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9, 2012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의 묵상 - 성경공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방법 (1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18)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면 삶이 변화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시작한다.
성경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시 119: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척 많지만, 먼저 열린 눈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효과적인 성경공부는 다섯 부분으로 나눠진다.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고, 내일 세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 성경공부법을 배우는 것은 본문으로부터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성경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한계는 없다. 그 지혜와 명철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은 금을 찾을 수 있다.
읽고 있는 본문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본문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들고 공부할 때마다 갑자기 눈 앞에 새로운 진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2. 관찰한 것을 적으라. 손에 펜과 종이를(또는 성향에 따라 키보드를) 들지 않고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 없게 하라.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았다면, 배운 것을 적어보라. 무언가를 적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성경 공부는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
네비게이토 선교단체의 설립자인 도슨 트로트만(Dawson Trotma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생각은 입술과 손끝을 통해 나가면 얽혀있던 것이 풀린다.” 즉 말로 할 수 없고, 글로도 쓸 수 없다면, 그것에 대해 진짜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비록 성경구절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고 적으라. 그것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새로운 사고가 열릴 수 있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장소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 곳은 집중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성경 공부의 놀라운 원리 (2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여 그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길 원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제 나는 어느 성경 공부법에나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일반적인 성경 공부 원리를 설명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질문을 던져라.
2. 관찰한 것을 적어라.
오늘 나는 세 가지 성경 공부 원리를 더 나누고자 한다.
3.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라. ‘진리’를 찾았다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 모든 성경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용’이다. 즉 ‘이 말씀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매일의 삶에 성경적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적용이 없는 해석은 낙태와 같다! 완전한 결실에 이르기도 전에 과정을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다면,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노력은 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실 성경은 적용하는 부분만 믿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대해 믿는가? 십일조에 대해 믿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행위들을 하는가? 행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그것들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 관하여 우리 대부분이 갖고 있는 문제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4.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라. 성경을 무턱대고 공부하지 마라. 성경은 구절별로, 책별로, 주제별로, 테마별로 공부함으로써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와 정반대되는 방법은 낡은 ‘메뚜기식’ 공부로, 그냥 무작정 성경을 펼쳐 공부하고 싶은 곳에 손가락을 대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시는 결과를 이룰 수 없다.
5. 성경을 반복해서 읽어라. 간단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삶이 변화된다. 똑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연구한 다음, 몇 달 후에 똑같은 단락을 다시 읽어보라. 아마 너무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같은 단락을 더 많이 읽을수록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오늘, 스스로 성경 공부하기를 시작하라. 어떤 공부법을 선택하든 간에 이 다섯 가지 원리를 적용해보라. 그러면 성경의 어느 곳을 보든 간에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오늘, 하나님은 당신이 삶 가운데 특히 어느 영역에서 말씀을 적용하길 바라실까?
  • 당신에겐 담당파트너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담당파트너가 성경 공부를 좀더 성실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성경공부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당신은 성경 공부가 위험할 수도 있음을 아는가? 사실 성경 공부의 결과가 재난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건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삶에 적용하라고 하신 것이지 그냥 읽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성경은 정보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것이다. 산상수훈의 말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 진리를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지식이 교만을 낳는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경은 잘 알지만 말씀이 삶에 전혀 침투하지는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성경을 다른 사람들을 내려치는 망치로 사용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가장 심술궂고 악하며 옹졸하고 까다롭고 비판적이며 정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단계를 전혀 밟지 않는다면 말이다.
    적용 없는 지식은 교만을 낳는다. 사랑을 토대로 적용하지 않고, 그저 우쭐해지기만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된다.
  • 지식은 행동을 요구한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말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아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메모를 해가며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해서 자신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많이 알수록 책임이 늘어난다. 야고보서 4장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성경을 더 깊이 알수록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적용하지 못하면 더 큰 심판이 우리를 기다린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영역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시고, 그러면서 더욱 더 큰 책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예배를 드리고 온 후에, 또는 경건의 시간을 마치고 나서, 당신은 설교 시간에 혹은 성경 공부 시간에 적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가?
  • 조금 전 한 시간 동안 당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최근에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반영하고 있는가?

