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27, 2013

[인사이드MLB] 오심,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1루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켰던 짐 조이스 심판 ⓒ gettyimages/멀티비츠

[사례1] 4월9일(이하 한국시간) 탬파베이와 텍사스의 경기. 3-5로 뒤진 탬파베이는 9회초 텍사스 마무리 조 네이선의 난조를 틈타 숀 로드리게스가 한 점을 만회하는 적시타를 터뜨렸다. 계속된 2사 1루. 풀카운트에서 조 네이선이 던진 커브가 바깥쪽으로 크게 벗어나자, 타석의 벤 조브리스트는 걸어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마티 포스터 주심은 이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했다. 5-4 텍사스의 승리. 조브리스트는 머리를 깜쌌고, 그 순간 네이선의 입에서는 '와우'라는 말이 나왔다(네이선에게는 통산 300번째 세이브였다). 조 매든 감독이 득달같이 달려나왔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영상]
 

놀랍게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네이선의 6구

[사례2] 5월21일 시애틀과 클리블랜드의 경기. '에이스 킬러' 클리블랜드 타선을 상대한 이와쿠마는 2회 2사 1,2루에서 라이언 레이번과 대결했다. 초구와 2구를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진 이와쿠마는, 3구째 공도 존 안으로 집어넣었다. 루킹 삼진이 선언되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놀랍게도 래즈 디아스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4구째 파울 후 이와쿠마가 던진 스플리터는 가운데 몰렸고, 담장을 넘어가는 스리런홈런이 됐다. 충격에 빠진 이와쿠마는 다음 타자에게도 홈런을 맞았고, 그 다음 타자의 기습번트 타구를 잡아서는 1루로 악송구를 던졌다.

이와쿠마를 무너뜨린 3구 볼 판정

[사례3] 5월23일 밀워키 원정경기에 나선 류현진은, 1회말 1사 1루에서 라이언 브론을 상대했다. 류현진은 초구 패스트볼을 몸쪽으로 낮게 집어넣었다. 하지만 볼 선언. 2구 파울과 3구 볼 후 4구째 커브는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걸친 공이었다. 하지만 역시 볼. 5구째 커브 역시 볼로 선언 받은 류현진은, 결국 세 개의 스트라이트를 잃고, 브론을 볼넷으로 내보내야 했다. 다행히 후속타자인 루크로이를 병살타로 잡아냈지만, 그 날 류현진은 매니 곤살레스 주심으로부터 9개의 스트라이크를 볼로 선언받았다(볼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된 것은 2개).

모두 볼로 선언된 류현진의 1,4,5구

2011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까지 스트라이크 1개를 남긴 상황에서 동점타를 두 번씩이나 맞고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텍사스는, 다음날 선발투수 대결에서 맥없이 패하며(맷 해리슨 4이닝 3실점, 크리스 카펜터 6이닝 2실점) 세인트루이스에게 우승을 내줬다(스코어 2-6). 하지만 그 경기에는 또 하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제리 레인 주심이 세인트루이스의 편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 날 경기에서 레인 주심은 pitch F/X로 확인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에서 무려 17개의 공을 놓치며 90%의 적중률에 그쳤다(반면 1-6차전 주심들의 평균은 94.0%였으며, 레인 본인도 1차전에서 94.9%를 기록했다). 문제는 그 17개의 공 중 14개가 세인트루이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언됐다는 것. 텍사스로서는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불리한 존과도 싸워야 했던 것이다.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pitch F/X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여러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pitch F/X 상의 탄착점과 실제 판정을 비교함으로써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포수 평균자책점'처럼 '심판 평균자책점'이 있긴 했지만, 이를 평가 근거로 삼기는 어려웠다(메이저리그 심판들은 대체로 주심으로서 1년에 35경기 정도를 주관하는데, 유독 좋은 투수를 많이 상대하는 심판이 있을 수도 있다).

2012년 주심 평균자책점 상위(전체 평균 4.01)
1. 헌터 웬델스테드 : 3.08
2. 제프 켈로그 : 3.11
3. 앙헬 에르난데스 : 3.30
4. 필딘 큘브리스 : 3.31
5. 빅 카라파자 : 3.35

2012년 주심 평균자책점 하위
1. 폴 에멀 : 5.11
2. 짐 조이스 : 5.03
3. 롭 드레이크 : 4.90
4. 토드 티치너 : 4.84
5. 그렉 깁슨 : 4.82

