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30, 2013

한 날 묵상 - 막2:1-12 <중풍병자를 향한 친구들의 믿음과 예수님의 병고침 넘어 죄사함의 권세>

한 날 묵상 - 막2:1-12 <중풍병자를 향한 친구들의 믿음과 예수님의 병고침 넘어 죄사함의 권세>


1. 누구에게나 예수님은 필요하다.

2. 어떤 사람은 그 필요성을 인정하며 살아 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필요성을 무시하며 살 뿐이다.

3. 당신은 예수님이 인생에 꼭 필요한 한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필요치 않으십니까?

4. 그렇지만 예수님이 인생에서 꼭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섞이지 못하며, 필요성의 이유가 예수님께서 품으시고 계시는 우리에게 오신 이유와 일치하는 필요성과 그렇지 못하는 필요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그렇다면, 나와 당신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신 이유에 합당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가 그와 전혀 다른가?

6.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우리를 위해 오셨어야 했는가?에 대한 답과 일치한다.

7.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는가? 병고치기 위해 오셨는가? 아니면, 죄사함을 위해 오셨는가?

8. 당신은 지금 예수님이 왜 필요한가? 병고침을 받기 위함인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함인가?

9. 마가복음 2장 1-12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필요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이 드러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10. 먼저는 중풍병자가 있다. 그리고 그 중풍병자를 위한 친구들이 있었다.

11.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병고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한 번 만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서는 결코 예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없었다.

12. 그렇지만 중풍병자에게는 예수님을 뵈옵기 바라는 자신의 열망만큼이나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13.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데려가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방법이든 다 하고 있었다. 쉽게 갈 수 없었지만, 그들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 꼭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야 한다는 바램앞에 어려움은 결코 그들에게만은 넘지 못할 어려움이 아니었다.

14. 4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15. 이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어떠한 믿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유추해보건데, 예수님은 분명히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5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16. 예수님께서 중풍병자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에 중풍병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다.
 5절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17. 병이 나았다는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음성이었다.

18. 이 때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침묵하였다. 그런데, 6절에서 "어떤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민감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8-10절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ㅇ르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는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는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잇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19. 예수님은 이 땅이 인간들을 위해 오신 이유가 있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환자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

20. 참고하면, 막 1장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랴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21.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병고침을 받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이유이다.

22. 설령, 죄사함을 받은 후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23. 우리는 서기관들처럼 반응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짜 이유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다. 서기관들은 병고침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이어다.

24. 우리도 병고침에만 관심이 있고, 죄사함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서기관들의 반응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자기 임의적으로 생각하는 잘못은 똑같이 저지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25. 예수님은 분명히 아셨다. 병에 원인에는 질병적인 원인도 있지만, 죄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 해 주셨고, 그 이후에 병고침의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11절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26. 예수님은 때론 병고침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복음은 죄의 해결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엇다.

27. 예수님은 병고침을 통한 복음의 전파는 병고침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셨을 뿐이지 이 또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28.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신다. 예수님께서 병고치는 것과 죄사하는 권세를 사용하신 것은 모두 예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

29.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

30. 하나님이 영광 받으심은 세상에서 죄사함을 받는 권능이 일어날 때이다. 하나님의 영고아은 병고침에 대한 권능이 아니다.

31. 12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누가복음 5장 26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32.이 부분을 마태복음 9장 6-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여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고아을 돌리니라"

33. 부디 우리가 무리들속에 함께 있다면, 병고치는 권능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능으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4. 당신과 나에게 예수님이 왜 필요하십니까?

3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10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하시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오셨다.

36. 그리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음심으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해주셨습니다.

37. 예수님이 친히 몸으로 사신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을 뿐 아니라, 그 삶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전부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8.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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