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커쇼, ‘마운드’ 뿐 아니라 ‘마인드’도 에이스!
올스타전 출전을 위해 뉴욕 시티필드를 방문한 클레이튼 커쇼. 다저스 선수로는 커쇼가 유일한 올스타전 출전 선수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온 국민을 LA다저스 팬으로 만든 류현진(26)의 대활약. 그 덕에 MLB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클레이튼 커쇼(25)도 이제 한국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듯싶다. 특히 최근 ‘진격의 다저스(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에서 패러디) 열풍’이 불면서 커쇼의 활약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커쇼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지거나, 아직 그 소소한 스토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알면 알수록 ‘불과 25세의 야구선수에게 이렇게 많은 얘깃거리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 1호(Public Enemy NO.1)’로 불리는 커쇼의 이면을 살펴봤다.
‘퍼펙트 오브 퍼펙트’의 진실
<위키피디아(영문)>를 보면 ‘(커쇼는 고교시절인) 2006년 13승 무패, 평균자책점 0.77, 139탈삼진(64이닝)을 기록했다. 저스틴 노스웨스트 고교와의 플레이오프게임에서는 전원 탈삼진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in 2006 when he posted a 13–0 record with an ERA of 0.77, and recorded 139 strikeouts in 64 innings. In a playoff game against Justin Northwest High School, Kershaw pitched an all-strikeout perfect game)’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고등학교 야구라고 해도 퍼펙트게임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전원 삼진이라니 기네스북도 놀랄 기록이다. 이것이 국내 한 신문을 통해 와전되면서 ‘커쇼 27삼진 신화’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정보다. 커쇼는 해당 경기에서 15명의 타자만 상대했다. 경기가 10-0 5회 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 투구수는 73개였고, 커쇼는 타석에서 홈런을 치기도 했다. 기록의 의미가 조금 축소됐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커쇼는 그해
다저스의 에이스인 만큼 어딜 가나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게 된다. 힘들어도 찡그리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사인을 해주는 커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커모삼천지교'와 가난 극복
192cm, 99.7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커쇼는 1988년 3월 19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음악가인 아버지 크리스와 어머니 매리언(그래픽디자이너) 사이에서 태어났다(참고로 커쇼의 아버지는 지난 4월 28일 작고했고, 커쇼는 장례식 참석 후 예정된 등판일정을 소화했다).
부모는 커쇼가 10살 때 이혼했고, 매리언 혼자 커쇼를 키웠다. 싱글맘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지만 매리언은 커쇼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하이랜드 파크에서 살았다. 이 동네는 베버리힐즈를 설계한 사람이 도시계획을 맡았고, 가구의 평균 연수입은 20만 달러가 넘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고, 당연히 ‘커쇼네’처럼 싱글맘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린 시절 서머캠프에서 커쇼를 가르친 켄 거스리 코치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커쇼는 그 지역사회에서 검은 양(black sheep)이었다”고 비유했다. 고교 졸업반이 돼서야 뒤늦게 1997년형 포드 중고차를 얻은 커쇼도 “내 차는 렉서스SUV로 가득 찬 학교 주차장에서 정말 볼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서는 무척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는 커쇼는 어린 시절 이런 환경을 잘 이해했다.
“커쇼가 12살 때 차 안에서 갑자기 빤히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어요. ‘엄마, 우리 부자지? 그런데 여기 하이랜드 파크만큼은 부자가 아니지, 그렇지?’라고요. 어린 나이지만 커쇼는 일찌감치 녹록치 않은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머니 매리언의 회고다.
매리언은 커쇼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심지어 비싼 사립학교를 다니게 했다. 물론 도중에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공립학교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쨌든 매리언의 고민은 노상 커쇼의 교육을 위한 돈 걱정이었다. 이는 2006년 드래프트 후 사이닝 보너스로 230만 달러를 받으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가식이 없고, 겸손한 커쇼의 성격도 이러한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커쇼는 “어떤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대한다. 이런 내 성격은 내가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저스의 댈러스 지역 스카우트 캘빈 존스이 밝힌 일화도 하나 있다. “드래프트 후 내가 정말 놀란 것이 하나 있다. 사이닝 보너스를 받은 후 어떤 차를 사고 싶냐고 물었는데 커쇼는 F-150픽업(값비싼 스포츠카나 명차가 아니라 실용적인 차)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이 정도면 멘탈은 됐다고 생각했다.”