류현진 경기의 주심들(지난해 평균자책점)
6.1이닝 1자책(폴 에멀) - 5.11
6.1이닝 2실점(댄 아이아소냐) - 3.95
6.0이닝 3실점(짐 레이놀즈) - 3.75
6.0이닝 5실점(마빈 허드슨) - 4.06
7.0이닝 1실점(토니 란다조) - 4.40
6.0이닝 2실점(월리 벨) - 3.77
6.0이닝 4실점(필딘 큘브리스) - 3.31
6.2이닝 1실점(론 쿨파) - 3.74
5.0이닝 2실점(헌터 웬델스테드) - 3.08
7.1이닝 2실점(매니 곤살레스) - 4.50

물론 규정집에는 '홈 플레이트 안으로 들어오거나 바깥쪽 라인에 걸치는 공'이라는 좌우 규정과 '무릎(슬개골 아랫부분) 위부터 어깨와 허리 사이 중간지점 사이'라는 높이 규정이 확실하게 명기되어 있다(테드 윌리엄스는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 안에 좌우로 7개, 상하로 11개씩 총 77개의 공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심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스트라이크 존을 운용하는데, 68명의 심판(메이저리그 심판은 4명씩 17개조로 운영된다)들이 만들어내는 68개의 스트라이크 존은 또 하나의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하이히트베이스볼>이라는 컴퓨터 게임은 처음으로 주심마다 스트라이크 존을 달리 함으로써 야구 게임 마니아들의 찬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테드 윌리엄스의 코스별 타율 [타격의 과학]

한 때 메이저리그는 양 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기도 했다. <야구룰교과서>에 따르면, 내장형 프로텍터를 먼저 도입한 내셔널리그 심판들은 덕분에 몸을 더 낮게 웅크림으로써 낮은공에 눈을 더 가까이 가져갈 수 있었다. 반면 두터운 외장형 프로텍터를 더 오랜 기간 동안 고집했던 아메리칸리그 심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공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메리칸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이 좀더 높았다. 하지만 1970년대 아메리칸리그 심판들도 내장형 프로텍터를 도입함으로써 양 리그의 존은 점점 같아지기 시작했고, 1999년 심판노조의 파업 후 통합 운영됨으로써 그 차이는 완전히 사라졌다.

시대별 변화도 있었다. 1961년 로저 매리스가 61개의 홈런을 날려 베이브 루스의 60개 기록을 깨자, 이에 분노한 포드 프릭 커미셔너는 "루스의 기록이 156경기에서 작성된 것인 반면 매리스의 기록은 162경기를 통해 나온 것"이라며 매리스의 기록에 '별표'(asterisk)를 붙임은 물론,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라고 지시했다. 루스의 기록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프릭은 루스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루스의 자서전을 대필한 사람이기도 했다). 프릭의 지시는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1960년대 극악의 투고타저 시대를 불러온 것. 1962년부터 1989년까지, 60개는커녕 50개의 홈런을 친 선수도 두 명(1965년 윌리 메이스 52개, 1977년 조지 포스터 52개)뿐이었으니, 프릭은 자신의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1968년 내셔널리그에서 밥 깁슨이 평균자책점 1.12를 기록하고 아메리칸리그에서 단 한 명이 3할을 치자(칼 야스트렘스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사무국은 마운드의 높이를 15인치에서 지금의 10인치로 낮추는 것과 함께 스트라이크 존의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타자들이 다시 득세하게 되자, 사무국은 1988년 또 한 번 존 확대를 지시했다. 그 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오렐 허샤이저가 59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돈 드라이스데일의 1968년 기록(58이닝)을 경신했다. 그리고 1990년과 1991년에는 역대 최다인 7번씩의 노히터가 탄생했다.

스트라이크 존은 자연스럽게 확대되기도 했다. 장신 타자들이 늘어나면서 타자들이 감당해야 할 스트라이크 존 또한 늘어난 것. 특히 198cm의 장신이면서 다리를 많이 굽히지 않는 업라이트 자세였던 리치 섹슨은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애덤 던(198cm)이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프로필상 키가 175cm이며 실제로는 그보다 더 작을 것 같은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한 때 데이빗 오티스(193cm) 다음 타석에 들어서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좁았던 에디 개델(키 109cm)의 스트라이크 존

2002년 스트라이크 존은 또 한 번 요동쳤다. 메이저리그의 일부 구장들에 '퀘스텍 시스템'으로 불린 스트라이크 판정 장치가 설치되기 시작된 것. 마이크 무시나에 따르면 원래 그 전까지의 스트라이크 존은 담뱃갑을 눕힌 형태였으며, 특히 바깥쪽 낮은공에 후했다. 하지만 심판들이 측정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존은 교본대로 담뱃갑을 세운 형태로 바뀌었다. 이에 톰 글래빈처럼 특히 바깥쪽 낮은공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투수들이 큰 낭패를 봤다(커트 실링은 2003년 샌디에이고 퀄컴스타디움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를 방망이로 부셔 1만5000달러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사무국은 판정 장치가 설치된 구장의 평균자책점이 더 낮다며 항변했지만, 투수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심했다. 사무국은 2006년을 마지막으로 퀘스텍 시스템을 철거했다. 하지만 퀘스텍사가 개발한 다른 시스템을 2009년 이후 전 구장에 설치, 이를 통해 심판들의 고과 점수를 매기고 있다.

