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노아 앞에 언약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언약의 증표로 첫 번째 행하신 일이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무지개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바로 용서입니다.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용서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은혜를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용서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행하신 사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23:39-43 "세 개의 십자가"에서 한 행악을 행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우리가 삶에서 실천해야 할 하나님 성품 닮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용서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사랑안에 용서를 담아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가 있는 이 땅을 기대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되리 ~~~~
Wednesday, August 31, 2011
Saturday, August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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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아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크리스천의 첫째가는 의무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알려 하지 않고 외면할 때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크리스천이란 결국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게 마련입니다.
1. 창세기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묵상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부성과 모성을 함께 지니신 분’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시다.
넷째, 하나님은 ‘훈련시키시는 분’이시다.
다섯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여섯째,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일곱째,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덟째, 하나님은 ‘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2.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 예수님께서는 이 좋으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셨다(막 14:36).
히브리어로 ‘아빠’는 우리말 아빠와 똑같은 의미이다. 히브리 아이들이 아빠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아이들의 발음과 똑같아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아빠라는 호칭 앞에서 아이는 아빠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는 반면, 아빠는 아이에 대해 전적인 의무와 책임을 지신다.
2)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대의 아빠시다. 그대를 위해 온간 책임과 의무를 다하시는 사랑의 아빠시다. 이 세상의 아빠는 자식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인다.
3.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1) 하나님께서는 수십억 인구 가운데 그대를 특별히 사랑하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2) 여인이 젖 먹는 자기 자식을 잊을지라도, 우리의 아빠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고 고백하신다. 그대의 이름을 에 새기시기 매일 그 이름을 들여다보시며, 그대에게 어떤 좋은 것을 줄까 생각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3) 그대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아빠,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잠잠히 그대를 사랑해 주시는 아빠, 그대 때문에 즐거이 노래를 부르시는 아빠,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 그대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4.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소원 - 더 이상 한 숨의 골짜기에 머물지 말라.
2) 하나님의 요구 - 지금 당장 하나님 아빠를 의지하고 굳건히 서라. 그것이 참된 용기요, 믿음이요, 지혜이다.
2과 나는 누구신가?
자기 발견의 중요성 -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자신이 누구인지 바르게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사람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은 탕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실상을 발견했을 때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된다. 탕자의 ‘자기 발견’이 ‘아버지에 대한 바른 인식’과 ‘아버지와 바른 관계 맺음’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다고 창세기 2장 7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참인간일 수 있겠습니까?(흙의 특성으로 본 참 인간의 삶)
1) 흙의 첫 번째 특성은 ‘생명’이다.
2) 흙의 두 번째 특성은 ‘사랑’이다.
3) 흙의 세 번째 특성은 ‘정직’이다. 4) 흙의 네 번째 특성은 ‘도구’됨이다.
5)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인간에게는 특별히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2. 이렇듯 왜 인간은 죄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까?.
1) 인간이 죄인 된 이유
2) 어찌 우리가 아담과 똑같은 죄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3.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면 죄란 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성경은 ‘범죄 transgression’와 ‘죄 sin'를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에 대한 정의
(1) 요한복음 16장 9절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죄라고 밝히고 있다.
(2) 죄는 하나님을 과녁 삼아야 할 과녁의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야 할 순종의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나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에노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
2)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한다.
3) 그대 자신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질 풀잎에 불과함을 인식했다면, 그대에게 남은 일이란 복음 속에 거하는 것이다.
5. 주님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여호와 하나님 아니시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 아니시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3) 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모든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내게 십자가의 구원과 복음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님께서 당신의 빛으로 함께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이다.
3과 예수님은 누구신가?
1.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 했습니다. 아래의 성경구절을 읽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함께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을 누구라 합니까?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을 누구라 합니까? 예수님은 ‘부활자’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다.
예수님을 누구라 합니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왜 그렇게 중거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 이 땅에 태어난 인간 중에 구원자시며, 부활자시며,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셨던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롬3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장23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롬5장 8절).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토록 피 흘리시며 처참하게 돌아가셔야만 했습니까? 공자나 석가처럼 고상하게 돌아가실 수는 없었습니까?
