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막 7:31-37절 <하늘을 여시어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
1. 하늘을 여시어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우리의 모든 자원이 하늘로부터 내려옴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3. 오늘 날에게 필요한 양식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전부 다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양식임을 고백합니다.
4. 그러니 부디 하나님 아버지에 오늘 날에게 필요한 모든 일용한 자원을 내려주시어 은혜의 한 날 되는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아멘.
5.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계속됩니다. 복음을 위한 사역과 함께 계속되고 있습니다.
6. 오늘 본문 또한 예수님의 치유사역입니다. 그런데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7. 예수님은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3절 “예수께서 …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차이는?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시었다.
34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 예수님의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과의 소통 방법은?
앞서 24-30절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소통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직접 행동으로 소통하고 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자이기에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33-34절에서 예수님은 직접 액션과 motion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해봅시다.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보시는 모습.
“탄식"하는 모습.
“에바다"하고 외치는 모습.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귀먹고 말 더듬는 자는 진실되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예수님의 소통법이다.
8.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직접 터치하십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말로서만 소통하셨습니다. 대화를 통해 믿음을 보십니다.
9. 그런데 여기에서는 친히 몸을 터치하시면서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10. 철저히 예수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11. 나는 지금 믿음의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습니까? 내 중심입니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계십니까?
12. 예수님의 치유방법의 또 다른 점은 하늘을 우러러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능력을 받았음을 보여주십니다.
13. 우리가 살아갈 힘 -> 하늘을 여기어 하늘 자원을 공급받는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귀 먹고 말 못하는 우리의 인생가운데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소통 방법이시다. 하늘로 눈을 들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라.
14.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식과 기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이유와 관련이 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cf. 눅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참고? 마태복음 11장 1-7절, 누가복음 7장 18-23절.
15. 그들을 보니 탄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16. 이는 이어지는 다음의 말씀에서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
17. ‘열리다' 무엇이 열리기 원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18. 예수님의 이와 같은 일련의 말의 과정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 기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WBC주석 34상 마가복음 주석 p625-626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마비된 기관을 만지시고 침을 뱉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깊은 탄식을 하셨다. 사실 이 행동들은 모두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치유는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거듭된 치유의 행동들은 치유 과정의 일부다"
WBC주석 34상 마가복음 주석 p625-626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마비된 기관을 만지시고 침을 뱉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깊은 탄식을 하셨다. 사실 이 행동들은 모두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치유는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거듭된 치유의 행동들은 치유 과정의 일부다"
19. 예수님의 일련의 말씀 선포를 통해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게 됩니다.
35절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 “곧"은 “즉시"의 다른 표현이다. 즉시 바로 치유되어 상실했던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다.
20. 이렇게 귀가 열리고 혀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그 이후 그가 한 행동은?
36절입니다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21. 더욱 크게 널리 전파하였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하늘의 보화를 받고 사모함이 있다면, 그리하여 입에 분명한 것이 가득하다면, 이러한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하려 하심이다"
21. 더욱 크게 널리 전파하였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하늘의 보화를 받고 사모함이 있다면, 그리하여 입에 분명한 것이 가득하다면, 이러한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하려 하심이다"
22. 이사야의 선포한 말씀의 일부인 “이방인들"의 그들의 “귀”와 “혀”가 구원의 시대에 복음을 듣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cf. 눅 4장 19절“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3. 이는 예수님의 경고도 무시하고 더욱 크게 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6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게 그렇게 되지 않는가 봅니다.
25. 이것이 바로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는 인생들의 삶입니다.
26.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내 안에만 간직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 만나서 이 영적인 은혜를 나누고 싶어한다. 만나서 이 놀라운 은혜를 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은혜를 맛 본자만이 알 수 있도다.
27.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님이 경계하며 할수록 더욱 더 강하게 그 예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막 1:44절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와 5:43절에서 회당장의 딸을 고치실 때.
예수님이 경계하면 할수록 더욱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인데, 여기서 시제는 미완료시제입니다. 이는 활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8. 왜 그럴까요?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황금보화를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황금보화를 가질 수 있도록 전하지 않을까요?
