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2, 2013

한 날 묵상 - 막6:14-29 <헤롯과 세례요한의 죽음으로부터 보는 최악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

한 날 묵상 - 막6:14-29 <헤롯과 세례요한의 죽음으로부터 보는 최악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

 최악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분명히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최악의 수를 둠으로서 세례요한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헤롯의 어리석음을 통해 예수님과 나와의 믿음의 건강함을 점검해보자.

1. 내가 지금 죄가운데 있는지에 대한 체크는 내 안에 얼마나 예수님은 드러나고 나는 죽는지를 점검해보면 알 수 있다.

2. 죄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이 드러나면 날수록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예수님은 빛이시다. 당연지사 어둠은 빛이 몰려오면 물러나게 되어 있다. 빛과 어둠의 법칙은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어두운 인간들은 빛되신 예수님이 드러나면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게 문제가 된다.

4. 이러한 순간에 자연의 법칙처럼 빛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며, 먹이시고 입히시는 그 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으련만 말이다.

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점점 더 드러나시니 죄악된 본성을 서스럼없이 드러내는 한 삶을 만나게 된다.

6. 그의 문제는 권력과 재물등 너무 많은 것들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자신은 왕이었다. 그래서 말만 하면 모든 것을 전부 다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어, 심지어 남은 것도 빼앗을 수 있었다.

7. 그런데 자신의 이러한 절대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앞에 무력함속에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수님의 영향력이 점점 더 자신의 권력보다 커져가는 것을 느끼게 될 때 그는 더 이상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바로 헤롯이다.
 14절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8. 예수님이 드러날 때 사람들의 죄악은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9.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죄악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지 않고는 결코 자유함을 누릴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면, 그게 은혜이다.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다. 이 때를 거부하지 말자. 감사함으로 자신의 전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할지라도 빛을 받아들이자.

10. 그런데 헤롯은 그렇지 하지 않았다. 첫번째 기회를 차버린 것이다.
 14절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1. 헤롯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했다. 자신의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12. 전에 그는 예수님을 선포하는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복음을 전하는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복음이신 예수님이 드러나자 중대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13. 지금 헤롯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의 죄악을 보고 예수님께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14. 예수님은 첫번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신다. 그들 곁에 항상 계신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이 때를 놓치지 말자. 나를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을 외면하지 말자. 내 영적인 상태, 나의 내면의 상태를 정확히 보기만 해도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이러한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교만함을 버리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15.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의 치부가 들어나는 것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겨진 죄가 드러날 때 용서함을 구해야 하는데, 반대로 사람들은 분노하게 된다.

16. 헤롯은 지금 분노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지 못해 분노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잘못된 행동으로 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치부를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헤롯은 자신의 지나친 권력을 지적 당한 것에 분노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과신하게 된다.

17. 22절이다. "레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하고"
  23절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가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하 하거늘"

18. 자신의 권력의 지적당함에 분노하여 시작된 자기 과시는 절정이다.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도저히 다시는 주어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19. 자신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허영심에 불타서 그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일 때 우리는 말조심해야 한다.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올무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말로서 세상의 다 가지려 한다. 말로 세상의 모든 권력을 취하려 한다. 허풍이다(말 조심과 관련된 성경의 말씀을 찾아보라).


20.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소녀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25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레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1. 세례요한의 목숨이었다. 그리고 왕은 이제 확실히 반응한다. 자신이 아주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닫게 된것이다. 26절 "왕이 심히 근심하나"

22. 왕의 근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심히 근심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때가 바로 헤롯에게 찾아온 세 번째 기회였다.

23. 이 때를 놓치지 말자. 헤롯을 보면 정말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슨 죄가운데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헤롯처럼 한 번은 마음의 근심을 하게 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 찾아온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돌아가야 한다.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 기회를 놓쳐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24. 자기 과시로부터 나온,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맹세를 한 경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다면 바로 돌아서야한다.

25. 그러나 헤롯은 이 기회를 놓치고 만다. 26절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거절 했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헛던 것에 자존심을 지키려 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반드시 받게 된다.

28. 사실 헤롯의 문제는 자존감을 스스로 찾아려 하는 것에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통해 자존심을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진정한 자존심은 자존감을 회복할 때 축복이 된다.

29. 인간의 자존감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예수님의 주신 죄의 용서와 죄의 치유를 통해 인간의 자존감은 회복되는 것이다.

30. 헤롯은 이것을 몰랐다. 자신 스스로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의 자존감이 세워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자꾸 죄가 드러날 때 더욱 스스로 자존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31. 그러나 아무것도 헤롯은 얻지 못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헤롯 왕의 죽음이 기록되면서 23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32. 인간은 벌레에게도 먹혀 죽을 존재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들지 않으면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할 수 있는게 인간이다.

33. 헤롯의 권력이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의 건강은 누가 주셨는가? 그에게 주어진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34. 빛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감사함으로 그 분을 맞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치부가 들어나고, 자신의 권력이 진정 없어지고, 재산이 없어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빛되신 예수님께 자신의 어두움을 내어드려여 한다.

35. 이럴 때 자신의 자존심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면 자신이 죽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자존감은 회복되며, 예수님이 드러남으로 시작된 분노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죄에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6. 이게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헤이다. 헤롯이 지금 이러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에게 몇 번의 기회가 있어는데, 그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계속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37.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문이 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사랑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2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8. 우리 인생가운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최악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이전에 내가 기회를 차버렸다고 해서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시 옵니다. 오늘 그 기회입니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우리의 인생에서 어는 보장된 날이 아닙니다.

39. 오늘 지금 이 순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두드림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드려 최악의 죄악으로부터는 벗어나는 은혜가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0. 할렐루야! 아멘!


====
- 예수가 드러날 수록 분노하는 사람들
- 중대한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눅3:18-20, 20절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결코 자신이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다.
-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의 내면을 다시리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면 지나친 자기 과시를 하게 된다.
- 지나친 자기 과시는 헛된 맹세로 이어지고, 잘못된 맹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족쇄가 된다.
- 자기 과시로부터 나온,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맹세를 한 경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다면 바로 돌아서야한다.
- 바로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헛던 것에 자존심을 지키려 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반드시 받게 된다.
- 자존심을 버리면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고 예수님이 드러남으로 시작된 분노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세례요한의 죽음과 헤롯>
===
14절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의 현실
14-16절

세례요한의 죽음과 헤롯 왕
17-29절

감당 못할 맹세를 조심하라.

26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 맹세가 믿음이나 상식에서 벗어남을 알았을 때 그 때라도 당장 돌아서라.
 -> 자존감을 버리기
 -> 자존감 회복하기

27절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