-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사 나의 죄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온전하게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3. 다음의 말씀들을 함께 묵상해 봅니다. - 예수님과 관련된 성경구절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어 그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보시고 나를 의롭다고 인정시는 것이다.
우리 죄에 대한 사하심의 근거는 우리 죄의 경중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하나님을 향한 죄의 자백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 죄를 하나님께 고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그 죄를 기억조차 않으신다. 하나님의 패스오버는 우리 죄에 대한 유보가 아니라, 죄의 완전한 도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붉디붉은 우리 죄의 흔적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고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신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결코 죄책감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죄인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였던 우리가 구원 얻은 것은 절대로 우리의 공로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곧 천국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 곧 천국이 주어졌다.
4. 당신은 지금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까? 그대는 구원받았는가?
그대가 만약 이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없다면, 그대는 지금부터 하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그대는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그대의 죄가 사해졌음을 믿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그대는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다.
4과 성령님은 누구신가?
1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성령님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경적 근거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성령님께서 이 땅에 임하셨다. 바로 그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살고 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성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하나의 실체이신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지만 또한 세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또한 세 분이시기에 각각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사역하실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세 분이시지만 그러나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왜 중요합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은 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달리 하나님이시기에 한 분이시지만 또한 세 분이실 수 있고, 세 분이시지만 그러나 한 분이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그런 분이시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 신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경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지, 이제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1)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님만 유일신이시다.
(2)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해 갖는 신관은 유일신관이다.
2.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 : 왜 성령님을 받아야 하는가?
1) 성령님의 호칭
(1)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부른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이며, ‘위로자’, ‘돕는 자’란 뜻이다.
(2)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가리켜 이번에는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신다.
2) 성령님의 역할
(1)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리켜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2)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3)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3. 성령님께서 함께하실 때 나타난 구체적인 역사
감동, 말씀, 위로, 사랑, 소망, 거룩, 자유, 치유, 능력, 열매
4. 성령님께서 임하신 성경의 예
이 귀한 성령님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아니 어떤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시는가?
어떤 사람은 기도하다가 성령님을 받았고, 어떤 이는 회개함으로, 또 다른 사람은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혹은 안수를 받음으로, 또는 말씀을 듣다가 각각 성령님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내가 회개한 적도 없고, 안수 받은 적도 없고, 성령님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게 성려님께서 임하셨단 말인가? 그대가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오직 성부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그대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5. 당신은 성령님을 받았습니까?
6.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이제부터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그대가 지금부터 집중해야 할 일은, 이미 그대에게 임하신 성령님을 날마다 의식하면서 그분의 음성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대가 기도의 삶, 순종의 삶, 말씀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성령님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그대에게 임하신 성령님과 함께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 위함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5과 성경이란?
1. 성경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은 아닙니다. 약 1,500년에 걸쳐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고, 또 믿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 첫째,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2) 둘째, 완전한 통일성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3) 셋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두를 위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1) 요한복음 20장 30-31절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카메라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 맞추어야 할 초점 또한 구원이다. 본문은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2)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천국’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 본문은 성경을 주신 목적이 (1) ‘온전한 사람’과 (2) ‘온전한 선행’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3) 위의 내용을 토대로 성경을 정의해 보십시오.
3. 성경의 분류
성경의 66권은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이 중에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쓰인 글들의 묶음을 ‘구약’이라고 하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글들의 묶음을 ‘신약’이라고 부른다.
1) 구약(총39권) - 17권 ‘역사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일컫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한 인간의 배신의 역사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다.
5권 - ‘시가서’ 혹은 ‘성문서’
17권 - ‘예언서’ 예언이란 점쟁이가 점치 듯 말하는 예언豫言이란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뜻에서의 예언預言이다. 예언서는 그 시기의 순서에 따라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 혹은 전기예언서들의 분량이 후기예언서들에 비해 많다는 이유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란 명칭으로 구분된다.
