 저는 19세기 사회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디킨스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인간성을 상실해가던 때에 유머와 익살을 섞은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어려운 시절(Hard Times)」,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예로 들 수 있고요. 주로 어린아이와 노인처럼 연약한 사람들이 주요 인물입니다. 19세기는 산업혁명 직후, 문자를 식별할 수 있는 대중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소설 장르가 꽃을 피웠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사회 소설에는 인간의 사회적 동정심과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1862년에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레미제라블」, 1881년 발표된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The Brothers Karamazov)」,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의 사회 및 역사소설들 「전쟁과 평화(Voina i mir)」, 「부활(Вой наимир)」,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нина)」,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정글」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위대하고, 깊이가 깊은 책들이지요.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대학을 다닌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겁니다.
기독교학과와 신학과를 놓고 고민하는 수험생에게
기독교학과 신학은 차이가 큽니다. 아주 과격하게 단순화하자면, 먼저 신학은 제도권 교회를 옹호하고 발전시키는 학문입니다. 반면 기독교학은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기독교 신앙이 사람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받았는지를 객관화하는 학문입니다. 기독교학은 인간 옹호적인 인문과학입니다. 기독교학은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파장과 기독교 신앙이 형성되는 사회적 맥락을 연구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틀 지우는 세계관, 기독교 신앙이 변화시켜야 할 세속사회의 정신성과 구조 같은 것을 연구합니다. 인간의 신앙주체성과 신앙행복을 옹호하며 교회의 잘못된 부분을 분별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목사님이 설교를 잘해서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신학이라면, 목사님의 설교가 회중들에게 어떻게 호감을 사느냐를 분석하는 것이 기독교학입니다. 즉,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신학의 재인식이 기독교학입니다. 특히 숭실대는 그중에서 인문학적 전통이 매우 강한 학교입니다.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 심리학, 사회학을 공부한 교수들이 기독교학을 가르칩니다. 기독교학과 교수들은 인문학과 신학을 융합시켜 가르치는 종합지성인입니다. 학생들은 신학교에 비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기독교학을 공부한다면 지식의 저변을 확대하며 공부할 수 있어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할 겁니다. 제자 중에는 목회자를 희망하는 학생도 있지만, 크리스천 작가나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도 있습니다. 제약회사나 보험회사, 은행에 취직하기도 하고요. 기독교학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먼저 학과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고 기독교학과 교수의 책을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박정신 교수의 「한국 기독교사 인식」, 「윤치호 일기2」, 이철 교수의 「사회 안에 교회 교회 안에 사회」,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 노트」, 권연경 교수의「로마서 산책」, 제 책「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1」등이 도움될 겁니다.
이 시대의 상처받은 청년을 위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보편적 낙관주의가 필요합니다. 둘째, 특수한 낙관주의가 필요합니다. 셋째, 최악의 상황에도 죽지 말아야 합니다.
보편적 낙관주의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확신입니다. 지금의 20대는 시급 4,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장래와 고용기회가 촘촘하게 사람을 얽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항시 불안한 사건과 상황에 묶어놓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앞과 뒤를 비관적인 전망이 막고 있지만, 이것이 영속적인 질서가 아니고 언젠가 바뀐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일하면, 시간이 흘러 반드시 끝이 옵니다. 부모님의 이혼도, 실연도, 낙방도 언젠가는 끝날 찰나일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원칙의 힘이 작용해 내 불행감을 엷게 희석하고 끝내 극복하게 할겁니다.
특수한 낙관주의는, 내 안에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지금의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압착된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의 조건들이, 반전의 기회이자 반전의 재능, 반전의 원동력이 되어줄 겁니다. 고난이 있어야 그것을 빨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수한 역경과 특수한 고난 가운데 반전의 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독특한 비밀입니다. 시편 84편에 보면 시온으로 올라가는 순례객은 눈물을 쏟은 곳에서 샘물을 발견합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서도 눈물의 자리가 구원의 우물물을 발견하는 기회가 됩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나를 잃고 나라를 잃은 경험이 내 안의 윤동주적 감수성을 발견하게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같은 시를 쓰게 합니다. 에스겔서는 유배 중에 집필되었고, 단테도 유배 중에 그 유명한 「신곡」을 썼던 것처럼 말입니다. 역경이 굉장한 행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상황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우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 신부도 「주여 왜?(Perche Signore?)」라는 책에서 자신은 등산가를 돕는 구조대원이 되고 싶었지만,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괜찮습니다. 청년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시험 떨어지고, 실연당하고. 소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사흘 동안 매장당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묻히면 묻히리라, 찌르면 찔리고, 죽이면 죽임을 당하겠다는 강한 정신입니다. 쓰디쓴 실패, 좌절과 공존할 줄 알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강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모건 스콧 팩(Morgan Scott Peck)은 하버드 대학 입학이 보장되는 학교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3에 자퇴합니다. 그 일 때문에, 온 세상은 항상 흔들리고 불확실하므로 이 세상의 유일한 안정감은 ‘내가 언제나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안정 대신 동요와 불안이 있을 뿐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른 스콧 펙은 ‘심층 심리학적 교란’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서진 자, 흔들리는 자, 진동을 경험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갈대 같은 자에 대한 동정심은 이 자퇴생이 정신과 의사가 되도록 이끕니다.
