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 2011

◐ 예수님의 전도 방법 ② 제자 양육 - 퍼온글




예수님은 대중에게 주목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소수에 관심이 있으셨고,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3년의 대부분을
사람을 키우는데 사용하셨거든요.

그건 다시말해, 양보다는 질을 택하신 거예요.
질은 양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많은 교회들이 이 사실을 주목해,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양육에 관심을 갖고,
많은 성공을 거두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아무리 제자훈련과 제자양육을 받았더라도,
양을 만들지 못하면,
다 소용 없다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보내셨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제자훈련과 양육을
나만의 것으로 끝내서는 곤란해요.
그럼 예수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이기 때문이예요.

그래요. 그러니 이제 우리,
예수님의 제자로써,
세상을 향해 소리쳐 보는건 어떨까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이지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세요.

예수님 믿으시죠.  ^^
사랑합니다.  샬롬!


출처
http://blog.paran.com/eyejesus/45680688



한 날 묵상 - 창 9장 18-29절 <허물은 덥어주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담긴 무지개를 주시고, 무너진 땅 가운데 풍성함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이 함께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풍성함의 맛만 봐서는 결코 안됩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풍성함이 가득할 것이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를 통해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칠 것이다"는 부어지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풍성함에 사로잡히면 넘어지게 됩니다.

노아는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20절).
풍성함에 사로잡혀, 주신 분을 향한 마음을 쏟지 못할 때 넘어집니다.

노아에게는 넘어짐을 일으켜 세워 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넘어짐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사랑으로 허물을 덥어 줄 때 가능합니다.

우리를 향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허물을 덥어준 용서입니다.
가나안과 셈, 야벳의 차이는 노아의 허물을 덮어주었느냐? 그렇지 않았으냐?(22-23절)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공동체인 가족이 있습니다.
허물은 덥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들춰내야 더 많은 허물의 파편이 많은 사람들에게 튀게 되어 있습니다.

풍성함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풍성함은 생수의 강이 되어야 합니다. 때론 그 풍성함이 넘어짐의 돌부리가 됩니다. 그 때 "잘 됐다!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덮어줄 사랑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한 날도 흘러 넘치는 풍성함이 있기를 사모합니다. 돌부리에 넘어진 지체가 있다면, 덮어줄 사랑과 내마음을 이길 용기가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