2) 신약(총27권) - 4권 ‘복음서’
1권 - ‘역사서’
21권 ‘서신서’
1권 - ‘예언서’
4. 이 말씀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성경말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영생의 말씀이시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영생의 말씀이실 수 있는가? 영생하시는 분의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2) 아무리 항상 계시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까이할 수 없다면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항상 계시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내 곁에 계시는 말씀이어야 한다.
3) 얼마나 내게 가까이 계시는지 아예 내 입속에, 내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다. 아무리 내 속에 계시더라도 그 말씀이 단 한 순간이라도 능력을 소멸해서는 안 된다. 능력을 소멸한 말씀은 말이지 말씀이 아니다.
4) 성경말씀이 참된 말씀이라면, 그 말씀은 우리의 실상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참된 것만 만물의 실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5) 이처럼 성경말씀이 우리를 비추어 주는 온전한 거울이기에, 우리는 말씀속에서 우리의 추악한 실상을 발견하고 말씀으로 우리를 가꿈으로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선행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이다.
5. 요한복음 1장 1-3절, 14절 그리고 요한1서 1장 1-2절, 요한계시록 19장 13절에 의하면,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말씀이시며. 말씀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 말씀에 의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1) 첫째, 부르시는 능력이다.
2) 둘째, 치유하시는 능력이다.
3) 셋째,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4) 넷째, 격려하시는 능력이다.
5) 다섯째, 사탄을 물리치시는 능력이다.
6) 마지막으로 창조의 능력이다.
6과 기도란?
1.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까닭은 무엇입니까?
1)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또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특권이다. 주어진 특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2)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답해 보십시오.
(1) 이와 같은 특권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의 특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을 위해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고 아름답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
(2) 정말 모든 기도는 응답됩니까?
여기에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의 특권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동안에는 응답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3) 과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나의 생각과 삶이 주님의 기도에 동참함으로써, 나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주님께서 내 속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나는 주님의 기도와 말씀 안에 거함으로써 나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는 것이다.
2. 마태복음 8장 1-15절을 통해 기도의 발전과정을 살펴봅시다(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
1) 문둥병 환자
주님께 나아와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시기를 간구함으로 응답받은 사람이다.
2) 백부장
예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그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타인의 문제로 인함이었다.
3) 베드로
베드로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주님께서 그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응답해 주신 것이다.
3. 기도와 관련된 다음의 말씀들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하나님께서는 내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2) 나 자신이나 나의 뜻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을 위해 살며,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일용할 양식으로도 자족한 삶을 살며,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삶을 살며,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기 원하는 결단의 기도이다.
3) 우리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4) 내 기도를 관철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언제든지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대로, 자신의 기도를 기꺼이 버릴 수 있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5)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위한 선한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
6) 내 속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기도와 말씀에 내가 동참하기 시작할 때, 내 삶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채워진다.
7)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8) 이제부터는 아무 염려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4. 결론
1) 기도는 장소와 형식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왜 기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1) 기도 차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7과 교회란?
1. 성경은 교회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1) 고린도전서 1장 1-3절. ‘교회’하면 사람들은 종탑과 더불어 잘 지어진 ‘건물’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 당’이지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도 바울은 1) ‘하나님의 교회’를,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리고 3)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규정하였다.
2) 마태복음 16장 15-18절.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하는 모임인가?
주님께서 분명히,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 즉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셨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그분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과 뜻을 이 땅 위에 자신의 삶으로 심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2. 381년 교회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신조야말로 교회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나의 교회
⑴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이시므로, ⑵ 믿음의 본질은 하나여야 한다.
2) 거룩한 교회
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나” (2) 우리가 거룩하다고 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거룩하다고 인정해 주셨다.
3) 보편적인 교회
⑴ 주님께서 만민(마다)을 구원하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⑵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다) 내게로. ⑶ 만민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만민이 들어와서 깨끗하게 되는 곳이다.
4) 사도적 교회
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복음(터)에 기초한 ⑵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말씀의 터(복음)에 서있어야 한다.
3. 교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사명은 에덴의 복원
1)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천국을 갖고 오심이다. 죽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믿을 때, 이미 나에게 임하셨다.
2)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얻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목적이다.