커쇼와 절친 매튜 스태포드. 스태포드는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사진=커쇼 재단) |
별명, 절친, 등번호
커쇼는 2007년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8년 만 20세가 되기도 전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왔다. 2008년 5승(5패), 2009년 8승(8패), 2010년 13승(10패)에 이어 빅리그 4년째인 2011년 21승 5패, 평균자책점 2.28, 탈삼진 248개로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받았다. 2012년 14승에 이어 올해도 팀내 최다승을 올리며 순항 중이다. 올시즌 후 FA계약이 가능한 커쇼는 벌써부터 사상 최초의 2억 달러 계약이 예견되고 있다.
이런 커쇼는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 1호’로 불린다. 빅리그 승격 첫 해 시범경기에서 엄청난 커브를 선보이자 다저스의 레전드인 1인해설자 빈 스컬 리가 “Public Enemy NO.1”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제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으니 별명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어머니 덕에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배출하기로 소문난 하이랜드 파크에서 자란 커쇼는 스타플레이어 친구들이 다수 있다. 특히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쿼터백 매튜 스태포드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초중고 동창으로 어린 시절 풋볼, 야구,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함께 했는데 야구에서는 커쇼가 투수, 스태포드가 포수를 맡았다. 둘은 다저스의 캠프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커쇼는 이후에 다저스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커쇼는 큰 키 덕에 축구에서는 골키퍼를 맡았다).
참고로 커쇼는 고교졸업 후 당초 지금의 아내인 엘렌이 진학하는 텍사스 A&M 대학으로부터 장학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바람에 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사이닝 보너스 230만 달러). 반면 절친 스태포드는 조지아 대학에 진학한 후 2009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디트로이트로 갔다. 초중고 단짝친구가 미국 메이저 스포츠리그에서 대스타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등번호 22번에도 뼛속까지 ‘텍사스 사나이’인 사연이 깃들여 있다. 커쇼는 학창시절 텍사스 레인저스의 1루수 윌 클락을 가장 좋아했다. 그에 대한 오마주로 그의 번호를 지금 달고 있는 것이다. 커쇼는 지금도 매년 모교를 방문할 정도로 댈러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2010년 12월 4일 결혼한 아내 엘렌(멜슨)과 커쇼의 결혼식 피로연 장면. 엘렌과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사진=커쇼 재단) |
몸보다 더 강한 멘탈
커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2010년 12월 4일 결혼한 아내 엘렌(멜슨)과 그 집안의 영향이 컸다. 커쇼는 엘렌을 중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졸업반이 되면서부터다. 그때까지 둘은 이성친구가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 둘의 연애는 엘렌의 할아버지 에드 멜슨이 가족여행에 커쇼를 초청하면서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에드 멜슨은 지금도 커쇼에게는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어쨌든 원래 독실했는데 아내 덕에 더 독실해진 커쇼의 신앙심은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후 ‘아이 엠 세컨드(I am Second)’라는 기독교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커쇼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종교 덕인지 커쇼는 멘탈이 훌륭하다. 아내 엘렌은 “커쇼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만난 사람 중 가장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예컨대 레스토랑에서 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 스타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커쇼도 “신앙은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 돼 버렸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신을 위한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커쇼는 프로정신이 대단하고, 동료의식도 뛰어나다. 그리고 성실하다. 젊은 나이에 대성한 많은 선수들이 성공에 취하는 것과는 달리 커쇼는 시즌 중 매일 체력단련을 하는 등 엄청난 훈련량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 게임 최고의 상태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 활동 중인 커쇼와 아내 엘렌, 그리고 잠비아 아이들.(사진=커쇼 재단) |
MLB판 ‘아프리카의 성자’
그런데 커쇼에게는 ‘모범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일찍이 아프리카 잠비아의 고아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엘렌은 2010년 신혼여행지로 호화 휴양지 대신 잠비아를 택했다. 그리고 커쇼는 이때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 커쇼는 “아프리카는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요건만 갖춰져도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첫 방문 후 커쇼는 엘렌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호프’라는 잠비아 고아소녀를 위해 고아원을 지어주겠다고 결심했다. 호프는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했고, 자신도 감염자였다. 커쇼는 행동에 나섰다. 2011시즌 스트라이크 아웃 1개 당 100달러를 적립했다. 그리고 각종 상을 받을 때마다 상금의 대부분도 내놓았다. 2011시즌 후 고아원(호프의 집)은 세워졌고, 아내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룬 ‘ARISE’라는 책도 펴냈다(2012년 1월).