Tuesday, August 14, 2012

유혹을 이기는 리더 - 리더십 네트워크 619호


국제제자훈련원에서 발취한 글...

 공동체의 건강의 그 공동체의 리더의 건강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 하실 것입니다. 또한 리더는 악한 사탄이 노리는 첫 번째 대상이 된다는 것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능력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으려는 사탄의 유혹의 전략에 대해서 알고 그에 대처하는 구체적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 동료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사탄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알기위해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광야의 시험 직전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어질 공생애 사역의 문턱을 넘는 순간에 성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삶이 제자무리 모질게 변하여도 그는 변함없이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라는 인식은 그가 수행할 전투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크리스천 리더의 삶에서 가장 높은 특권과 근본이 되는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에 양자로 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존재의 핵심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리더로서 무너지게 할 수 있는 마귀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갈 것입니다.

 2. 우리가 직면하는 유혹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고전적인 사탄의 무기는 돈, 권력, 그리고 섹스입니다.
 우선 돈(안락함)을 살펴봅시다. 사십일 금식을 마치신 예수님께 사탄이 이용한 것도 돈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사탄은 생명을 물질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에게 유혹은 안락한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인용하여 사탄에게 반격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단순히 물리적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하지 말고, 영적인 지혜라는 영원한 관점 위에 당신의 삶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주친 두 번째 유혹은 권력입니다. 사탄은 예수님 앞에 엄청난 장관을 보여 달라는 유혹을 제기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무언가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신성을 감싸고 있는 육체의 베일을 벗어보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성공과 개인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이 얼마나 은밀하게 그 사람의 영혼을 공격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다면 이런 결핍감을 사람들의 칭찬으로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사역의 크기와 조직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로 결정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방어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자신의 자리와 구속사역을 소행하라는 부르심을 스스로 항상 되새기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혹은 섹스와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성적 탐닉이 만연한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로 넘어진 리더들에 대한 소식이 교회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이성을 대할 때 시간과 장소에 관하여 엄격한 지침을 유지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은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도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령 가운데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욕기 있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바라보게 도와주는 숙련된 크리스천 상담가, 믿음의 친구 혹은 영적인 인도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돈(안락함)의 유혹이든, 권력이나 섹스의 유혹이든 그것들은 모두 만족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임을 깨닫고 이 우상과 싸워야 합니다. 사탄의 이 모든 시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곳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만족과 궁극적인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시도입니다. 존 파이퍼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기쁨과 의미와 열정을 향한 나의 목마름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통해서 해갈될 때 죄의 능력을 깨뜨릴 수 있다. 그릴 위에서 구워지는 스테이크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는 샌드위치를 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지 않는 법니다.”

 7,8월의 무더운 여름날 나약해지기 쉬운 이때 우리의 육체를 보강하려는 보양식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크리스천 리더로서 나약해서 넘어지기 쉬운 영혼을 지키기 위해 말씀 묵상으로 유혹에 강한 리더로 거듭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리더십 첫걸음>10과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Tuesday, August 7, 2012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하다- 박목월


박목월 (본명 : 박영종 朴泳鍾 1916.01.06~1978.03.24)이다.
경상북도 경주가 고향이며 아들'박동규(朴東奎, 서울대)' 교수가 있다. 1933년 동시 「통딱딱통딱딱」이 어린이 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50년 대에 시문학 발간했으며 한국문학가협회 별동대를 조직했다. 1957년 2월 한국시인협회 창립했으며,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대학 학장을 지냈다.






기자: 송아지~송아지~얼룩 송아지~엄마 소도 얼룩소~엄마 닮았네~
우리에게 익숙한 ‘얼룩 송아지’라는 이 동요가,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그리는 한 편의 시(詩)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서정 시인,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박목월: 안녕하세요, 갓피아 여러분.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금 쑥스럽기도 하네요.



Q1.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왠지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한 소년이셨을 것 같아요.





