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5, 2013

한 날 묵상 - 막 4:26-32 <겨자씨 비유와 '은밀하게 위대하게'>



1. 내 시작은 작았으나 내 나중은 심히 크리라.

2. "다른 생각하지 마십시오". 겨자씨가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3. 하나님 나라가 그렇습니다. 내가 하든, 내가 하지 못하든,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시간표를 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제 시간에 맞추어 시계는 가고 있습니다.

5. 내가 지금 그 시간표에 함께 하든지, 하지 않던지 말입니다.

6. 원하기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함께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포함하여 믿음의 사람 모두가 말입니다. 

7.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아니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8.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패배자였기 때문입니다. 

9. 예수님은 힘이 있으셨지만, 그 힘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야 죄를 이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 예수님의 패배는 그러나 패배가 아님이 선포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패배자가 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부활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11. 예수님의 죽음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시작되었습니다. 

12. 그리고 예수님을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시작되었습니다. 

13.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가 자라 풀보다 커지고 큰 가지를 낼 만큼 커져 있습니다. 

14. 이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15. 이제 하나님 나라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지금의 가지보다 더 큰 가지를 낼 것입니다. 

16. 내가 거기에 있던, 없든 말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17. 그런데 바로옵기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그 시간표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18. 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우리가 함께 하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커지는 일에 나도 하나님의 동역자로 함께 기억될 것이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9.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0. 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처럼, 이전의 세상적 욕망을 죽는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처럼, 예수님의 섬김만을 내 삶과 영혼가운데 살리는 일입니다. 

21.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나의 죽음과 내 안에 예수님의 닮음이 살아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2. 하나님 나라는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3.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되는 일에 동참합시다. 이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코 혼자서 큰 일을 하려하지 마십시오. 그져 작은 것이면 족합니다. 

24. 오늘도 나의 작은 섬김과 나의 작아보이는 절제와 나의 작아 보이는 인내를 가정과 이웃과 친구와 직장 동료에게 실천함을 통해 작은 겾씨가 후에 자라 풀보다 커지며 가지를 내며 새들이  그늘에 깃들임만큼 되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그리고 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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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절 "또 이르시되"
 => 계속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

30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덯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절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절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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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729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자주 비유를 통해 알려주셨다. 그중에는 겨자씨의 비유가 있다. 
"천국은 ... 겨자씨 한 알 같다"는 말씀이다(마 13:31).

이 겨자씨의 비유를 읽을 때 우리는 겨자씨가 커진다는 데 주로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나라는 커진다는 것이다. 큰 나무가 되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비유가 품고 있는 천국의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큰 나무가 되는 천국의 시작이 겨자씨 한 알처럼 작다는 것이다. 사실 이 첫 작음을 철저히 실감나게 느껴야 그것의 자란 후의 모습에 놀라게 될 것이다. 천국은 누룩과 같다고도 말씀하셨다(마 13:33). 누룩 비유에서도 우리는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했다는 데 관심이 간다. 그러나 이 비유도 겨자씨 비유와 같은 비밀을 품고 있다. 하나님나라 자체가 눈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안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 작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길바닥이 금으로 깔려 있고 나를 위해 주님이 예비하신 화려한 맨션이 있는 곳을 보면 누구나 바로 그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시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는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신장보다는 분명 크실 것이고, 부드럽지만 위엄 있는 풍채, 서구적 마스크에 약간의 수염을 기른 훈남이 기적을 일으키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영광스러운 모습은 누구나 알아본다. 뭔가 있겠구나 싶어한다. 화려한 곳은, 영광스러운 곳은, 힘이 있는 곳은, 능력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 하지만, 초라한 곳은, 아니 그냥 수수한 곳은, 평범한 곳은, 힘이 없는 곳은, 중심이 아닌 후미진 변두리는, 그리고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하는 말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 앞 못 보는 사람, 못 걷는 사람, 한센병 환자, 못 듣는 사람, 들것에 실려 다녀야 하는 중풍병 환자 -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 있었다.

천국의 비밀은 이것이다. 겨자씨가 아무리 작아도 그 자체가 천국인 것이다. 씨는 예고편 천국이고, 그 씨가 자라 나무가 된 후에야 진짜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씨 자체가, 너무 작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 겨자씨 자체가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그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 사야 할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겨자씨가 - 다 자란 나무가 아니라, 씨가 -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의미가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는 하나님나라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천국 같은 천국은 큰 고민 없이 얻고 싶어한다. 밭에 보화가 드러나 있다면 누구든지 그 땅을 살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이 그냥 맨땅으로 보이면, 그 안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아는 사람만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다. 맨땅을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사는 행동은 거기 숨겨진 보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미친 행동,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서울 어느 달동네 바보 백수 방동구가 9년 동안 20000:1의 경쟁을 뚫은 '공화국' 최고의 엘리트 요원 원류한인지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 역설이 있다. 원류한이 뛰어날수록, 그래서 방동구 역할을 잘 할수록 그를 알아보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먼지 나는 팔레스틴 땅을 걸었던 청년 목수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들,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는 복음 속에서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예수의 사역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천국이 아무리 시시해 보여도, 그것이 진짜 예수님의 사역, 진짜 하나님나라의 일임을 알기에 모든 것을 쏟을 것이다. 천국은 위대하다. 그러나 은밀하다. 너무나 위대해 너무나 은밀하다. 그러나 그 은밀한 위대함을 보는 자, 그 눈이 복된 믿음의 눈이다.

전성민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참고, 예수, 한국 사회에 답하다 p93.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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