4. 성경적인 모델(창세기 2:8-17절)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1) 에덴의 강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강은 물이고 물은 생명이다. 참다운 생명은 언제나 사랑이다. 생명을 상실한 것은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의 특징은 자기희생이고, 희생은 자기낭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셨다.
2), 에덴은 울타리가 쳐진 곳이다.
에덴은 울타리가 쳐진 곳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에덴을 복원하기 원하다면 반드시 울타리를 쳐야 한다. 울타리는 무엇으로부터의 보호 혹은 무엇과의 구별을 위한 것이다. 울타리는 세속적 사고방식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3) 에덴은 보석이 있는 곳이다.
보석이 보석 되지 않는 곳이 에덴이다. 그곳에서의 보석은 진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여 많은 열매를 거두되, 그것을 세상에 봉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야 한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그의 보석이었다.
4) 에덴은 의무를 다하는 곳이다.
‘에덴’은 ‘기쁨’이란 듯인데. 이것은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다한 뒤에 주어지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곳에는 에덴이 자리 잡을 수 없다. 그곳에는 단지 삶의 타락으로 인한 고통이 있을 뿐이다.
5) 에덴에는 선악과가 있었다.
그 나무 앞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할 피조물로 확연히 구별되었다. 그 나무야말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드러내는 표상이었다. 아담은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에덴과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에덴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8과 교회란?
1. 예배의 어원을 살펴봅시다.
1) 히브리어 - (1) 아바드(Abbad) : 섬긴다는 말.
(2) 사하(Shachach) : 부복한다는 말.
2) 헬라어 - (1) 프로스퀴네오(proskyneo) : 경배하는다는 말.
(2) 라트류오(latreuo) : 섬긴다는 말.
3) 영어(Worship) - 최상의 존경과 존귀를,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분께 드리는 행위다.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예배(제사)와 그 종류를 살펴봅시다.
1) 번제 - 제물을 조금도 남김없이 온전히 불태워 버리는 것이다.
2) 소제 - 곡물을 제물로 하여 드려지던 ‘소제’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나태나는 제사였다.
3) 속죄제 - 삶 가운데에서 죄를 인식할 때마다 속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다. 속죄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말한다.
4) 속건제 : 목적은 보상과 사죄다. 속건죄는 돌이킬 수 있는 죄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5) 화목제 - ‘나눔’에 있다. 화목제는 일종의 잔치제사요,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축제제사였다.
3. 왜 지금은 구약과 같은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어, 위에서 언급한 모든 제사를 완성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의 정신은 그대로 함축된 “예배정신”이 되어야 한다.
4. 이제 예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죽으면 된다.
1) 하나님과 과의 만남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만나는 것.
2) 하나님에 대한 굴복 - 하나님 말씀에 나를 지배하게 하는 것
3) 그리하여 하나님의 터치를 받는 것
4) 일주일 동안 적용하는 삶
5. 교회의 주보를 살펴봅시다)
1) 내려 받고, 2)올려 드림으로 되어 있다.
6. 사도행전 24장 1절과 25장 1-2절을 읽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으며, 왜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문제점 - 2년이 지나도록 태도(장로들과 대제사장들)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며, 2년이면 안식일을 100번 격고도, 예배 따로 삶 따로 이었다.
2) 이유 - 제사 드리며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형식이었다.
7. 다음과 같은 제사를 평소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었던 사람의 예를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1) 번제 : 바울은 하나님께 달려갈 길과 복음전하는 일로 번제(사형)했다.
2) 소제 : 가인은 제 아들과 제 성의 이름을 에녹(헌신)이라 지어 감사로 소제했다.
3) 속죄제 :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하자 그 즉시로 속죄하다.
4) 속건제 : 다윗은 시온에 성을 쌓고 전파(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는 속건제를 행하였다.
5) 화목제 :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먼저 선택하라며 화목제를 행하였다.
8.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딱 한마디로 말해 보십시오.
1) 사람을 지으심 : 하나님+ 흙 + 생령
2) 짐승을 지으심 : 하나님 + 흙
3)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을 명하셨습니다(요4:24). 교회 안과 밖을 포함하여 당신의 예배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1) 교회 예배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2) 삶의 예배 :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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