커쇼는 지금도 겨울이면 약 한 달 동안 잠비아에 머물며 자선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야구도, 메이저리그도 모른다. 여기(잠비아) 오면 내가 축구선수였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아프리카는 축구인기가 높다).” 커쇼의 아프리카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커쇼는 2012년부터는 아예 ‘커쇼의 도전(kershawschallenge.com)’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잠비아는 물론 LA와 댈러스 등에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해 선행을 베푼 메이저리거에게 주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장했다. 커쇼는 1년 전 수상한 사이영상보다 이 상이 더 뜻깊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고의 기량과 함께 모범적인 사생활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던 마이클 조던(농구)과 타이거 우즈(골프)는 이혼, 도박 등으로 이미지의 빛이 많이 바랬다. 그 자리를 불과 25살의 젊은 야구스타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류현진도 커쇼에 대해서는 그의 일기를 통해 ‘정말 인성이 훌륭한 선수’라고 말한 바 있다. 류현진은 “커쇼는 최고의 에이스 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착하고 성실하다. 이런 선수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얘기했다.
서로 좋은 영감을 주고 받는 류현진과 커쇼. 커쇼는 메이저리그 데뷔해를 보내는 류현진을 따뜻하게 챙겨줬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이 글은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1988년생 스티븐 스트라스버그(통산 23승 315이닝). 1989년생 맷 무어(20승 241이닝)와 맷 하비(8승 123이닝). 그리고 1990년생 셸비 밀러(6승 70이닝).
그러나 벌써 66승을 따내고 1017이닝을 소화했으며, 사이영상과 트리플 크라운까지 달성한 1988년생 투수가 있다. 1920년 이후 1000이닝 이상 던진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2.69)에 올라 있는 클레이튼 커쇼(25·LA 다저스)다(2위 화이티 포드 2.75, 3위 샌디 코팩스 2.76).
15일(이하 한국시간) 워싱턴전에서 완봉승에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 두고 '10구 안타'를 맞아 8.2이닝 무실점 승리에 만족해야 했던 커쇼는, 21일 밀워키전에서는 1실점 완투승을 따냄으로써 22경기 연속 3자책 이하를 이어갔다. 이는 1994년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23경기(1999-2000)에 1경기가 모자란 것이다(다저스 최고 기록 클로드 오스틴 36경기 연속).
그렇다면 커쇼는 어떻게 이렇게 이른 나이에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투수가 될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피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패스트볼이다. 댈러스 출신으로 로저 클레멘스를 우상으로 삼고 자란 커쇼는, 텍사스산 파워피처답게 건장한 체격(191cm 100kg)을 자랑한다. 커쇼는 이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지난해 커쇼가 기록한 평균 93.2마일(150km)은 전체 10위이자 데이빗 프라이스(95.5마일)와 맷 무어(94.4마일)에 이은 좌완 3위였다. 돋보이는 것은 구속 만이 아니다. 커쇼의 패스트볼은 상승 무브먼트에서 지난해 메이저리그 1위(12.4)에 올랐을 만큼 뛰어난 움직임을 자랑하며(무어 10.4, 프라이스 5.9) 수준급 제구력까지 동반되고 있다. 구위의 3박자인 구속-무브먼트-제구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데뷔 초기 '코팩스의 재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커브가 돋보였던 커쇼는, 그러나 커브가 기대만큼 스트라이크아웃 피치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이에 현역 시절 슬라이더의 달인이었던 릭 허니컷 투수코치, 그리고 불펜포수 마이크 보젤로와 함께 슬라이더의 집중 연마에 나섰다. 장착 2년 만인 2011년, 커쇼의 슬라이더는 구종가치에서 메이저리그 1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허니컷 코치는 "(코팩스에 이어) 스티브 칼튼이라는 또 한 명의 대투수가 커쇼의 안에 등장했다. (강심장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또한 여전히 숨 쉬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슬라이더로 리그를 제패(트리플 크라운)한 커쇼는, 지난해 다시 방향을 바꿔 커브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커쇼의 커브는 구종가치에서 ML 4위를 차지했다. 패스트볼(2012년 1위) 슬라이더(2011년 1위) 커브(2012년 4위) 세 가지가 모두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인 것. 보통의 좌완이 좌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 우타자를 상대로는 커브를 결정구로 삼는 것과 달리, 커쇼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 우타자를 상대로 26%의 슬라이더와 27%의 커브, 좌타자를 상대로 18%의 슬라이더와 18%의 커브를 던짐으로써, 타자들을 대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여기에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한 좌완이 요한 산타나였던 커쇼는 (비록 빠른 발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체인지업 역시 꾸준히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1999년에 데뷔했으며 2008-2009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뛰었던 로드 바라하스는 자신이 직접 본 최고의 '훈련광'으로 로이 할러데이를 꼽았다. 할러데이를 보면서 '저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바라하스는, 2010년 다저스에 와서 깜짝 놀랐다. 할러데이처럼 훈련하는 선수가 또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그야말로 투수로서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인성까지 뛰어난 커쇼의 유일한 단점으로, 뭔가 어설퍼 보이는 투구폼을 꼽는다. 하지만 그 '멋대가리' 없는 투구폼에 커쇼의 결정적인 비밀 또 하나가 숨겨져 있다.