밝은 곳에서 계속 박수받는 사람은 성공은 하나 얕은 사람에 그칩니다. 삼수 하다 떨어져 골방에 박힌 사람은 윤동주도,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도 될 수 있습니다. 낙방하고, 부르는 곳이 없는 사람도 책만 500여 권 넘게 읽고 나면 대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대결의식이 필요합니다. 시험에 안 떨어질 것처럼, 안 떨어진 자가 되기를 열망하면서 초조해하지 마세요. 정신적인 소시민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적 대범인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에는 무수한 반전의 찬스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실패를 절대화시키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비참함과 우울증을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는 다시 떠오르고, 반드시 반전의 기회는 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세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희년운동
저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성경과 제가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써의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질 성령 공동체, 고도로 민중자치적인 공동체, 대항사회, 대조사회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전, 정통 기독교에서는 사도들과 속사도 교부(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교회를 가르친 교사)들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애썼습니다. 우리의 과업은 정통 기독교의 원류로 돌아가서 초대 기독교의 열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배당이 아니라 주중 6일, 사람들이 모이는 을지로, 충무로, 테헤란로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무게 중심이 사후로 옮겨가 수세적인 기독교, 교회로 후퇴한 기독교, 교회가 신앙의 중심이 되어버린 기독교로 변질하였습니다. 희년운동은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메타포이자 패러다임입니다.
저는 ‘성경적 토지 정의 모임’, ‘희년함께’ 등에서 신학전문위원으로 활동합니다. 모두 토지가 하나님 것이라는 근본 사상을 바탕으로 합니다. 즉, 주거권, 주택권, 토지로부터 나온 소출의 향유권이 보장되는 것이 희년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인 토지에서 나온 산물로부터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태생부터 토지에서 나온 산물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주는 경제체제가 이 땅에 들어서야 합니다. 동시에 부동산 투기, 부당한 자산 불리기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대신 노동의욕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모종의 자존심과 인권을 고취할 수 있는 일거리 또는 이에 준하는 것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희년운동입니다. 희년운동은 사유재산을 박탈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희년선포는 하나님 은총이 인간의 탐욕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은총의 힘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것을 나누는 겁니다. 복음의 나팔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의 것도, 무조건 빼앗아 평등하게 하겠다는 좌파와는 다릅니다. 희년운동에는 재물 나눔, 재산 나눔, 재능 나눔, 시간 나눔 등이 있고, 저 역시 제 재능이 특권의 빙거(憑據)가 되지 않도록 나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구원의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이 먼저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나팔소리가 크게 퍼질수록 자발적 나눔이 늘어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총량이 늘어납니다. 이것이 이어지면 희년사회가 실현될 것이고, 착한 정치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통치 안에 복속시킬 사람은 증오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북받친 사람입니다.
여러분께 선물하고 싶은 책
가까운 사이에 책을 추천할 때 저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 추천하고는 합니다. 먼저 목회자 후보생들과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 있는 모든 교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제 책「목회자 후보생들에게」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 신학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 2장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서 얼마나 위력적인 기관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큰 영적 부피와 질량을 가지고 힘있게 세상을 격동시킬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반 청년 교우들이 읽어도, 예수님이 말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갖고 계신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있어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인터뷰를 거의 안 하는데 책의 부록에 제 신앙편력, 결혼생활, 독서생활 등에 대한 자전적인 내용도 담았습니다.
내면 지향성, 영성이 필요한 목회자에게는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책「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권합니다. 사회과학적 인식에 부족함을 느끼는 목회자는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같이 거시적 사회 변동이 담긴 책을 추천합니다. 이 경우에, 신앙 성공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역동 관계를 규명한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읽는 것이 탄탄한 설교에 도움이 될 겁니다. 남 교우들은 교회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2000년 교회사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을 알려면 교회사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이만열 교수님, 박용규 교수님의 역사책을 추천합니다. 여 교우들은 경건 서적보다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논리적인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등을 읽기 바랍니다. 또 본인들의 소비행위, 살림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어떤 맥락 속에서 만나는지 알 수 있는 책, 사회의식에 눈뜰 수 있는 책을 봤으면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나를 따르라(Following Jesus)」나 존 F. 캐버너(John F. Kavanaugh) 신부가 쓴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칼 헨리(Carl Henry)의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같은 책을 추천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왜 사회적으로 표현되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노동조합과 공산당보다 세상의 문제 해결에 왜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또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지향성이 뚜렷한 메시지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 개인적인 고백과 달리 사회경제적으로 주님의 정의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특히 TV와 영상문화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존 F. 캐버너(John F. Kavanaugh)의「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적극 추천합니다. 청년들은 칼 헨리(HENRY, Carl F. H.)의「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도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비전과 기도 제목
제 비전은 한국 대다수 교회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한국교회의 보편과 상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가는 수세적인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속 사도교부들이 기독교 공인 이전까지 가졌던 신앙, 패기에 찬 공세적인 기독교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힘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북한을 무장해제시키고, 거룩한 흡수통일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은 첫째로, 제가 신행일치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음을 듣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도 부지런히 엎드리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신은정 작가
- 사진: 유재호 작가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내 서재는 나를 위한 놀이터
제게 서재는 새벽에 일어나 홀로 차지하는 놀이터입니다. 주로 서재에 혼자 있기 때문에 서재는 절대적으로 사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광장으로 나가는 하나의 관문이 됩니다. 파주에 있는 집 지하실 전체를 서재로 사용하는데 여기서 기도도 하고 말씀도 봅니다. 그렇게 제 놀이터에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 교통합니다. 때로 큰 목소리로 찬양하기도 하는데 반지하라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웃음)
서재를 가득 채운 다양한 분야의 책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일기와 독후감을 쓰며 자랐습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세 살 터울의 형을 따라 시, 희곡, 소설, 철학서적, 역사서적 등을 읽었고요. 그렇게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삶의 단계마다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 책과 작가가 켜켜이 쌓여 지층을 이룹니다.