A1. 저는 말 그대로 ‘산골소년’ 이었습니다(웃음). 그러나 산골소년,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장난기 많고 개구진 모습의 시커먼 사내아이라기보다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수줍음 많은 아이였어요. 다른 아이들이 산기슭을 뛰어다니며 놀 때, 저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함께 교회에 가는 편을 택했죠.
이 때 교회에 다니며 형성된 기독교적 가치관과,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신 어머니에 대한 푸근한 기억은 이후 제 작품 활동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Q2. 모태신앙이셨군요? 선생님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안 것 같아요?


A2.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웃음). 게다가 할머니와 어머니는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지만 여자가 선교를 나간다거나, 기타 교회 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것이, 그 당시 제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교회는 그저 아낙네들이 ‘치성’을 드리러 가는 서양식 사당 정도였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세례를 받은 정식 기독교인입니다. 학교 들어가서 만난 첫사랑을 위해 새벽기도 가시는 어머니를 부지런히 따라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한, 어찌보면 아주 순전한 기독교인이죠(웃음).
자라면서 저의 신앙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생긴 적이 한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5살이 되기도 전에 세례를 준 우리 교회는 대체 어떤 교회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때는 그저 교회 다니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몰아서 나이도 따지지 않고 세례를 준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주일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세례도 받은 정식 기독교인인 셈이죠. 하하하.



Q3. 상당히 어린 나이에 문단에 데뷔하셨다고 들었어요.





A3. 중학교 3학년 때 <통딱딱 통딱딱>이라는 동시가 어린이 잡지 독자 투고란에 당선되었고, <제비맞이>라는 시가 또 당선되었습니다. 뭐, 이 때는 시인으로 데뷔한 것이 아니라 동요 작가로 데뷔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군요. 어쨌든 중학생이라는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공상에 잠겨 틈 날 때 마다 시를 썼던 기억이 나는군요(웃음).



Q4. 선생님의 시는 마치 노래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역시 동요 작가라는 경력이 있으셨군요! 동시를 쓰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것이 있나요?





A4. 저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성경 말씀을 접했어요. 또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옆집 소와 송아지, 산에 사는 산새, 물에 사는 물새를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자연 속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성경의 내용을 보여주는 산 교재들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얼룩 송아지>라는 시에서는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구절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엿볼 수 있죠.
평범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어린이의 눈, 바로 제가 어린 시절 경험한 신앙 생활의 결과로 얻어진 시각입니다. 만일 동시를 쓰며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이것을 많은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사실입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귀도 얼룩 귀 귀가 닮았네.
<얼룩 송아지> 전문




Q5. 선생님은 다작(多作)의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으시잖아요, 시의 소재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A5. 앞에 말씀 드린 중학교 3학년 시절에 당선된 시를 비롯하여 제가 쓴 시는 대부분 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기억의 일부입니다. 언제든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와 집, 그리고 그 곳에 있었던 날들에 대한 추억들이 하나도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제 기억 속에 녹아 있거든요.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한아름 갖고 산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Q6.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라고 불리시는데요, 서정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6. 서정시에 있어서는 모든 사물들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이른바 서정적 질서는 모든 사물들이 소리 없이 제자리에 잘 놓여 있는 가운데 생명적 교감을 할 때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제가 평화를 사랑하고, 고요한 가운데서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정 시인이라고 불린다기 보다는, 저의 시 밑바탕에는 어릴 적 고향에서의 행복했던 체험이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사물들이 행복하게 내밀한 생명적 교감을 느끼는 삶을 체험했는데, 그 체험이 저를 평생 동안 지탱하게 한 거죠. 평화로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저는 계속 서정시를 쓰는 서정시인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다정하게 포개진 접시들
윤나는 남비
방마다 불이 켜지고
제자리에 놓인 포근한 의자
안락의자. 어머니가 계시는 집안에는
빛나는 유리창과 차옥차옥 챙겨진 내의.
새하얀 베갯잇에 네 잎 크로우버.
아늑하고 그득했다.
<가정> 전문



