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7, 2013

한 날 묵상 - 막6:1-6a절 <누가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인가?어떤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실족함을 받는가?이는 혈연, 학연, 가족이라는 원초적 감점을 떠나 지금 나와 예수님과의 거리가 문제입니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인정하느냐의 거리의 문제입니다.>

한 날 묵상 - 막6:1-6a절 <누가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인가?어떤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실족함을 받는가?이는 혈연, 학연, 가족이라는 원초적 감점을 떠나 지금 나와 예수님과의 거리가 문제입니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인정하느냐의 거리의 문제입니다.>

1.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1절) 가셨습니다. 고향으로의 귀향은 편안함과 쉼을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셨다는 말은 그곳에서 잠시나마 쉼을 얻고 다음 사역을 기도하면서 준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3.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게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그를 맞이한 고향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4.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난 사람이라면 이런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모른다하여도 '난 괜찮아'" 주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문제는 "내가 주님을 모른다 한다면 ..." 이는 결코 예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6. 고향으로 내려간 예수님의 행적은 다른 여는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으로 전혀 특별함이 있지 않았습니다.

7. 쉼을 얻기 위한 귀향일지라도 그곳에서 예수님 자신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곳에서 쉼대신 가르침의 수고와 눈물의 기도, 그리고 섬김과 사랑과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8. 예수님의 가르침 후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9.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기대하며 사모함으로 나와야 할 무리들에게 기대와 다른 반전이 일어납니다.

10. 2절 "놀라 이르되" 가르침을 듣고 놀랐는데, 전혀 뜻밖의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3절 "예수를 배척한지라"

11. 왜 그들은 지금까지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요? 왜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일까요?

12.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도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힘든가?"

13.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4. 첫째는, 자신의 옛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리기 쉽지 않는 것이죠. 익숙함이 좋다는 것이며, 변화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15. 2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16. 옛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하시는 예수님을 가족과 친척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7. 결국 옛 자아에 물든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8.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 모두가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이 기록되기 앞세 바로 앞 두 구절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1-52절 "새 것과 옛 것"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19. 예수님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이 세대를 허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할 수 있게 하셨고, 우리는 이제 이 땅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동일하게 나의 이웃과 함께 섬김과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습니다.

20. 이러한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며, 예수님의 인하여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나에게 주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참고 눅 4장 23절).

21. 지금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22. 두 번째는 예수님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다. 예수님의 사명은 목수가 아닙니다. 
 3절 "이 사람이 마라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23.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24.  예수님은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며 도움이 되시지만, 개인적으로 학연, 혈연등 이러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습니다.

25. 예수님으로부터 실족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이 먼저 일 때 분명 예수님으로부터 실족받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26.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 모두가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마가복음보다 더욱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20절입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백성에게, 모든 민족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28. 어떻게 우리가 그러니 내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영광 보다, 더 앞서게 할 수 있겠습니까.

29.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 들일 때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분명한 은혜가 있습니다.

30. 5절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마태복음 13장 58절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31. 첫 번째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5절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32.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예수님의 권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33. 두 번째는, 내 안에 믿음은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더욱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6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34. 참고로, 누가복음 4장 16-20절에서 주신 은혜가 눅 4장 21절 말씀을 보면,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는 사람들을 향한 능력의 선포가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오늘 본문 막6장 2-3절처럼 예수님을 능력을 행하실 자로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5.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믿음을 갖지 못하고, 믿음이 성숙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36.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능력을 선포하는 말씀을 받아들일 때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믿음은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37. 결국, 지금 내 안에 능력이 없고, 믿음의 성숙이 없다면, 혹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38. 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지금 나와 예수님과의 거리가 문제입니다.

39. 내가 이전에 만난 예수님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때론 이게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믿음이 있는데, 잘못된 믿음 말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본문의 주인공들처럼 말입니다.
 4절 "선지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40. 오늘 우리에게 있는 이러한 어설픈 믿음, 어설픈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 어설픈 믿음의 삶이 더욱 큰 믿음과 믿음의 성숙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더 깊이 예수님을 일아가는 일에, 그리고 매 순간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함이 있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1.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와 예수님의 거리가 얼마인지를 점검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이 은혜를 통해 날마다 믿음의 성숙함이 있는 우리 모두가 되는 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40.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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