제 서재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습니다. 백과사전, 고문서, 고대 근동 문서로 시작해 최신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졌습니다. 그 중 신학서적이 가장 많고요. 다음이 성서학, 인문학, 역사, 철학, 문학 서적 등 입니다.
잡지도 많은데 그중에 아내가 좋아하는 <녹색평론(녹색평론사편집부)>이나 <민들레(민들레편집부)>도 있지요. 저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을 돌보고, 위로하고, 돕는 데 필요한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제게 중요한 책이 되지요. 그래서 책을 고를 때도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내가 할 과업의 성격에 맞는 책인가를 먼저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람의 모든 관심사를 추적하며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상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줄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문학, 역사, 과학, 철학 어느 분야이건 추적합니다. 특히 저는 청년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한 번뿐인 인생을 보람차고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의미한 인생의 발자취를 남긴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제게는 중요합니다. 이것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남다른 독서 공간
주로 서재나 소파, 햇빛이 잘 비치는 테라스에서 책을 읽지만, 그 외에 남다른 독서 공간이 두 군데 있습니다. 바로 버스 안 그리고 이불 속입니다. 광역버스는 3번째에서 7번째 줄까지가 진동이 덜합니다. 2,100원짜리 이동식 서재인 셈인데요. (웃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동안 주로 영어만 사용해 모국어에 대한 굶주림과 허기가 심했습니다. 그런 저를 달래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가 다시 산 책이 박경리의「토지」였습니다.
21권 중의 16권을 광역버스 안에서 읽었어요. 또 흔들림이 심한 750원짜리 마을버스를 탈 때는 만화책처럼 글자크기가 큰 책을 읽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손 안에 책만 있으면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그렇게 몰입해서 읽다가 내릴 정류장을 놓치고 지나간 적도 많습니다. 또 이불 속에서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중에 특히 몰입해 읽었던 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실록 한국기독교백년 (實錄 韓國基督敎百年)」에서 안창호, 조만식 등이 금강산에서 수양하며 남긴 수양회 강의록을 읽으며 눈물을 많이 쏟았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를 하다 보면 동시에 2, 3권의 책을 같이 읽게 됩니다. 생체리듬에 따라 읽는 책의 종류를 달리하는데 정신이 맑을 때는 신학, 경제학, 철학 등의 원서나 논문을 읽습니다. 정신이 약간 느슨해져 지성적 논리를 따라가기 어려울 때는 감미로운 책,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읽습니다.
문자가 주는 유익
저는 영상보다 문자를 선호합니다. 영상으로 보면 졸리는데, 활자로 읽으면 상상력이 만개해 불꽃처럼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책은 상상력을 회화적, 공감각적으로 증폭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자가 주는 유익’이라고 부릅니다. 의미 있게 연결된 문자는 제 뇌와 오감을 총체적으로 격동시킵니다.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거나 동정심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있는 이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가상적인 임재의식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문자는 상상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닥터 지바고>를 영화로 보면, 책 「닥터 지바고」의 감동이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책 속의 내용을 영상언어로 표현해야 해서 빨리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눈으로 읽은 대사는 우리의 뇌수에 박히게 됩니다. 문자 없이 영상만 전달하면 메시지가 모호해지기 쉽지만, 문자가 있으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책이 가장 나은 간접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6권의 책을 다 읽은 사람이 볼 때, 영화가 원작의 감동을 채 10%도 전달하지 못하더라고요.
언어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한 작가와 작품들
영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일랜드 서정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를 보면 영시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존 키이츠(John Keats), 쉘리(Shelley), 바이런(Baron Byron) 같은 낭만주의 영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영어가 영시를 위해 태어난 언어라는 생각이 들고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오셀로>, <리어왕>, <햄릿> 같은 희곡을 읽다 보면 한 번 읽고 지나가기에 아까운 명대사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언어를 어디까지 정제하고 조탁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맛볼 수 있습니다. 현대 영문 작가의 작품으로는 아일랜드 출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특히 추천합니다. 일종의 연작 단편 소설집인데 조이스의 압축적이고 시적인 문체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제인 오스틴(Jane Austen) 같은 작가들도 들 수 있겠지요. 저는 19세기 사회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디킨스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인간성을 상실해가던 때에 유머와 익살을 섞은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어려운 시절(Hard Times)」,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예로 들 수 있고요. 주로 어린아이와 노인처럼 연약한 사람들이 주요 인물입니다. 19세기는 산업혁명 직후, 문자를 식별할 수 있는 대중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소설 장르가 꽃을 피웠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사회 소설에는 인간의 사회적 동정심과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1862년에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레미제라블」, 1881년 발표된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The Brothers Karamazov)」,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의 사회 및 역사소설들 「전쟁과 평화(Voina i mir)」, 「부활(Вой наимир)」,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нина)」,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정글」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위대하고, 깊이가 깊은 책들이지요.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대학을 다닌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겁니다.