타자들은 CC 사바시아의 공을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공을 쥔 왼손이 육중한 체구를 천천히 가로지르다 갑자기 빠르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류현진도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사바시아의 왼손은 왼 허벅지 뒤에서 순간적으로 멈췄다 나오는데, 이 때문에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는데 더 큰 애를 먹는다.
공중에서 잠깐 멈췄다 떨어지는 커쇼의 오른발 ⓒ gettyimages/멀티비츠 |
사바시아의 이런 '머물기 동작'(stay back)은 커쇼에게서도 보여진다. 커쇼는 와인드업시 키킹을 한 오른 발이 지면에 착지하기 전에 공중에서 잠깐 멈추는데(leg hesitation), 이 순간적인 멈춤은 타자들의 타이밍 잡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주로 다리를 올린 리프트업 상태에서 멈추는 일본 투수들보다 더욱 효과적이며, 이중 킥 모션으로 지적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동작으로, 다저스는 커쇼의 이 동작을 분석한 후 몸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매년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다저스 투수들을 지도하는 코팩스 역시 커쇼의 멈춤 동작을 신기해 하면서 그대로 놔둘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mlb.com 영상] 커쇼의 독특한 투구 동작
흔히 '공은 하체로 던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투구시 하체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바이오메카닉 피칭 이야기>(조용빈 저)에 따르면,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하체가 담당하는 임무는 두 가지, 스트라이드를 통한 '전진력 생성'과 스트라이드 이후 이루어지는 '지지대 역할'이다. 그리고 기존의 투구 이론은 전진력의 생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반면, 지지대의 역할은 과소평가하고 있다. 팀 린스컴이나 아시아 투수들처럼 체격 조건이 좋지 않은 투수들의 상당수는 최대한의 전진력을 얻기 위해 강한 스트라이드를 한다. 하지만 커쇼를 비롯해 저스틴 벌랜더, 클리프 리 등 메이저리그의 장신 투수들에게 있어 하체의 핵심 임무는 지지대의 역할이다. 많은 국내 지도자들이 이들의 투구폼을 '상체로만 던지는' 위험한 투구폼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밸런스를 유지하기에 더 쉬운 쪽은 전진력을 얻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무리할 필요가 없는) 투수들이다.
투구시 순간적으로 멈추는 동작 역시 전진력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체가 지지대 역할을 하는 투수들에게 멈춤 동작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멈춤 동작의 문제점은 투구 리듬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커쇼는 발을 내딛은 후의 연속 동작이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연결되고 있다.
디셉션(숨김 동작)에만 의존하는 투수는 롱런하기 쉽지 않다. 돈트렐 윌리스는 그 독특한 투구폼 덕분에 신인왕을 따내고 사이영 투표 2위에도 올랐지만, 복잡한 딜리버리에서 오는 제구 불안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자니 쿠에토는 잦은 부상 때문에 특유의 '트위스트 딜리버리'를 수정할 것을 고민하고 있으며, 제러드 위버는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지자 디셉션이 소용없어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구위와 제구가 모두 뛰어난 커쇼에게 디셉션은 보너스 요소일 뿐이다.
21살의 나이로 풀타임 첫 시즌을 치른 2009년 이후, 커쇼는 평균자책점(2.50. 2위 펠릭스 에르난데스 2.76)과 조정 평균자책점(152. 2위 벌랜더 144)에서 모두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커쇼는 페드로 마르티네스(2002-2003)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투수가 됐다. 그리고 올해는 1993-1995년의 그렉 매덕스 이후 첫 3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커쇼의 흔들림 없는 전력 질주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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