<브룩스베이스볼>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pitch F/X와 동일한 판정을 내리는 비율은 80.6%다(앙헬 에르난데스 같은 심판은 73.7%까지 떨어진다고). 또한 너클볼에 대한 판정이 가장 부정확했으며(디키 지못미) 그 다음으로는 체인지업과 스플리터가 잘못된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이 비율이 전부는 아니다. F/X 존과 다르더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면 된다(물론 차이가 많이 나는 심판은 일관성도 없을 확률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주심들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심리적인 영향이 적지 않게 미친다는 것. <하드볼 타임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볼카운트 3-0에서 심판들의 스트라이크 존은 볼카운트 0-2에서보다 50%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3-0 다음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쉬운 카운트는 2-0이었으며, 0-2 다음으로 받기 어려운 카운트는 1-2였다. 투수가 유리한 지점에서는 타자에게 유리하게, 타자가 유리한 지점에서는 투수에게 좀더 유리하게 판정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 스트라이크 존이 늘어나는 모습 또한 확인됐다. 이른바 '퇴근 본능'이 발휘되는 것. 큰 점수차에서 펑펑 잘 던지다가도 근접전 상황에 올려 놓으면 얼어붙는 투수들에게는 심판의 영향도 있는 것이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후한 카운트 순위
3볼 0스트라이크
2볼 0스트라이트
1볼 0스트라이트
0볼 0스트라이크 (초구)
3볼 1스트라이크
2볼 1스트라이크
1볼 1스트라이크
2볼 2스트라이크
3볼 2스트라이크
0볼 1스트라이크
1볼 2스트라이크
0볼 2스트라이크

그렇다면 투수들이 좋아하는 심판은 누구일까. <하드볼 타임스>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2011시즌 한 해 동안 스트라이크 존이 가장 넓었던 심판 5명은 필 쿠지, 론 쿨파, 빌 밀러, 테드 바렛, 덕 에딩스였다. <클로스콜스포츠닷컴>의 분석으로도 쿨파는 좌우로 가장 넓은 존을, 밀러는 상하로 가장 넓은 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측정됐다. 반면 가장 좁은 5명은 팀 치다, 팀 매클랜드, 폴 슈라이버, 에드 히콕스, 채드 페어차일드였는데, 잭 그레인키는 오래 전부터 좁기로 유명한 매클랜드에 대해 '투수들의 악몽'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한편 1954년부터 1970년까지 활동했던 에드 런지는 화이티 허조그로부터 "역사상 가장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가진 심판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런지 가문은 아들 폴에 이어 현재 손자 브라이언까지 3대째 메이저리그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억울한 판정을 받는 것은 타자도 마찬가지다 ⓒ gettyimages/멀티비츠

야구가 재밌는 것은 '인간'과 '심리'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라는 요소는 때로는 명승부를 만들어내지만 때로는 명승부가 될 수 있었던 경기를 망치며, 한 팀(1987년 세인트루이스) 또는 한 선수(아만도 갈라라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기도 한다. 2010년 ESPN은 갈라라가의 퍼펙트게임이 오심에 의해 날아간 후 보름 동안 벌어진 184경기에서 심판들의 판정을 하나 하나 다시 확인했는데, 근접전 상황의 무려 20.4%에서 오심이 일어났음을 확인한 바 있다(정확한 판정 65.7%,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없는 판정 13.9%).
 

민감하디 민감한 존재인 투수는 볼에 대한 단 하나의 판정에 의해서도 심리적으로 크게 무너질 수 있다. 방법은 하나 '피칭은 타자가 아닌 스트라이크 존과의 싸움'이라는 말처럼, 일관적이지 못하고 변덕 심한 스트라이크 존을 만나서도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바로 매덕스가 투수로서 평생을 해왔던 것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예전에는 선수들과 같이 억울해 할 수밖에 없었던 팬들이 심판의 존을 분석할 수 있는 근사한 무기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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