기독교학과와 신학과를 놓고 고민하는 수험생에게
기독교학과 신학은 차이가 큽니다. 아주 과격하게 단순화하자면, 먼저 신학은 제도권 교회를 옹호하고 발전시키는 학문입니다. 반면 기독교학은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기독교 신앙이 사람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받았는지를 객관화하는 학문입니다. 기독교학은 인간 옹호적인 인문과학입니다. 기독교학은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파장과 기독교 신앙이 형성되는 사회적 맥락을 연구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틀 지우는 세계관, 기독교 신앙이 변화시켜야 할 세속사회의 정신성과 구조 같은 것을 연구합니다. 인간의 신앙주체성과 신앙행복을 옹호하며 교회의 잘못된 부분을 분별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목사님이 설교를 잘해서 성도 수를 늘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신학이라면, 목사님의 설교가 회중들에게 어떻게 호감을 사느냐를 분석하는 것이 기독교학입니다. 즉,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신학의 재인식이 기독교학입니다. 특히 숭실대는 그중에서 인문학적 전통이 매우 강한 학교입니다.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 심리학, 사회학을 공부한 교수들이 기독교학을 가르칩니다. 기독교학과 교수들은 인문학과 신학을 융합시켜 가르치는 종합지성인입니다. 학생들은 신학교에 비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기독교학을 공부한다면 지식의 저변을 확대하며 공부할 수 있어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할 겁니다. 제자 중에는 목회자를 희망하는 학생도 있지만, 크리스천 작가나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도 있습니다. 제약회사나 보험회사, 은행에 취직하기도 하고요. 기독교학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먼저 학과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고 기독교학과 교수의 책을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박정신 교수의 「한국 기독교사 인식」, 「윤치호 일기2」, 이철 교수의 「사회 안에 교회 교회 안에 사회」,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 노트」, 권연경 교수의「로마서 산책」, 제 책「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1」등이 도움될 겁니다.
이 시대의 상처받은 청년을 위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보편적 낙관주의가 필요합니다. 둘째, 특수한 낙관주의가 필요합니다. 셋째, 최악의 상황에도 죽지 말아야 합니다.
보편적 낙관주의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확신입니다. 지금의 20대는 시급 4,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장래와 고용기회가 촘촘하게 사람을 얽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항시 불안한 사건과 상황에 묶어놓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앞과 뒤를 비관적인 전망이 막고 있지만, 이것이 영속적인 질서가 아니고 언젠가 바뀐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일하면, 시간이 흘러 반드시 끝이 옵니다. 부모님의 이혼도, 실연도, 낙방도 언젠가는 끝날 찰나일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원칙의 힘이 작용해 내 불행감을 엷게 희석하고 끝내 극복하게 할겁니다.
특수한 낙관주의는, 내 안에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지금의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압착된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의 조건들이, 반전의 기회이자 반전의 재능, 반전의 원동력이 되어줄 겁니다. 고난이 있어야 그것을 빨리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수한 역경과 특수한 고난 가운데 반전의 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독특한 비밀입니다. 시편 84편에 보면 시온으로 올라가는 순례객은 눈물을 쏟은 곳에서 샘물을 발견합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서도 눈물의 자리가 구원의 우물물을 발견하는 기회가 됩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나를 잃고 나라를 잃은 경험이 내 안의 윤동주적 감수성을 발견하게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같은 시를 쓰게 합니다. 에스겔서는 유배 중에 집필되었고, 단테도 유배 중에 그 유명한 「신곡」을 썼던 것처럼 말입니다. 역경이 굉장한 행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상황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우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 신부도 「주여 왜?(Perche Signore?)」라는 책에서 자신은 등산가를 돕는 구조대원이 되고 싶었지만,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괜찮습니다. 청년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시험 떨어지고, 실연당하고. 소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사흘 동안 매장당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묻히면 묻히리라, 찌르면 찔리고, 죽이면 죽임을 당하겠다는 강한 정신입니다. 쓰디쓴 실패, 좌절과 공존할 줄 알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강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모건 스콧 팩(Morgan Scott Peck)은 하버드 대학 입학이 보장되는 학교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3에 자퇴합니다. 그 일 때문에, 온 세상은 항상 흔들리고 불확실하므로 이 세상의 유일한 안정감은 ‘내가 언제나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안정 대신 동요와 불안이 있을 뿐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른 스콧 펙은 ‘심층 심리학적 교란’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서진 자, 흔들리는 자, 진동을 경험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갈대 같은 자에 대한 동정심은 이 자퇴생이 정신과 의사가 되도록 이끕니다.
밝은 곳에서 계속 박수받는 사람은 성공은 하나 얕은 사람에 그칩니다. 삼수 하다 떨어져 골방에 박힌 사람은 윤동주도,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도 될 수 있습니다. 낙방하고, 부르는 곳이 없는 사람도 책만 500여 권 넘게 읽고 나면 대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대결의식이 필요합니다. 시험에 안 떨어질 것처럼, 안 떨어진 자가 되기를 열망하면서 초조해하지 마세요. 정신적인 소시민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적 대범인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에는 무수한 반전의 찬스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실패를 절대화시키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비참함과 우울증을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는 다시 떠오르고, 반드시 반전의 기회는 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세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희년운동
저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성경과 제가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써의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질 성령 공동체, 고도로 민중자치적인 공동체, 대항사회, 대조사회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전, 정통 기독교에서는 사도들과 속사도 교부(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교회를 가르친 교사)들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애썼습니다. 우리의 과업은 정통 기독교의 원류로 돌아가서 초대 기독교의 열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배당이 아니라 주중 6일, 사람들이 모이는 을지로, 충무로, 테헤란로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무게 중심이 사후로 옮겨가 수세적인 기독교, 교회로 후퇴한 기독교, 교회가 신앙의 중심이 되어버린 기독교로 변질하였습니다. 희년운동은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메타포이자 패러다임입니다.
