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묵상 - 막 8장 11-13절 “이 시대는 표적을 구하나 … 진정한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성육신 하셔서 친히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 곧 이 시대의 유일한 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표적을 보이지 않이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이 유일한 표적이다”
참고) 막 8장 1-10절의 요약 말씀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우리는 살아갈 힘은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교만하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살아가면서 공존이 아닌 자신의 배만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 창조의 회복을 위해 타락으로부터 구속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친히 이 땅에 오셔습니다. 그리고 친히 배고픔을 타락으로 인해 다같이 가질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가진 자들의 나눔과 섬김에 축복하시고 축사하시어 다같이 배불릴 먹고도 남을 수 있는 재창조를 예수님을 친히 배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타락한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많이 모이게 하고, 높아지려는 유혹을 피하기 위해 허기진 배를 채운 이들을 흩으시고 친히 그 자리르 떠남을 통해 섬김과 나눔이 온전하게 되기위해 마지막 모습도 아름다워야함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1.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분과 함께라면 부족함이 없으며 항상 기쁨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있었습니다.
2. 그 조건은 바로 날마나 때를 따라 기적과 이적을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3.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이면 인생은 언제나 만족함 그 뿐이었습니다.
4. 우리는 지금 어떠하나요? 예수님을 좋으시나요? 예수님의 이적이 좋으시나요? 예수님 그 이름만으로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줘야 신앙의 기쁨을 맛보시나요?
5. 저와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6. 저도 날마다 기도합니다.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요, 그 기도제목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낙망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기도하다보면 이내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언제나 나와 동행하심을 느낄 때 그것으로 감사와 평안을 누리게 됨을 경험하곤 합니다.
7.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을 봅시다.
11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8.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그런데 12절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반응은 바리새인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12절 “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9. 바리새인들 뿐만 아니라 이 세대 사람들 모두가 표적을 구한다며 하시면서 깊은 탄식하심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표적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몇 가지 표적이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보면서 이 세대 사람들의 반응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어떠한 표적을 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의 말에 묵언적으로 사람들 또한 동의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참으로 재미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11. 앞에서 우리는 사천명을 먹이시는 사건이 예수님이 친히 베풀어주신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임을 살펴보았습니다.
12.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의 힐난하는 마음에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네가 하나님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줘바’라는 마음입니다.
13.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참고로 요한복음 14장 1-14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
14. 그렇지만 예수님의 하나님의 되심은, 즉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은 앞에서 베푸신 4천명을 먹이신 하늘양식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15.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정한 표적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에덴동산의 창조는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들을 창조하시면서 주신 문화명령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표적입니다.
16. 그러나 사람들은 사천명, 오천명을 먹이신 떡과 같은 기적을 그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17. 그런데 이러한 표적을 구하는 것에도 잘못된 그들의 시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원하는 표적에서 나타난 그들의 잘못된 시각이란?
18. 1)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한다. 일하지 않는지 먹지도 말라.
19.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곧 이적임을 깨닫지 못한다.
20. 예수님은 이러한 마음때문에 그들을 보며 깊이 탄식하신 것입니다.
12절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21.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12절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22. 예수님의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23. 진정한 표적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친히 육신이 되어 오셨다”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24.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마시는 자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예수님을 먹는 자 더 이상 배고프지 않는다.
요한복음 7장 37-38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상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25.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6. 이처럼 예수님 자체가 가장 큰 표적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바로 회복된 창조입니다. 창조의 은혜를 다시금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27.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주기도문중에서) 아메.
28.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선포한 후에 그들을 떠나셨다는 사실입니다.
29. 예수님은 이 땅에 무리들을 모이기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목마르지 않는 생수, 배고프지 않을 양식을 얻는 비결을 제시하기 위해서 오셨고, 친히 이러한 사역을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30. 이것이 바로 그들을 떠나 다시 갈 수 밖에 없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3절 “그들을 떠나 다시 … 가시니라”
31.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분명하게 하실 때가 아직 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2. 오직 때가 되어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 “ 다 이루었다”의 말씀이 선포된 후에야 비로서 제자들을 포함해서 무리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33.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내 자신을 살펴봅니다. 오늘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여전히 표적을 구하는가?
아직 예수님 자체가 이적과 표적이심을 믿지도 알지도 못하는가?
34. 혹 아직 예수님의 십자와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은 또한 아닌가?
35. 믿음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표적만을 바라고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진정 내 마음속에 늘 거하실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더욱 거룩하게 하는 일에 더 열심으로 말씀과 기도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원합니다.
36. 할렐루야! 아멘!