Q7. 박목월 선생님이 어린 시절부터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A7. 제가 만난 하나님은, 제 어린 시절 기억의 어머니 같은 분이시자, 저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원천입니다. 밥뿐 만이 아니라 영의 양식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배부르게 하시는 분, 또 한 편으로는 일체의 행동 없이 은밀히 움직이시지만 그 존재 자체로서 가득함을 느끼게 하는, 따뜻하고도 신비로운 분입니다.
저는 체계적으로 성경이나 신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제가 시를 쓰며 느끼는 하나님은 지상과 천상의 경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종교적 상상력으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고요하며 맑고 담담한 시간과, 지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비움으로써 ‘심령의 새 하늘’을 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죠.






담담한 하루를 보낸다. 여한없는 공백을.
조용히 개이는 나의 심령의 새 하늘.
침묵으로 평생한, 나의 세계를,
모래로 흘러내리는 생명의 율감
<삼월 모일> 전반부





기자: 한국 근현대시의 대표 시인인 박목월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문학이나 신학이 결코 특정 교파나 학파의 목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신앙의 도구로서 평화의 완성을 향한 인간의 노래임을 깨닫게 되는 가슴 고요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해주신 박목월 선생님, 감사합니다.

참고도서 : 박목월 시에 나타난 모성 하나님/ 김윤환 지음/ 열린 출판사
이미지출처 : 동리목월문학관

퍼온글 http://knowledge.godpia.com/sub03/sub_3_1.asp?reg_no=M201207170001

Thursday, August 2, 2012

한 날 묵상 - 겔 34:1-31절 <목자가 없으므로 내 양 떼가 흩어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양 떼를 구원하시고 목자들의 대적이 되리라>

한 날 묵상 - 겔 34:1-31절 <목자가 없으므로 내 양 떼가 흩어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양 떼를 구원하시고 목자들의 대적이 되리라>

1. 공의 없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2.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일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일까?

3. 이 둘의 질문에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이 둘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혹 무엇일까?

4.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시작되고, 후에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일어날까? 아니면, 힘 있는 자들의 폭거가 있고, 그 후에 힘 없는 자들의 약탈이 이어질까?

5. 아무래도 힘 있는 자들의 몰상식한 자기 배 채움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된다.

6.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겔 34장은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7. 누구에 대한 심판이고,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

8. 양의 무리를 억압하던 목자들, 지도자들, 살찐 양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양들의 목자로 오심(10절)을 통해 양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다.

9. 하나님은 지금 목자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살찐 양들을 향해 무서운 경고를 하고 계신다.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어느 누가 이 경고를 피할 수 있을까?

10. 하나님은 친히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목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11. 목자되신 하나님은 악한 목자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배를 살찌우는 목자가 아니십니다.

12.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삼하 5;2)

13.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시편 23편 1절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4.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1절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15. 예수님은 당시 백성들에게 아주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인도하시며 약탈자로부터 양을 보호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요10;11-14).

16.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놓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17. 에스겔 34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8. 목자라면 좋은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가 되십시오. 선한 목자라면 양들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모델 하십시오.

19. 우리에게는 결코 버리시지 않는 선한 목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지키십니다.

20. 무엇보다 좋은 목자를 만나십시오. 나쁜 목자도 많지만, 진정 좋은 목자도 널려 있습니다.

21. 나도 선한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22.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롤 모델하여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23. 주님! 나의 마음을 이끄소서~~~

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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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절-4절 목자들이 양을 위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
5절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6절 "내 양떼가 ...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며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절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절 "내 양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10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 목자들과 대적하게 되시는 여호와.  목자와 적이 되다.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절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절 "좋은 꼴로 먹이고 ..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절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16절 -> 4절에 나오는 목자들과 다른 목자이신 여호와.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는 의미는?

17절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19절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밝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립힌 것을 마시는도다"

20절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절 "너희가 ...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절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절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절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25절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읠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플 가운데에서 잘지라"
26-31절 회복된 축복
 27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0절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1절 "내 양 곧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