저는 ‘성경적 토지 정의 모임’, ‘희년함께’ 등에서 신학전문위원으로 활동합니다. 모두 토지가 하나님 것이라는 근본 사상을 바탕으로 합니다. 즉, 주거권, 주택권, 토지로부터 나온 소출의 향유권이 보장되는 것이 희년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인 토지에서 나온 산물로부터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태생부터 토지에서 나온 산물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존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주는 경제체제가 이 땅에 들어서야 합니다. 동시에 부동산 투기, 부당한 자산 불리기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대신 노동의욕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모종의 자존심과 인권을 고취할 수 있는 일거리 또는 이에 준하는 것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희년운동입니다. 희년운동은 사유재산을 박탈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희년선포는 하나님 은총이 인간의 탐욕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은총의 힘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것을 나누는 겁니다. 복음의 나팔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의 것도, 무조건 빼앗아 평등하게 하겠다는 좌파와는 다릅니다. 희년운동에는 재물 나눔, 재산 나눔, 재능 나눔, 시간 나눔 등이 있고, 저 역시 제 재능이 특권의 빙거(憑據)가 되지 않도록 나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구원의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이 먼저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나팔소리가 크게 퍼질수록 자발적 나눔이 늘어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총량이 늘어납니다. 이것이 이어지면 희년사회가 실현될 것이고, 착한 정치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 세상을 주님의 통치 안에 복속시킬 사람은 증오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북받친 사람입니다.
여러분께 선물하고 싶은 책
가까운 사이에 책을 추천할 때 저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 추천하고는 합니다. 먼저 목회자 후보생들과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 있는 모든 교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제 책「목회자 후보생들에게」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 신학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 2장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서 얼마나 위력적인 기관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큰 영적 부피와 질량을 가지고 힘있게 세상을 격동시킬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반 청년 교우들이 읽어도, 예수님이 말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갖고 계신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있어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인터뷰를 거의 안 하는데 책의 부록에 제 신앙편력, 결혼생활, 독서생활 등에 대한 자전적인 내용도 담았습니다.
내면 지향성, 영성이 필요한 목회자에게는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책「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권합니다. 사회과학적 인식에 부족함을 느끼는 목회자는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같이 거시적 사회 변동이 담긴 책을 추천합니다. 이 경우에, 신앙 성공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역동 관계를 규명한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읽는 것이 탄탄한 설교에 도움이 될 겁니다. 남 교우들은 교회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2000년 교회사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상을 알려면 교회사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이만열 교수님, 박용규 교수님의 역사책을 추천합니다. 여 교우들은 경건 서적보다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논리적인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등을 읽기 바랍니다. 또 본인들의 소비행위, 살림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어떤 맥락 속에서 만나는지 알 수 있는 책, 사회의식에 눈뜰 수 있는 책을 봤으면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나를 따르라(Following Jesus)」나 존 F. 캐버너(John F. Kavanaugh) 신부가 쓴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칼 헨리(Carl Henry)의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같은 책을 추천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왜 사회적으로 표현되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노동조합과 공산당보다 세상의 문제 해결에 왜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또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지향성이 뚜렷한 메시지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 개인적인 고백과 달리 사회경제적으로 주님의 정의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특히 TV와 영상문화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존 F. 캐버너(John F. Kavanaugh)의「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적극 추천합니다. 청년들은 칼 헨리(HENRY, Carl F. H.)의「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도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비전과 기도 제목
제 비전은 한국 대다수 교회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한국교회의 보편과 상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가는 수세적인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속 사도교부들이 기독교 공인 이전까지 가졌던 신앙, 패기에 찬 공세적인 기독교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힘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북한을 무장해제시키고, 거룩한 흡수통일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은 첫째로, 제가 신행일치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음을 듣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도 부지런히 엎드리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신은정 작가
- 사진: 유재호 작가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
Thursday, February 21, 2013
한 날 묵상 - 막 1:2-3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한 날 묵상 - 막 1:2-3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 지난 주 누가복음 묵상중에,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적어 보았다.
2. 눅 7장 24-29절을 보면서, 나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본다(나의 정체성,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
난 광야에 나간 사람인가? 그렇다.
그럼 그곳에서 무엇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가? 부드럽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기 원한다면, 왕궁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화려한이 아니라, 세련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길을 준비함에 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남겨두셨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삶으로가 아니라,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두셨다. 그곳이 내가 오늘 서 있어야하는 나의 자리이다.
3. 이러한 묵상은 마가복음 1장 1절 묵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http://saltandlight21.blogspot.ca/2013/02/11.html
4. 여기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세례요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여러 공통점이 발견될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할 때, 분명 하나님은 이 땅에 각 사람을 보내면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5.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 복음은 완벽히 완성하셨다.