29.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당연히 망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혼자만의 욕심은 곧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0. 이러한 외침에 대한 사람들은 당연히 반응을 하게 됩니다.
37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7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31.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반응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하고 있으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32. 그리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37절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33. 이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입에서 이러한 고백이 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34. 다시한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37절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나라"
35. 예수님이 진정하신 일은 육신의 나음을 넘어서는 영적으로 못듣는 사람을 듣게 하셨고 영적인 말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말을 하게 하신 것이다.
36. 복음을 받은 우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는 지금 영적인 말을 듣고 있는가? 세상적인 말을 듣고 있는가? 나는 지금 영적인 말을 하고 있는가? 세상적인 말을 하고 있는가?
37. 지금 내 입술의 말이, 내가 지금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나의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38. 내 입술의 열매를 통해 내가 지금 하늘로부터 공급된 자원을 공급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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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절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절 “예수께서 …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차이는?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시었다.
34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 예수님의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과의 소통 방법은?
앞서 24-30절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소통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직접 행동으로 소통하고 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자이기에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33-34절에서 예수님은 직접 액션과 motion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해봅시다.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보시는 모습.
“탄식"하는 모습.
“에바다"하고 외치는 모습.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귀먹고 말 더듬는 자는 진실되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예수님의 소통법이다.
우리가 살아갈 힘-> 하늘을 여기어 하늘 자원을 공급받는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귀 먹고 말 못하는 우리의 인생가운데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소통 방법이시다. 하늘로 눈을 들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라.
=> 예수님의 탄식과 기도에 담긴 의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이유와 관련이 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이유…
cf. 눅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참고? 마태복음 11장 1-7절, 누가복음 7장 18-23절.
=>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
‘열리다' 무엇이 열리기 원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 기적을 이루시다. WBC주석 34상 마가복음 주석 p625-626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마비된 기관을 만지시고 침을 뱉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깊은 탄식을 하셨다. 사실 이 행동들은 모두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치유는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거듭된 치유의 행동들은 치유 과정의 일부다"
35절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 “곧"은 “즉시"의 다른 표현이다. 즉시 바로 치유되어 상실했던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다.
=> 귀가 열리고 혀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그 이후 그가 한 행동은?
36절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 예수님의 경고도 무시하고 더욱 크게 널리 전파하였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하늘의 보화를 받고 사모함이 있다면, 그리하여 입에 분명한 것이 가득하다면, 이러한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의 은헤의 해를 전파하려 하려 하심이다.
=> 이사야의 선포한 말씀의 일부인 “이방인들"의 그들의 “귀”와 “혀”가 구원의 시대에 복음을 듣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cf. 눅 4장 19절“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36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게 그렇게 되지 않는가 봅니다.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는 인생들의 삶이란 ->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내 안에만 간직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 만나서 이 영적인 은혜를 나누고 싶어한다. 만나서 이 놀라운 은혜를 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은혜를 맛 본자만이 알 수 있도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님이 경계하며 할수록 더욱 더 강하게 그 예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막 1:44절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와 5:43절에서 회당장의 딸을 고치실 때.
예수님이 경계하면 할수록 더욱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인데, 여기서 시제는 미완료시제입니다. 이는 활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7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반응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하고 있으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37절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다시한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37절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나라"
예수님이 진정하신 일은 육신의 나음을 넘어서는 영적으로 못듣는 사람을 듣게 하셨고 영적인 말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말을 하게 하신 것이다.
난 지금 영적인 말을 듣고 있는가? 세상적인 말을 듣고 있는가? 나는 지금 영적인 말을 하고 있는가? 세상적인 말을 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내가 지금 하늘로부터 공급된 자원을 공급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임재 (하늘의 문을 여소서)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Open the doors of Heaven Keep your eyes on this place
My songs for you My Lord Will never fade away
Open wide the doors of Heaven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Come with your Holy Spirit I'm waiting for you my Lord
Fragrance of my prayers Will reach you in Heaven
Holy Spirit come meet in this place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Come in this place My Lord Come and sit among us, Lord
Come and receive my Worship All my heart and all my Soul
The Name of you my Lord Only the name of you Lord
Jesus your sovereign name is the only name that reigns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