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막 5:35-43절 <달리다굼 소녀가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의 순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들>
1. 예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진실되어야 합니다.
2. '예수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한결같은 마음을 품고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3. 그렇지만, 실상은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는 결코 이러한 마음을 한결같이 품기 어렵습니다.
4. 내가 마음을 정하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매순간 다짐하고 확증한다 할지라도 나의 이런 정한 마음을 빼앗으려는 세상의 유혹은 끊임없습니다.
5. 내가 확정한 마음, 믿음의 결단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이 몰려올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35절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36절 "에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이시고 회당자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나를 향한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7. 그렇지만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세상의 유혹에 집중하며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미하지만 분명하고도 정확한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를 들을 때,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고 믿음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8. 왜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에 집중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보는 관점과 예수님의 보시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보시는 관점이 인생의 정답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가장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9. 야이로의 딸에 대해서 세상의 관점은 "울며 심히 통곡함"(38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39절) 바로 이게 예수님의 관점이입니다.
10.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39절). 우리는 결코 이렇게 야이로의 딸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음성을 듣고 살아갈 때 결코 이렇게 야이로의 딸을 볼 수 없습니다.
11.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음성을 들을 때에 결코 예수님의 마음이나 관점을 볼 수 없습니다.
12.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우리를 심히 통곡하고 우리를 울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어려운 일들이나, 슬퍼 울지 않고는 살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13. 이러한 일을 만날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할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 나의 문제를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14. '심히 통곡하고 울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아니라 단지 잔다'는 예수님의 시선을 우리 또한 갖게 됩니다.
15. "달리다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41절) 주님의 음성을 들을시기 바랍니다.
16.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냐야 일어나라". "달리다굼"
1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말씀하실 때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18.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41절)
19.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결코 야이로의 딸의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20. 예수님은 우리에게 결코 말씀만 하시지 않습니다. '일어나, 힘들지라도 박차고 일어나' 이렇게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21. 손을 잡아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넘어져 일어나기 힘든 사람에게 '일어나', '일어날 수 있어'라고 말만 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보다 못할 때가 많습니다.
22. 진정 일으켜 주고 싶다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홀로 할 수 없는 일을 만났는데 말만한다면,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참으로 야속합니다.
23. 우리는 이런 경험들 한 번쯤은 다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몰라서 안일어나는 줄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으니까 못 일어나는 거야. 안기는 하는거니!'
24.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현재 상황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더 정확히 우리의 상황을 아시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선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25.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은 이와 똑같습니다.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상황과 순간에 결코 말만 하시지 않습니다. 손을 잡아 일으켜줘야 할 때는 그렇게 하십니다. 또한 인내를 배우기 원하신다면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베푸실 것입니다.
26.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것에 맞게 합당하게 주십니다.
27. 예수님의 야이로의 딸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마지막 본문의 말씀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43절)입니다.
28. 예수님께서 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9. 먼저는 야이오의 딸이 잠깐 깨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살아있음을 확증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들입니다.
30.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일어나 제 힘으로 걸어다녀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1.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늘 함께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동행하다는 의미는 쫓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일터를 버리고, 일상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현재 삶의 모든 일들에게 벗어나 예수님만을 따르기 원치 않았습니다.
32.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만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3. 하나님의 복음을 맛본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34. 바로 이게 세번째 이유가 됩니다. 먹고 힘을 내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라. 일터에서, 일상에서, 가정에서, 이웃에게 그리하도록 스스로 밥을 먹고 힘을 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5.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의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36. 오늘 본문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그 부모에게 말씀하시는 기록이 더 있습니다.
눅 8:56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37.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은혜를 맛보기 원하십니다.
38. 고전 4장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39. 하나니의 나라를 경험하기 바랍니다. 야이로의 딸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 모두도 말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만 읽지 말고 직접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40.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41. 우리에게 이러한 동일한 은혜가 삶의 순간순간에 차고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2.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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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행적 따라가기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심
36절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께서 떠들고 심히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심
39절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께서 소녀에게 말씀하심
41절 "달리다굼 ...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냐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43절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께서 그 부모에게 말씀하심
눅 8:56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고전 4장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경험하라. 말로만 듣지말고 직접 경험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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