6. 세례 요한은 이 땅에 두 가지 사명을 위해 왔다. 3절 말씀이다. 첫 번째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둘째는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7. 마가복음 1장 1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이라"는 절대적 진리로 시작되면서, 바로 이어지는 2절에서는 그 귀한 사역을 위해 한 사람을 보냈으니, 바로 세례 요한이요, 세례 요한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8. 복음와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건데, 복음은 인간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주어졌을 뿐 아니라, 이 복음이 인간들에게 확장되는 일에 또한 부름을 받은 자들임을 마가복음 1장 1절과 2-3절은 분명히 하고 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사통팔달로 전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야 할 길을 철저히 준비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인간들의 마음을 곧게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며 사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다.
10. 특별히 두 번째가 복음을 위해서 남겨진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복음이 각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우리는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부르심을 입은자들이기 때문이다.
11. 나는 지금 어떠한 사명으로 부르심을 입었는가? 또한 나는 지금 그 사명의 길 위에 바로 서 있는가?
12.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아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3. 마가복음 16장 20절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14. 복음을 위해 오신 예수님, 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 이게 바로 마가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다.
15. 우리는 지금 이 시대 복음을 위해 남겨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만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전부여야 합니다.
16. 다른 그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결코 안됩니다.
17.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지금 우리는 이 땅에 가운데 존재하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18.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9. 오늘도 주의 길을 예배하며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일에 순종하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 아멘.
1. 지난 주 누가복음 묵상중에,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적어 보았다.
2. 눅 7장 24-29절을 보면서, 나의 위치를 다시 확인해본다(나의 정체성,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
난 광야에 나간 사람인가? 그렇다.
그럼 그곳에서 무엇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가? 부드럽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기 원한다면, 왕궁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됨은, 화려한이 아니라, 세련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길을 준비함에 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남겨두셨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삶으로가 아니라,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두셨다. 그곳이 내가 오늘 서 있어야하는 나의 자리이다.
3. 이러한 묵상은 마가복음 1장 1절 묵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http://saltandlight21.blogspot.ca/2013/02/11.html
4. 여기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세례요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여러 공통점이 발견될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할 때, 분명 하나님은 이 땅에 각 사람을 보내면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5.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오셨다. 그리고 그 복음은 완벽히 완성하셨다.
6. 세례 요한은 이 땅에 두 가지 사명을 위해 왔다. 3절 말씀이다. 첫 번째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둘째는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7. 마가복음 1장 1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이라"는 절대적 진리로 시작되면서, 바로 이어지는 2절에서는 그 귀한 사역을 위해 한 사람을 보냈으니, 바로 세례 요한이요, 세례 요한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8. 복음와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건데, 복음은 인간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주어졌을 뿐 아니라, 이 복음이 인간들에게 확장되는 일에 또한 부름을 받은 자들임을 마가복음 1장 1절과 2-3절은 분명히 하고 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장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사통팔달로 전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야 할 길을 철저히 준비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인간들의 마음을 곧게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며 사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다.
10. 특별히 두 번째가 복음을 위해서 남겨진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복음이 각 사람들에게 잘 스며들도록 우리는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부르심을 입은자들이기 때문이다.
11. 나는 지금 어떠한 사명으로 부르심을 입었는가? 또한 나는 지금 그 사명의 길 위에 바로 서 있는가?
12.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아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3. 마가복음 16장 20절을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14. 복음을 위해 오신 예수님, 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 이게 바로 마가복음의 핵심 메시지이다.
15. 우리는 지금 이 시대 복음을 위해 남겨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만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전부여야 합니다.
16. 다른 그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결코 안됩니다.
17.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지금 우리는 이 땅에 가운데 존재하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18.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9. 오늘도 주의 길을 예배하며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일에 순종하는 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 아멘.
Tuesday, February 19, 2013
소그룹 네트워크 - 364호 - 좋은 질문들로 경청하십시오!(국제제자훈련원)
좋은 질문들로 경청하십시오!
소그룹을 인도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경청입니다. Robert L. Montgomery는 경청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위 경청의 특징 중 질문과 관련된 것이 두 개나 됩니다. 이 말은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곧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질문을 통해 효과적인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 을뿐더러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소그룹을 인도하다 보면 모두가 긴 대화를 나눌 만큼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인도자가 적절한 때에 자연스럽게 영적인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질문들을 통해 대화의 주제를 영적인 문제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무엇인가요?” 또한, 배경, 감정, 태도, 관심, 궁금증과 필요 등의 질문을 통해 사람들은 대화 주제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험들을 분류하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인도자 역시 중요한 사실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육하원칙을 이용하여 좋을 질문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Doug Self의 “Good Questions Show Good Listening”(SmallGroups.com)을 번역 및 각색한 것입니다 |
Saturday, February 16, 2013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한 날 묵상 - 막 1:1 <복음의시작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시작과 끝 또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 나의 존재, 정체성이란? 나를 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2. 복음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인간의 삶의 윤택이나 편안함을 위해서 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3.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절은 단호하게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4.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의 시작 또한 복음입니다.
5. 우리는 지금 복음앞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6. 오직 복음뿐입니다. 마가복음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 자체로 복음입니다.
7. 말씀을 읽고 깨달는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 뿐입니다. 말씀을 읽고 깨닫고 듣는 일에 있어서 복음을 제대로 깨닫는 것외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8. 나의 삶과 정체성, 가치관에 복음만이 있기를 원한다.
9. 복음의 향기의 나의 삶과 흔적 곳곳에 무더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0. 왜 이리 어렵고 힘들까? 나를 아직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11.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시다. 예수님의 복음이 시작되기 위해서 이 둘을 다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함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성을 버리시고, 포기하시고 인성으로 오셔야 피로서 복음이 시작된다.
12. 복음이 나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 나의 옛 자아가 죽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3. 옛자아를 죽이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헌신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음의 글에서 "죄 죽이기 실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mokyang1016/54
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5. 복음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포함합니다.
16. 진정 복음이 나의 삶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시작과 끝이길 원합니다.
17. 마가복음은 시작을 복음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8. 내가 인생에서 써내려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이 복음의 이야기로 가득차기를 원합니다.
19. 오직 복음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그 은혜만을 간구합니다.
20.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참고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pp67-72.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 나의 존재, 정체성이란? 나를 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2. 복음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인간의 삶의 윤택이나 편안함을 위해서 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3.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절은 단호하게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4.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의 시작 또한 복음입니다.
5. 우리는 지금 복음앞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6. 오직 복음뿐입니다. 마가복음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 자체로 복음입니다.
7. 말씀을 읽고 깨달는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 뿐입니다. 말씀을 읽고 깨닫고 듣는 일에 있어서 복음을 제대로 깨닫는 것외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8. 나의 삶과 정체성, 가치관에 복음만이 있기를 원한다.
9. 복음의 향기의 나의 삶과 흔적 곳곳에 무더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0. 왜 이리 어렵고 힘들까? 나를 아직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11.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시다. 예수님의 복음이 시작되기 위해서 이 둘을 다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함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성을 버리시고, 포기하시고 인성으로 오셔야 피로서 복음이 시작된다.
12. 복음이 나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 나의 옛 자아가 죽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3. 옛자아를 죽이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헌신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음의 글에서 "죄 죽이기 실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mokyang1016/54
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5. 복음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포함합니다.
16. 진정 복음이 나의 삶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하기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 복음이 우리 모두의 시작과 끝이길 원합니다.
17. 마가복음은 시작을 복음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8. 내가 인생에서 써내려가는 인생의 이야기가 이 복음의 이야기로 가득차기를 원합니다.
19. 오직 복음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그 은혜만을 간구합니다.
20.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참고
열방에 빛을, 마이클 고힌
pp67-72.
[월드뷰 2월호 웹진 No.2] 생명의 무게 - 성경적 세계관으로 의료선교 바라보기, "I am the Lord, who heals you"
김민철 교수님 기독교 세계관
"성경적 세계관으로 의료선교 바라보기"
http://cworldview.blog.me/30159335027
이정수 교수님
"I am the Lord, who heals you"
http://cworldview.blog.me/30159335027
Saturday, February 9, 2013
한 날 묵상 - 2013년 마가복음 묵상 어떻게 해 볼 것인가?
마가복음 9장 14-29절 "기도와 예수"(부제:3無3有)를 제목잡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 줄 설교를 적어보았습니다.
"요즘 우리의 모습은 꿈도 없有으면서 믿음도 없有고 기도도 안有한다. 그럼 어떻게? 흔들有리지 말고 신뢰有함으로 엎드有리라."
마가복음을 전체를 이렇게 묵상해 보자.
"요즘 우리의 모습은 꿈도 없有으면서 믿음도 없有고 기도도 안有한다. 그럼 어떻게? 흔들有리지 말고 신뢰有함으로 엎드有리라."
마가복음을 전체를 이렇게 묵상해 보자.
Chapter 1. 꿈이 없는 세대(씨뿌리는 비유. 4가지 비유)
- 꿈이 없거나
- 꿈이 있었는데 현실앞에 사그라 들었거나
- How1 이길 것인가? 꿈이여 흔들리지 말라.
Chaptehr 2. 꿈이 없는 세대는 믿음이 없는 세대이다.
- 무엇을 믿고 있는가?
- 예수님의 책망을 들으라.
- 예수님의 책망은 끊없는 그 분의 사랑의 표현이다.
- How2 이길 것인가?꿈을 주신 그 분을 신뢰하라.
Chapter 3. 믿음이 없는 세대는 기도하지 않는 세대이다.
- 기도는 얼만큼?
-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 기도하는데도 믿음이 없다고요?
- 제대로 기도해 보세요.
- How3 이길 것인가? 엎드리라(겸손과 기도)
Chapter 4. 기도와 예수
- 예수님의 이루신 사역을 보라.
(마가복음 전체 스토리를 써보라)
- 불가능한 꿈을 꾸셨다
(십자가의 길 순레자의 길)
- 수많은 현실앞에 있어지만 무너지지 않고 뚫고 나갔다.
(넘어지지 않았다. 바리새인, 서기관)
-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통해서 이 땅 가운데 우리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Thursday, February 7, 2013
레미제라블: 뮤지컬 25주년 특별공연 다시 보기
레미제라블 : 뮤지컬 25주년 특별공연 다시보기 1막 전체
http://blog.naver.com/ehreh752/90161049101
레미제라블 : 뮤지컬 25주년 특별공연 다시 보기 2막 전체
http://blog.naver.com/ehreh752/90161049101
http://blog.naver.com/ehreh752/90161049101
레미제라블 : 뮤지컬 25주년 특별공연 다시 보기 2막 전체
http://blog.naver.com/ehreh752/90161049101
한 날 묵상 - 마가복음을 시작하며 "기도와 예수"
1. 2013년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참으로 빠른 시간입니다.
2. 올 한해 한 날 묵상을 해야 할 말씀 본문을 적어보았고, 첫 순서로 마가복음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첫 글을 쓰게 됩니다.
3. 이렇게 늦게 된 이후의 핑계를 되자면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난 후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야 다 읽었습니다.
4. 그럼 왜 이렇게 한 달이나 걸렸는냐? 라고 물을 수 있는데 맥케인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읽다 보니 좀 늦어졌씁니다. 그렇지만 맥케인 일정보다는 좀 빠르게 읽고 마가복음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5. 사실 마가복음을 한 번 다 읽지 않아서 충분히 말씀 묵상을 나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은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 게으름이란 영적 성숙에 큰 걸림돌 중에 하나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병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은 영적인 것이서 영적으로 출발해서 삶의 곳곳에 영적인 교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7. 그런데 게으름이란 육체적 이기심이 자꾸 영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꾼이 됩니다.
8. 게으름은 영적인 만남을 위한 장애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숙하며 성장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아주 큰 방해입니다.
9. 게으름에 저버리는 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10. 그런데 게으름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좋은 방법은 역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면 자연히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11.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신 말씀처럼 게으른 상태에 놓이 자를 가리켜 죄의 자리에 있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12. 결국 말씀을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게으름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지런한 자가 될 수 밖에 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위력이 아닐까 합니다.
13. 오늘 이렇게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합니다.
14. 먼저 왜 이렇게 늦어진지에 대한 나눔을 통해 게으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15. 여기서 잠깐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읽으면서 느낀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6.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느낀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모습이 눈에 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8:21),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9:19)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7. 책망이나 혼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왜 이게 잘못이 아닌가 하면, 바로 제자들을 훈련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8. 정말 우리가 자녀들을 훈련하며, 교사가 되어, 목사가 되어, 순장이 되어 다른 사람을 훈련할 때 때론 책망이나 혼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이다.
19.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훈련을 위한 서로의 관계가 예수님과 제자처럼 친밀하느냐입니다. 서로가 친밀함속에서 교육생과 피교육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친밀함 없이 훈련만을 위한 책망과 혼냄이 있다면 이 훈련은 제대로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에서 배우는 훈련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1.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과 바른 지속적 관계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22. "기도와 예수"
23. 예수님에게 기도는 꼭 필요했습니다.
24.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충만히 채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적인 이 세상의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서도, 나아가 그가 완성해야 할 사명, 십자가 사역을 위해서도 그에게 꼭 기도는 필요했습니다.
25.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26. 오늘 시작되는 마가복음 한 날 묵상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27. 그리고 굳모닝과 함께 Let' go!
2. 올 한해 한 날 묵상을 해야 할 말씀 본문을 적어보았고, 첫 순서로 마가복음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첫 글을 쓰게 됩니다.
3. 이렇게 늦게 된 이후의 핑계를 되자면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난 후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야 다 읽었습니다.
4. 그럼 왜 이렇게 한 달이나 걸렸는냐? 라고 물을 수 있는데 맥케인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읽다 보니 좀 늦어졌씁니다. 그렇지만 맥케인 일정보다는 좀 빠르게 읽고 마가복음을 다 읽게 되었습니다.
5. 사실 마가복음을 한 번 다 읽지 않아서 충분히 말씀 묵상을 나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은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 게으름이란 영적 성숙에 큰 걸림돌 중에 하나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병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은 영적인 것이서 영적으로 출발해서 삶의 곳곳에 영적인 교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7. 그런데 게으름이란 육체적 이기심이 자꾸 영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꾼이 됩니다.
8. 게으름은 영적인 만남을 위한 장애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숙하며 성장하며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아주 큰 방해입니다.
9. 게으름에 저버리는 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10. 그런데 게으름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좋은 방법은 역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면 자연히 자신을 정직하게 보게 됩니다.
11.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신 말씀처럼 게으른 상태에 놓이 자를 가리켜 죄의 자리에 있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12. 결국 말씀을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게으름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지런한 자가 될 수 밖에 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위력이 아닐까 합니다.
13. 오늘 이렇게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합니다.
14. 먼저 왜 이렇게 늦어진지에 대한 나눔을 통해 게으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15. 여기서 잠깐 먼저 마가복음 전체를 읽으면서 느낀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6.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느낀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내는 모습이 눈에 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8:21),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9:19)등 여러 곳에서 제자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7. 책망이나 혼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왜 이게 잘못이 아닌가 하면, 바로 제자들을 훈련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8. 정말 우리가 자녀들을 훈련하며, 교사가 되어, 목사가 되어, 순장이 되어 다른 사람을 훈련할 때 때론 책망이나 혼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이다.
19.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훈련을 위한 서로의 관계가 예수님과 제자처럼 친밀하느냐입니다. 서로가 친밀함속에서 교육생과 피교육생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친밀함 없이 훈련만을 위한 책망과 혼냄이 있다면 이 훈련은 제대로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에서 배우는 훈련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1. 믿음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과 바른 지속적 관계를 위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22. "기도와 예수"
23. 예수님에게 기도는 꼭 필요했습니다.
24.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충만히 채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인간적인 이 세상의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서도, 나아가 그가 완성해야 할 사명, 십자가 사역을 위해서도 그에게 꼭 기도는 필요했습니다.
25.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26. 오늘 시작되는 마가복음 한 날 묵상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27. 그리고 굳모닝과 함께 Let' go!
Friday, February 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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